외상값 갚지 않는 남자

한겨레 2023. 4. 3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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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골목에 있는 물망초나 파라다이스 같은 이름의 맥줏집이 궁금하다.

그런 곳에서는 하이트의 옛 병따개를 만지거나 사장님이 담근 전라도식 김치를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동과 소주를 파는 포장마차 앞에 서서 그 풍경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던 것 같은데, 이제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오래 다니지는 못할 것이라는 불안, 갈수록 처우가 나빠질 것이라는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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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서울 말고] 서한나 | <사랑의 은어> 저자

오래된 골목에 있는 물망초나 파라다이스 같은 이름의 맥줏집이 궁금하다. 그런 곳에서는 하이트의 옛 병따개를 만지거나 사장님이 담근 전라도식 김치를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정겨워하는 것이 언제나 내 편은 아니라는 것을 도시는 말해준다.

여자는 사장이고 남자는 손님인데, 여자는 안경을 쓰면 안 된다. 단골의 사업이 잘되는지 마는지 하는 얘기부터 남자들이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들어야 하는데, 그들의 기분이 좋아야 매상이 오른다.

직원과 사장이 중요하게 하는 일은 공간의 공기를 다스리는 일이다. 손님이 폭력성을 보이지 않나 어르는 일이 중요해진다. 손님이 바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엄마’처럼 품어주고 들어주기, ‘애인’처럼 굴기. 사회가 여성에게 바라는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성들은 일촉즉발의 싸움을 말리는 것도, 또한 회유나 칭찬도 잘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관록과 처세만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므로. 숱한 경험을 통해 공권력은 자신의 편이 아니며 때로는 손님으로도 온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는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몸을 매개로 손님을 만나는 일이 본래 지니고 있는 불안, 밤낮 바뀐 생활, 체력적인 부담, 정신적인 한계.

밤의 역전도 마찬가지다. 우동과 소주를 파는 포장마차 앞에 서서 그 풍경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던 것 같은데, 이제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대전역 앞에 한참 서 있으면 노인 여성과 남성이 대화하는 것을 보게 된다. 연애하고 가. 성매매를 뜻한다.

이 여성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분노하고 기대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인지 더 자주 들어야겠는데, 대전역 근처 성매매집결지를 포함한 동네 곳곳의 현실은 누군가의 입속에서 무용담이나 풍문으로 머무른다.

최근 전남의 한 노래방에서 중년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중년 여성을 살해했다. 어떤 여성들은 출근과 함께 폭력에 노출된다. 많은 여성들은 오늘도 출근 준비를 할 것이다. 몸과 마음을 다스리며 하루 벌이를 한 뒤, 새벽바람을 맞으며 퇴근할 것이다.

사회구조는 끊임 없이 여성을 그 거리에 유입되도록 만든다. 세상은 마음 놓고 함부로 대할 여자들이 필요하고, 궁지에 몰린 여자들은 돈이 필요하며, 사회에서 여성이 가진 것 중 가장 높게 치는 자원은 젊은 몸이다. 그러나 <무한발설>(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 지음) 등의 책들이 이야기하듯, 성매매는 당사자 여성에게 돈이 되지 않고,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받기 힘들다.

오래 서 있을 수 없거나 손목이 약하면 공장이나 식당에 다닐 수도 없고 청소 일을 할 수도 없는데, 애초에 이 일들을 해서 온전한 생계를 유지하는 일은 여간해서 쉽지 않다. 파스값이 더 들 것이다. 한국 사회는 여자 혼자서 먹고살 수 있는 일자리를 거의 주지 않는다. 그가 무학이거나 지원받을 가족이 없다면 더욱 그렇고, 일자리를 주더라도 불안과 함께 준다. 오래 다니지는 못할 것이라는 불안, 갈수록 처우가 나빠질 것이라는 불안.

하루는 맥줏집 사장이 테이블 옆에 서서 이 일이 얼마나 ‘골 때리는지’ 말해주었다. 놀 것 다 놀고 돈은 내기 싫었던 손님은 외제차를 타는 남자였고 외상을 했고 번호를 바꿨다. 아마 그는 인생이 안 풀려도 성매매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며, 하게 되더라도 이런 식은 아닐 것이다. 손님에게 맞거나 죽거나 외상값을 못 받거나 지역과 업소를 떠돌다 집결지로 가는 일 같은 건 그의 인생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장이 설거지 거리를 모은 뒤 불을 끄는 모습을 보고 함께 가게를 나선다. 새벽이니까 조심히 가시라고 한다. 그런데 조심은 어떻게 하는 거지?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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