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자본주의' 시대의 걸림돌 [김현아의 IT세상읽기]

김현아 2023. 4. 3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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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데이터 쓰는데 중복보호·중복규제
특허청, 산자부, 과기정통부 데이터 관할권 다툼에 누더기
부처간 데이터 공유 꺼리게 만든 제도 바꿔야
크롤링 어려운 아래한글, PDF 문서도 문제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왼쪽부터 정상조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과 고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위원장. 사진=뉴시스

“저작권법 개정안에 데이터 활용에 대한 면책 규정이 들어가 있었지만, 아직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다른 법들(부정경쟁방지법, 디지털전환촉진법)이 개정되면서 중복 보호, 중복 규제가 심각한 상황이죠.”(정상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4월 24일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 제3회 AI윤리법제포럼)

“왜 원팀 정부가 안 되는 줄 아세요? ‘OOO기본법’ 때문입니다. 이런 법들에선 목적 사업 외 데이터 공유가 정말 쉽지 않죠. 예외 조항이 있지만, 공무원 입장에선 패널티가 강해 움츠러듭니다. 데이터를 주는 쪽이 아니라 데이터를 가져가는 쪽에서 개인정보 유출의 책임지도록 바꿀 예정입니다.”(고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위원장, 4월 26일 동북아ICT공동체포럼)

산업화 시대에 쌀로 평가받았던 게 반도체라면, 인공지능(AI)시대에 그 자리는 아마 ‘데이터’가 차지할 겁니다.

인간의 말과 글을 따라 하는 AI는 바로 데이터에서 출발하기 때문이죠. 코로나19로 데이터를 무기로 했던 빅테크들이 다소 주춤한 것은 사실이나, 챗GPT나 MS 빙챗 같은 ‘생성형AI’는 일상을 크게 바꿀 것으로 보입니다. 빌게이츠는 PC나 인터넷의 발명보다 더 혁명적이라고 평가했죠.

그런데, 우리나라가 데이터 경제로 나가는데 풀지 못한 숙제도 상당한 듯합니다.

국내 최고의 지식재산권 전문가인 정상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님 말씀부터 들어보시죠. 그는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최고의 지재권 전문가이십니다.

기업이 데이터 쓰는데 중복보호·중복규제

정상조 교수님은 데이터뉴딜이라고 하면서도, 컴퓨터가 정보분석을 위해 데이터를 복제·전송할 때 저작권법의 예외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항이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점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저작권법 42조에 ‘저작물에 표현된 사상이나 감정을 향유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필요한 한도 안에서 저작물을 복제·전송할 수 있다’는 조항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죠.

그는 또, 특허청·산업부·과기정통부가 모두 데이터 관할권을 주장하면서, 부정경쟁방지법, 산업디지털전환촉진법, 데이터기본법 등을 앞다퉈 만들어 중복 입법 문제가 발생한 점도 지적하셨습니다. 데이터기본법은 데이터자산의 보호는 부정경쟁방지법을, 데이터 활용 부분은 저작권법을 들이대서 법의 일관성도 지키지 못했다고 하셨죠.

정상조 교수님은 “이처럼 날림이어서 변호사들이 할 일이 많을 순 있지만, 중복 보호와 중복 규제는 풀어야 할 문제”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지난 정부에서도 국무총리나 대통령을 설득하진 못했다고 하셨지만요.

데이터 공유 꺼리게 만든 제도…아래한글·PDF 중심 문서도 문제

고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위원장님 말씀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국민이 네이버에서 키워드를 검색하듯이 행정업무를 한 사이트에서 첨부서류 없이 해결하려면, 부처간 데이터 공유는 필수적이나, 지금은 공무원 개인이 공유하고 싶어도 목적외 사업외에 데이터를 공유하면 3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OOO기본법’ 때문에 공무원들이 꺼린다는 것이죠.

고 위원장님은 “그래서 똑똑하게 같이 뛰는 원팀 정부를 위해 데이터 활용을 가로막는 법령을 전면 개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법률 제정 권한이 없는 디지털플랫폼정부특별법을 만들어 걸림돌을 해결하겠다는 것이죠. 현재 국무통리 지시로 디지털플랫폼정부특별법안에 대해 법제처가 작업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 위원장님이 말씀하신, 크롤링에도 관심이 생겼습니다. 사실 국내 정부부처들은 대부분 아래 한글을 쓰거나 PDF로 자료를 만드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이는 AI 개발을 위해 긁어오기 어렵습니다.

그는 “마음 같으면 AI리더가 못 읽는 한글 사용을 전면 폐지하고 싶은데 그렇게는 못하고, 한글로 예쁘게 만드는 기술을 가진 공무원들도 많다”면서 “일단 지금 단계에선 AI가 읽을 수 있게 바꾸는 소프트웨어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예전에 이런 글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 별도의 작업 없이 긁히지 않는 PDF는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말요.

좀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나, 생성형 AI 시대에 우리나라가 앞서 가려면 데이터의 수집부터 가로막는 일은 개선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다행인 점은, 디플정 노력 덕분에 법원행정처와 행정부 간 데이터 교류가 차츰 시작될 조짐이라네요.

지금은 법원행정처에서 행정부에 행정정보공동망을 통해 주는 서류가 대부분 PDF 형식이어서, 동사무소 직원들이 가족관계증명원 등을 받으면 일일이 고용부 포털 등에 타이핑해야 하는 구조인데 차츰 바뀔 것으로 보입니다.

고진 위원장님은 “사법부가 PDF를 선호했던 이유는 전산이 나오기 전에 수기로 작성된 주민등록 등·초본 등이 있어 뒤에 스캔해 붙였기 때문이고, 이는 서류의 완결성을 위한 것이었다”면서 “하지만 80~90% 정도의 서류는 이런 일이 필요 없어 일단 할 수 있는 부분부터 바꿔 나가기로 법원행정처와 이야기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데이터에 대한 보호와 활용의 질서를 균형있게 만들고, 부처 간 데이터 공유의 걸림돌을 치우는 것, 쉽게 공유할 수 있는 형식을 갖추는 것 등이 정상조 교수님과 고진 위원장님 등 데이터 전문가들이 내놓은 데이터 경제 활성화의 해법인 것 같습니다.

김현아 (chao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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