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시평] 한국 금융의 굴레
즉각 반박할 증거 넘쳐나
우리 경제 성장경로와 선택이
금융친화적이지 않았을 뿐
그 굴레를 벗어날 방법이 있다
왜 세계 7대 경제대국에 글로벌 (투자)은행이 하나도 없을까? 서비스업이 중요하다는데 왜 금융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더 창출하지 못할까? 2008년부터 만든다던 금융중심지는 도대체 언제 생길 것인가?
모든 게 관치 탓이라는 주장이 있다. 정권 불문 약탈적 이자와 과도한 배당성향을 언급한다. 구조조정은 서별관에서 이루어진다. 금융기관 리더십과 거버넌스에 수시로 개입한다. 촘촘한 제품, 가격, 행위 규제가 일상이다. 자생력, 경쟁력, 혁신이 생길 수 없다.
반대편에선 한국 사회와 문화를 탓한다. 서구 금융의 핵은 사업을 위한 모험자본이다. 농자천하지대본 사회에서 금융은 기껏해야 춘궁기를 넘기는 소비 유연화 도구였다. 두 자릿수 이자와 현금인출기 수수료는 약탈행위다. 빚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 주식 투자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기성세대 밥상머리 금융교육이다. 우리는 금융DNA가 없다고 한다.
관치와 DNA 모두 불완전한 설명일 뿐이다. 폐쇄경제하 외환관리를 시작으로, 관료는 고도성장기 프로젝트 선별과 신용 할당을 진두지휘했다. 성장의 모태다. 자율·개방화 이후에도 관치의 그림자는 여전하다. 그럼에도 해외 신용평가기관이 우리의 국가 신용도를 높게 보는 중요 이유 중 하나는 금융당국의 위기관리능력이다. 금융 안정성과 소비자 보호다.
DNA가 유전이라면, 오늘날 한국인들은 돌연변이다. 세계 3대 사모펀드 리더십에 한국인이 있다. 세계적 문제아 빌 황과 권도형은 도대체 어느 민족이란 말인가? 돈에 눈이 멀어 수시로 주가조작 사건이 터지는 이 나라 사람들의 금융DNA는 자못 탐욕스럽다.
제도는 경로 의존적이며, 현상은 사회적 균형을 반영한다. 스스로 묻는다. 삼성전자 같은 금융기업이 생기고, 금융이 산업을 주도하며, 여의도·부산·송도에 금융중심지가 생기는 것을 우리는 정말 바라는가? 하루아침에 직원 절반을 해고하는 노동 유연화를 감내할 것인가? 현금 인출에 2000원씩, 해외 송금에 수십만 원씩, 금융기관의 긴 대기줄에 버럭 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한국 금융에 굴레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경제의 성장 경로와 기성세대의 사회적 선택이 만든 결과다. 한국 금융의 신세대가 그 굴레를 벗고 조금 더 사회의 혁신과 경제 성장에 기여하도록 정부는 네 가지 점에 유의하자.
우선, 금융당국은 기업 구조조정에서 발을 빼고 잠재성장률 둔화를 막기 위한 혁신성장기업 발굴과 서민금융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 부실기업 정리 및 기업 대형화를 위한 인수·합병은 자본시장, 특히 사모펀드에 맡기자.
둘째, 금융혁신은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금융 안정에 집중하자. 전업주의에서 벗어난 금융과 산업의 결합 추세, 금융상품의 제조와 판매 분화 추세, 전통(legacy) 금융을 탈피한 디지털 기반의 핀테크 기술 확산 추세, 디지털 자산 기본법 제정이 임박한 환경 변화다. 디지털 기술이 견인하는 다양한 금융산업의 기회는 조건 없이 민간에 허용하자. 정부는 정보 보호와 이용자 피해 최소화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셋째, 유럽 지속가능성 보고기준, 미국의 환경공시기준에 발맞추어 우리나라도 지속가능성 보고기준 채택이 예견되고 있다. 이는 금융기업의 투자기업 심사는 물론 녹색채권, 지속가능대출 시장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정부는 정책적 지원과 함께 금융기업의 그린워싱을 감시해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견인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글로벌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전통 금융업의 해외 진출에 족쇄가 되는 자본 확충과 관련한 규제를 완화하자. 기왕 벌인 금융중심지 사업, 세계적 금융기관을 유치하겠다는 미련은 이제 버리자. 강점을 활용해 핀테크 및 디지털 자산업체를 집중 유치하고 파격적으로 지원하자.
[이한상 한국회계기준원장·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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