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세대’는 어쩌다 민지(MZ)가 되었나 [아침햇발]
[아침햇발]
황보연 | 논설위원
“제가 20대일 때는 청년을 ‘삼포세대’로 부르더니, 지금은 ‘엠제트’(MZ)라고 불러요. 전자가 굉장히 불행하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세대로 호명된 데 비해, 후자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소비 지향적인 세대로 통하더군요. 저는 달라진 게 없는데, 청년에 대한 시선은 왜 이렇게 바뀐 걸까요?”
지난 24일 ‘나이·세대·시대’를 주제로 열린 두산인문극장 강연장. 1992년생이라고 밝힌 청년이 던진 질문이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했다는 삼포세대는, 2015년을 전후해 청년세대에게 붙은 이름표였다. 고단한 청년들의 삶을 빗대, ‘헬조선·각자도생·노오력’이 화두로 떠올랐던 시절이다. 질문자는 서른을 갓 넘긴 청년이다. 그가 20대를 지나오는 동안 엠제트로 호명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청년세대를 단일한 특성을 가진 집단으로 묶어내려는 세대담론은 지난 십수년간 끊임없이 등장했다. 비단 한국에서만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미국의 ‘밀레니얼’이나 일본의 ‘사토리’, 중국의 ‘바링허우’ 등이 대표적이다. 2000년 이후 성인이 된 1980년대생에 대한 세대 호명이 유독 많았다. 새 천년으로의 전환기에 대한 의미 부여가 남달랐던 영향이다. 이후 제트(Z)세대(1990년대 중후반 이후 출생자)로 한번 더 선이 그어졌다. 1970년대 태어난 엑스(X)세대의 자녀들로, 스마트폰·유튜브와 함께 자랐다고 해서 ‘디지털 네이티브’로도 불린다.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엠제트’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19년 무렵이다. 밀레니얼과 제트를 합친 것으로, 10대부터 40대 초반까지 매우 넓은 범위의 연령대를 하나의 세대로 묶었다. 처음에는 주로 기업들의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됐다. ‘○○(제품명)에 빠진 엠제트’ 따위의 기사가 무수히 양산됐다. 정치권에선 2021년 국민의힘이 전당대회에서 이준석(1985년생) 대표를 선출한 것이 분기점이 됐다. 특정 정당에 대한 충성도보다는 그때그때 이슈에 따라 지지 의사를 드러내는 2030에 대한 공략은 정치공학적으로도 중요한 화두가 됐다.
엠제트 담론이 정치권과 기업의 전략적 도구로 쓰이면서, 청년들의 현실을 반영하기는커녕 왜곡할 소지가 커졌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가 1990년 이후 종합일간지, 경제지 18곳, 방송사 4곳의 기사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2012년 이후 세대갈등 담론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이후로는 불평등의 원인을 세대 간 경쟁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큰 폭으로 늘었다. 전체 취업자의 0.7%에 불과한 ‘50대 대기업 정규직 노조원’이 청년실업·비정규직 문제의 원인이라는 도식적 인과관계만 앞세우는 식이다. 실제로 정부·여당은 지난 3월 주당 최대 69시간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근로시간 개편안’을 “엠제트가 원하는 방향”이라며 밀어붙이려다, 거센 반발 여론에 한발 물러선 바 있다. 당정이 ‘엠제트 노조’라고 이름 붙인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조차 장시간 노동을 부추길 수 있다며 정부안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갈수록 청년세대 내 계층화가 굳어질 조짐을 보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세대담론의 폐해는 훨씬 더 심각해 보인다. 같은 연령대는 삶의 조건도 비슷할 것이라는 착각에 기반한 세대주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탓이다. 19~34살 청년 패널을 고용·소득·사회적 보호 수준에 따라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눈 뒤, 2008년부터 2020년까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추적 조사한 결과(이승윤 중앙대 교수)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 비정규직으로 일하거나 시간당 중위임금(소득)의 3분의 2 이하를 버는 경우, 4대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으면 불안정한 상태로 간주되는데, 해당 기간에 평균적으로 불안정성이 지속되는 약 46%의 집단과 안정성이 이어지는 26%의 집단으로 양극화되고 있었다.
여야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엠제트용 정책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천원의 아침밥과 교통·통신비 지원, 학자금 이자 면제 등등. 각각의 정책 하나하나가 불필요하다고 따지는 것이 아니다. 당장 청년 유권자의 환심을 사느라 민원성 이슈에 치우치다 보면, 좀 더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할까 걱정스럽다. 2010년대 이후 청년 당사자 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이미 정책 담당자들의 책상 서랍에는 고용·주거를 비롯한 청년정책 의제가 쌓여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론 이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정체불명의 엠제트를 좇느라, 청년의 삶에서 더 멀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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