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진의 햇빛] 호수위의 빛과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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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의 겨울 바다는 황량하다.
사방이 어둑어둑해도 주변 건물에서 나온 불빛의 세로 선이 선명하게 밤 호수에 비치면, 수면이 잔잔하고 바람이 약하다는 거다.
호수 위의 불빛처럼, 바다 위에 펼쳐진 저녁노을도 기상조건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진다.
이 점에 착안하여 해면 위에 반사된 햇빛을 기상위성에서 감지하고, 그 자료를 분석하여 해상의 파도나 바람을 역추정하는 원격탐측 기술도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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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진의 햇빛]
이우진 | 차세대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
북구의 겨울 바다는 황량하다. 바다도 정박한 배도 온통 얼어붙어 몸도 마음도 움츠러든다. 반면 우리 주변의 바다는 얼마나 활기가 넘치는가. 어딜 보나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고, 파도가 부서질 때마다 잘게 쪼개진 포말은 햇빛에 산란하여 하얗게 빛난다. 바람이 밀어주고 달과 해가 끌어준 덕에 바다는 끊임없이 요동치며, 휘트먼이 시로 읊었듯이 매 순간 기적을 연출해낸다.
한편 도심 속 호수는 바다처럼 깊은 푸른색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나름 색다른 생동감을 준다. 호수의 잔물결은 바람을 따라 한 방향으로 밀려가는 대신, 가장자리에서 메아리친 물결마다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다 한데 포개지며 다양한 문양과 율동을 선보인다. 바람이 약해 수면이 잔잔한 날이면 주변 풍광이 물 위에 반사하여 데칼코마니처럼 호수 위에 펼쳐진다. 더구나 호수의 수질을 잘 관리해서 물이 깨끗하다면, 그만큼 반사된 이미지도 선명할 것이다.
밤이 되면 주변 건물이나 네온사인에서 새어 나온 불빛이 물 위에 아른거린다. 광원마다 방사한 형형색색의 빛은 물 위에서 시선을 따라 길게 늘어져 보이는 게, 마치 긴 목을 내민 모딜리아니의 화풍으로 도심의 야경을 그려낸 듯한 느낌이 든다. 잔물결이 일며 한때 반반했던 대형 수경은 제멋대로 기울어진 수만 개의 작은 거울로 나누어진다. 멀면 먼 데로 가까우면 가까운 데로 개중에는 적당히 기울어진 거울 조각이 있어 나의 시선을 향해 반사광을 보내주다 보니, 잔잔한 때보다 물결이 일 때 수면 위의 불빛은 보다 길게 늘어져 보이는 것이다.
수면이 출렁거릴 때마다 작은 거울도 이리저리 흔들리고, 마치 수만개의 촛불이 호수 위에 떠 있다가 바람에 흩날리기라도 하듯이 물 위의 야경도 반짝거린다. 바람이 강해져 물결이 높아지면 작은 거울은 더욱 심하게 비틀리며, 빛으로 수놓은 선의 윤곽이 무뎌진다. 그러다가 바람이 더욱 거세지면 창호지에 흘린 잉크처럼 수면의 빛이 번지면서 점차 알 수 없는 형체가 되어간다.
기상 조건에 따라 바람이 달라지고, 바람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 호수의 물결도 달라지므로, 호수에 반사된 풍광을 보면 거꾸로 기상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사방이 어둑어둑해도 주변 건물에서 나온 불빛의 세로 선이 선명하게 밤 호수에 비치면, 수면이 잔잔하고 바람이 약하다는 거다. 필경 고기압의 중심부 가까이 있어서 대기가 안정한 날이다. 반면 호수에 비친 야경이 길게 늘어지고 희미하게 보이면 호수에 물결이 제법 일고 있다는 거다. 아마도 저기압이 다가오며 돌풍이 점차 강해지거나, 고기압이 확장하면서 북서풍이 강하게 불어올 게다.
평이한 날씨라면 대체로 밤에는 대기가 안정해서 바람이 숨을 죽이고, 낮에는 햇빛을 받아 대기가 불안정해지며 돌풍이 이는 경향이 있다. 같은 기상 조건이라도 더 선명한 호수 풍광을 보려면 한낮보다는 물결이 잔잔한 아침이나 밤이 좋다. 고기압권에 머무른 때라도 기왕이면 땅이 식어가며 대기가 안정해가는 겨울철이 여름철보다 유리하다. 이런 겨울밤에는 바람도 잦아들어 체감온도가 떨어지지 않아 호수의 야경과 함께 아늑한 느낌마저 가질 수 있다는 건 보너스다.
바닷가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면 붉은 햇살이 수평선에서 해변 가까이 길게 이어져 반짝거린다. 호수 위의 불빛처럼, 바다 위에 펼쳐진 저녁노을도 기상조건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진다. 이 점에 착안하여 해면 위에 반사된 햇빛을 기상위성에서 감지하고, 그 자료를 분석하여 해상의 파도나 바람을 역추정하는 원격탐측 기술도 나와 있다.
산보하다 무심코 스쳐간 한줄기 바람이 호수 위에 미끄러진다. 풀피리가 소리를 내듯이, 수면이 보드랍게 떨린다. 물과 바람이 만나는 지점에서 현란한 빛의 향연이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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