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사실상'은 사실(fact)과 다르다
지난 24일 오후 9시 48분(한국시간). 대통령실은 단 한 줄의 서면 브리핑을 냈다. 같은 날 오후 9시 40분, 수단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 28명을 태운 버스가 우리 군용기가 기다리고 있는 포트수단 국제공항에 진입했다는 내용이다. 우리 교민들의 안전이 확보됐기에 '사실상' 구출 작전이 성공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다음 날 배달될 신문을 만드는 기자들은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기사 작성 마감시간까지 약 1시간만을 남겨 두고, 당직부장과 상의에 돌입했다. 그 결과 일단 공항까지 교민들을 대피시켰다는 내용을 기반으로 기사를 작성하되, 별도로 확인되는 내용이 있다면 추가하자는 결론이 났다.
구출 작전을 지휘한 국가안보실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공항에서 대기하던 공군 수송기에 교민들이 탑승했다는 소식을 접한 오후 10시 11분에서야 10시 30분에 진행될 브리핑을 공지했다. 브리핑 직전, 이륙 사실이 전해져 임종득 2차장 입에서 "안전하게 위험 지역을 벗어나게 됐다"는 발표가 나왔다. 매일경제 편집국도 향후 행선지를 적시한 표현을 기사에 담았다. 이 모두는 확인된 '사실'을 기반으로 국민들에게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26일 오후 5시 30분(현지시간) 김태효 안보실 1차장은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브리핑하며 "우리 국민들이 '사실상' 미국과 핵을 공유하면서 지내는 것처럼 느끼시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다음 날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는 "우리는 이것을 '사실상 핵공유'로 보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양국 정상이 도출해낸 역사적인 '워싱턴 선언'의 내용보다 양국의 견해차가 부각되는 순간이었다. 대통령실은 "용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며 "미국은 핵공유에 대해 사전적, 정치적, 군사적 정의가 있는 것 같다"고 진화에 나섰다.
적확한 용어 사용은 신문을 제작하는 업에 종사하는 이로써 항상 고민해야 할 문제다. 말 한 마디, 용어 하나에 영향을 받는 건 외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외교 분야의 언행은 국가 신뢰도를 좌우할 수 있기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박윤균 정치부 gy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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