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 미국 전문가 평가 “워싱턴 선언 후속조치 중요···한중관계 관리도 과제로”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결과는 정상 차원에서 확장억제 강화를 약속한 ‘워싱턴 선언’의 채택이다.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은 29일(현지시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신설되는 한·미 핵협의그룹(NCG)이 양국 간 핵 운용 협의 틀을 제도화했다면서 후속조치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전방위적으로 동조를 강화한 만큼 한·중관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잠재적인 마찰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오미연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한국학 프로그램 소장은 워싱턴 선언에 대해 “미국이 현 시점에서 줄 수 있는 최대치를 얻어낸 선언문”이라며 “미국 핵무기 운용에 대한 정보 공유와 공동 계획 메카니즘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한국은 (유사시) 핵 보복 대비와 관련 좀더 많은 발언권을 갖게 됐고 미국은 핵무기 통제권을 유지하게 됐다”고 말했다. 선언이 한국의 핵확산금지조약(NPT) 상 의무 이행을 명문화한 것을 지칭한 것이다. 프랭크 자누치 맨스필드재단 소장은 “전략자산의 정기적인 한반도 전개는 한국 국민과 정부를 다시금 안심시킬 것”이라며 “북한이 신뢰성이 제고된 확장억제에 직면하게 됐기 때문에 핵무기 사용이나 사용을 위협하는 것을 막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 선언의 성과를 높이 평가한 전문가들은 “지속가능성이 과제(스나이더)”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협의 내용(오미연 소장)” 등 실행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스나이더 연구원은 “NCG가 북한의 군사적 발전보다 앞서 나갈 능력을 보여주려면 공동대응 체제를 활동보다 신속하게 구축·이행하고, 미국은 정상 차원에서 지속적인 관심과 정치적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 분야에선 한국 기업들이 맞닥뜨린 최대 현안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 등에서 뾰족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 소장은 이와 관련 “대선을 앞두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이 원하는 수준에서 구체적인 해법을 논의하고 공동성명에 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기업 입장에선 정책의 예측 가능성과 지속성이 매우 중요한 만큼 수출 통제 및 보조금 지급 등과 관련 앞으로 양국 간 긴밀한 사전 조율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이버·우주 분야 협력 확대를 약속한 것을 두고는 “한국의 달·화성 탐사 참여 기회가 본격 열릴 것(자누치)”, “장기적으로 재정·안보·정치적 차원의 결실로 이어질 것(스나이더)”으로 전망했다.
대통령실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여부가 앞으로 한·미관계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계속 주목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오 소장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과 영향력이 달라진만큼 한국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국제안보 주요 이슈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앞으로 더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누치 소장도 “(한국산 무기의) 높은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 미국 무기체계와의 호환성 때문에라도 이 문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나이더 연구원은 “윤 대통령이 이미 한국의 우크라이나 정책 변화 가능성을 예고했지만 실제 변화는 회담 이후 G7 등을 통해 나타날 수 있다”며 “(외신 인터뷰 등을 통해) 무기 지원으로 나아갈 기초를 놓은 윤 대통령이 한국 국민에게는 아직 근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않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한·미 정상회담 후속조치와 더불어 한·중관계를 관리하려는 노력도 관건으로 떠올랐다고 분석했다. 오 소장은 “워싱턴에 한·미동맹을 최우선에 두고 중국 견제에 동참할거라는 메세지가 분명히 전달된 만큼 앞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고 발전시켜 나갈 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 소장은 특히 “한·미·일 협력이 한국에게 왜 중요한지, 한·미동맹의 심화 및 격상이 한·중 관계에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중국에게 잘 전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나이더 연구원도 “이번 회담에서 중국 문제는 중심 주제라기 보다는 배경의 역할을 했지만, 분명 한·미가 기술 및 공급망 협력을 심화하도록 촉진했다”면서 “깊어진 한·미 간 동조가 한·중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자누치 소장은 전체적으로 이번 국빈 방문을 후하게 평가하면서도 “북한과의 외교를 위한 의미있고도 실현가능한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미가) 거듭 대북 대화 의지를 밝혔지만 무엇을 논의할지를 분명히 해야 할 때”라며 “비핵화를 유일한 의제로 삼으면 북한은 계속 비타협적인 자세를 취할 것이므로 새 의제를 올릴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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