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스료 인상 안 하더니…국힘은 사장 사퇴 외치며 ‘한전 탓’
당정이 2분기(4∼6월) 전기·가스 요금 인상 여부를 한 달 넘게 결정하지 못하면서 4월에 이어 5월도 요금 동결 상태로 시작한다. 더는 미루기 힘든 요금 인상 여부 결정을 앞두고, 여당인 국민의힘이 정승일 한국전력사장(한전) 퇴진요구 등 ‘한전 탓’에 몰두하며 책임 돌리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 3월31일 당정협의회에서 2분기 전기·가스 요금 결정을 잠정 보류하고 국민 여론 수렴 후에 ‘조속한 시일’ 내에 요금 인상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30일까지 인상 여부 결정 시기조차 정하지 못했다.
30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전의 적자엔 경영상 커다란 과오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한전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 모두 뼈를 깎는 자성과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2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방만 경영과 도덕적 해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즉각 그 자리에서 물러나기를 바란다”며 한전 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에 앞서 박 의장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노력 선행”(3월 31일 당정협의회)→“국민이 ‘그만하면 됐다’고 할 때까지 뼈와 살을 깎는”(지난 6일 민당정간담회)→“도덕적 해이의 늪에 빠진 채 요금을 안 올려주면 다 같이 죽는다는 식으로 국민 겁박하는 여론몰이만 한다”(지난 20일 민당정간담회)며 ‘한전 탓’을 점점 고조시켰다.
그런데 한전의 지난해 32조 적자는 ‘경영진의 무능력’보다는 원가보다 싼 전기 공급으로 인해 발생했기 때문에 경영진 교체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이에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에너지정책학)는 “사장이 바뀐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데도 그다음에 어떻게 하자는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런 가운데 한전은 당의 요구대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한전은 지난 20일 민당정협의회 다음날인 21일 입장문을 내어 “인건비 감축, 조직인력 혁신,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 및 국민편익 제고 방안이 포함된 추가대책을 조속한 시일 내 마련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정 사장 사퇴 요구가 나온 다음 날인 29일에는 비상 현안회의를 열어 추가 자구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한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한전과 가스공사가 준비하는 내용을 계속해서 듣고 있다”면서도 “자구책 발표 시기와 관련해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한전 사장 사퇴 요구에서 보듯 이번 전기·가스 요금 인상 여부 결정과 관련한 특징은 여당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국민에게 민감한 영향을 미치는 이슈들에 관해 당정협의회를 열며 정책 주도권을 가져가고 있다. 지난겨울 ‘난방비 폭탄’으로 국민 여론을 체감한 전기·가스 요금 이슈도 그중 하나다. 앞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1일(현지시각)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동행 기자단과 가진 간담회에서 “최종적으로 당에서 판단할 부분이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늦어도 이번 달에는 2분기 요금을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한 바 있다. 요금 결정의 최종적 판단은 당에서 하는 것이라고 공식화한 부분으로 향후 요금 결정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말로 해석됐다. 그동안에도 집권여당이 요금 결정에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했지만, 최소한 표면상으로는 전기사업법과 물가안정법에 따라 산업부와 기재부가 협의를 통해 결정해왔다.
오는 5월에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 전기·가스 요금 인상이 올해 마지막 인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당의 주도권이 강해지는 만큼 올해 3분기(7∼9월), 4분기(10∼12월), 내년 1분기(1∼3월) 요금 인상은 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더욱이 3분기와 4분기는 각각 냉방과 난방을 많이 쓰는 시기이고, 내년 1분기는 총선 직전이기 때문에 요금 결정에 정치적 고려가 더 반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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