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록의 캡틴락 항해일지] 2023 크라잉넛 일본 유랑기
[한경록의 캡틴락 항해일지]
한경록 | 밴드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벚꽃이 떨어지고 분홍 여운이 남겨진 4월의 어느 봄날, 크라잉넛은 ‘2023 크라잉넛 일본투어’를 위해 날개 달린 버스를 타고 일본 유랑길에 올랐다. 2000년에 한일 문화교류를 시작으로 크라잉넛은 매년 일본투어를 다녔다. 일본의 크고 작은 라이브 클럽 공연부터 세계적인 록 페스티벌인 ‘후지 록 페스티벌’도 참여했다. 코로나 이후 4년 만에 첫 해외공연이라 무척 설렜다.
28년 동안 유랑생활을 한 노하우로 짐과 악기는 최대한 간략하게 꾸린다. 110V용 변환 콘센트를 챙길 때, ‘아! 정말 일본투어를 가는구나!’라는 실감을 한다. 일본투어를 다녀와서 어댑터 전압을 변환하지 않고 전원을 켰다가 악기가 연기를 내며 고장 난 적도 있다. 가깝고도 먼 이웃 나라 일본. 지금부터 크라잉넛 일본 유랑기를 시작해본다.
5박6일 동안 4개 도시(오사카, 교토, 나고야, 도쿄) 공연을 위해 크라잉넛은 밤하늘을 그으며 일본 간사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일본에 입국을 하자마자 많지는 않지만 크라잉넛의 팬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먼저 입국장을 빠져나간 크라잉넛 멤버 상면이가 스마트폰 액정에 환영한다는 문구를 써놓고 흔들고 있었다. 크라잉넛의 가장 큰 팬은 크라잉넛인가보다.
공연 첫날, 오사카에는 봄비가 운치 있게 내린다. 일본투어 일정은 이동의 연속이다. 리허설과 공연, 뒤풀이, 다음날 또 이동해서 리허설, 공연, 뒤풀이가 반복되기 때문에 느긋하게 관광하고 여유를 즐길 시간은 없다. 클럽 주변의 맛집을 검색하고 야무지게 밥을 뚝딱 챙겨먹는다.
이번 일본투어를 함께한 팀은 ‘킹곤즈’라는 팀이다. 킹곤즈는 눈에는 판다처럼 검정색 분장을 하고 미친 듯이 신명 나게 로큰롤을 연주한다. 퍼포먼스와 쇼맨십에 진심인 킹곤즈는 각자 뚜렷한 패션과 개성을 지녀 눈과 귀가 즐거워지는 무대를 선보인다. 크라잉넛과 킹곤즈는 8년 전부터 일본투어도 함께하고 서울과 부산에서도 같이 투어공연을 해왔다. 서로 말은 잘 안 통하지만 생맥주와 로큰롤로 맺어진 끈끈한 우정을 나누고 있다.
킹곤즈는 기획사와 매니저도 없이 직접 기획하고 활동하는 일본의 인디밴드로, 우쓰노미야에서 8시간 동안 밴드 멤버가 직접 운전해서 오사카 라이브 클럽에 도착한다. 악기뿐 아니라 앰프까지 직접 싣고 와서 운반하기 때문에 지칠 만도 한데 표정들은 아이들마냥 신나기만 하다. 예전에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페스티벌에 출연했을 때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팀을 만났는데 30시간을 운전해서 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한국에서 태어나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났으면 인생의 반을 투어버스에서 보낼 뻔했으니까. 어찌보면 인디밴드의 모습은 서커스단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저기 유랑하며 사람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나눠주니까.
한국이나 일본의 인디밴드들 대부분 투잡으로 음악활동을 하는데, 휴일까지 반납하고 장시간 운전을 해가면서도 즐겁게 공연하는 모습을 보면 일본의 청년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구나! 하고 반가운 기분이 든다. 어찌보면 고단한 일정일 수도 있겠으나 이들은 무대에서 진심으로 즐거워하며, 무대 크기에 상관없이 모든 열정을 다 쏟아붓는다. 특히 일본은 인디밴드 신이 좀 더 활성화되어 있다. 장르도 다양하고, 수요층도 확실해서 관객으로서도 풍요롭게 즐길 거리가 많다.
드디어 클럽에서 공연이 시작되면 한일 밴드들은 각자의 이야기와 열정을 쏟아낸다. 비록 작은 라이브 클럽이지만, 열기와 즐거운 에너지는 폭발할 듯 그 시간과 공간을 가득 메운다. 매일 목이 터져라 공연하고 무대 위에서 점프 뛰고 오두방정 떨면서 열정적으로 공연하고 나면 한증막이라도 다녀온 것처럼 몸이 땀에 절고 너덜너덜해진다. 내가 빨랫감인지 빨랫감이 나인지 알 길이 없다. 그렇게 공연이 끝나면 뒤풀이를 하며 서로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유랑버스에 테트리스처럼 악기와 짐을 쌓아 올리고 다음 도시로 출발한다. 일본투어를 잘 마무리한 크라잉넛은 7월엔 뉴욕 링컨센터 공연을 하러 떠난다. 다음 유랑길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꽃을 피울지 기대된다.
‘로큰롤’이란, 아니 크게 나아가 ‘문화’란 언어와 국경을 초월한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어루만져 주는 위로의 향기라고 생각한다. 일본 도시 주변에는 아기자기한 수변 공원들이 많이 있다. 그곳에서 참새들을 많이 봤는데, 새들은 일본말로 울지 않더라. 음악도 마찬가지 아닐까?
세상사 시끄럽고 복잡하게 돌아가지만 문화와 예술의 교류는 고요히 흐르는 깊은 강물처럼 계속해서 이어지길 바란다. 청년들의 마음과 음악이 모여 사랑과 평화의 정신으로 한데 뭉친다면, 총소리를 음악소리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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