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양다리' 신흥국에 미국 골머리"…기밀문서로 본 속마음
중앙아 '중국 이롭다'…전문가 "미 도전받는 시대 위험분산 전략"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미국과 중국·러시아의 대치 국면 속에서 주요 신흥국들이 이들 강대국 사이에서 줄타기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챙기려 해 미국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온라인 채팅 플랫폼 '디스코드'에 유출된 기밀문서들을 보면 미국이 더는 도전받지 않는 슈퍼파워가 아닌 시대에서 인도, 브라질, 파키스탄 등 주요 신흥국이 자국 이익을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으로부터 수십억달러에 이르는 경제·안보 지원을 받았지만 현재 중국에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하고 있는 파키스탄이 대표적이다.
유출된 문서에 따르면 히나 라바니 카르 전 파키스탄 외교부 장관은 '파키스탄의 어려운 선택'이라는 제목의 내부 메모에서 파키스탄 정부가 서방을 달래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파트너십을 유지하려다 궁극적으로 중국과의 '진짜 전략적'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이익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2월 17일자 문서에는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는 유엔 결의안 표결과 관련해 고심한 내용이 담겨 있다.
샤리프 총리의 보좌관은 샤리프 총리에게 서방이 지지하는 이 결의안에 파키스탄이 찬성하면 에너지 거래 등을 하는 데 러시아와의 관계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철군을 요구하는 이 결의안은 2월 23일 유엔 총회에서 채택됐지만 당시 파키스탄은 기권했다. 심각한 경제난에 처한 파키스탄은 이달 중순 저가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시작했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가동하는 안보협의체 쿼드(Quad)의 멤버인 인도도 미국과 러시아 어느 한쪽 편을 서는 것을 피하며 줄타기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에너지, 경제적 측면 등에서 러시아와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것.
아지트 도발 인도 국가안보보좌관이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와 2월 22일 나눈 대화 내용은 이러한 인도의 입장을 보여준다.
유출된 문서에 따르면 도발 보좌관은 '상당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인도가 주재하는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문제가 나오지 않게 노력하고 있다며 파트루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를 안심시켰다.
실제로 일주일 뒤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G20 외교장관 회의에서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의견 차이로 인해 더 광범위한 글로벌 도전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 역시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미국과 중국 등의 경쟁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2월 17일자 미국 대통령 직속 국가정보국장실(ODNI) 문서에는 이 지역의 지도자들이 "가장 즉각적인 결과물을 제공하는 국가와 협력하기를 열망하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중국"이라고 평가한 내용이 적혀 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러시아 사이에서 중재자를 자임하며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유출된 문서에 따르면 룰라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사이를 중재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해 '세계 평화 블록'을 만드는 방안을 이달 중국 방문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논의할 계획이었다.
러시아 외무부 관리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침략자-피해자' 구도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룰라 대통령의 이 제안을 지지했으며 룰라 대통령은 중국에서 돌아온 직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회동했다.
미국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학자 마티아스 스펙토르는 중국이 새로운 경제·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약해졌지만 서방의 압력을 물리치는 능력을 보여줘 미국이 강력한 새 경쟁에 직면한 이때 개발도상국들이 재조정에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10년 안에 누가 선두 자리를 차지할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이들 국가로서는 위험을 다각화하고 분산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yunzh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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