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소용없는 수단, ‘다르푸르 악몽’ 우려 커져

수단 서다르푸르 주도 엘제네이나에서 29일(현지시간) 수단군과 준군사단체들 간의 전투로 인해 물건이 흩어진 시장을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내란 중인 수단에서 빛 바랜 휴전합의로 과거 20년간 30만명 이상이 학살당했던 ‘다르푸르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CNN 등에 따르면, 정부군과 반군 신속지원군(RSF) 간 무력 분쟁으로 인해 수단 서부 다르푸르에서 안보 공백이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다르푸르에선 의료 시설과 민가, 시장이 불탔으며 현지 민간인들조차 RSF와 민병대에 맞서 자체적으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다르푸르 감시단체 ‘다르푸르 네트워크’에 따르면, 지난 주 다르푸르 엘제네이나에서 아랍 민명대와 민간인 사이의 전투가 벌어졌다. 현지 민간인들은 경찰서에 있는 무기로 무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엘제네이나가 충돌, 약탈, 방화로 혼란에 빠졌으며 민간인들이 쫓겨나고 100명 가까이 숨졌다고 밝혔다. 또한 인도주의 단체, 시장 등이 약탈당했으며 보건소 대부분이 기능을 멈췄다고 밝혔다.

20년 전 ‘다르푸르의 비극’이 되풀이 되리란 우려 역시 커졌다. 다르푸르 변호사협회는 “엘제네이나에서는 군인들이 민가를 향해 로켓을 쏘고 있다. 기관총과 방공 무기가 사용된다는 보고도 있다”고 밝혔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수단 담당자 모하메드 오스만은 “다르푸르의 상황은 하르툼과 똑같다. RSF가 수단군과 싸우고 있는데 민간인들이 포화에 휘말린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권단체 관계자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긴장과 전투는 내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수단 항구도시 포트수단에 지난 26일(현지시간) 수단을 떠나려는 이들이 모여들었다. AFP연합뉴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은 “RSF와 정규군 간의 적대 행위가 공동체 간 폭력을 촉발하면서 다르푸르에서 폭력이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단의 현 여건이 “오랜 민족적 긴장이 전면에 부각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다르푸르는 수단 서쪽 지역을 일컫는다. 면적은 캘리포니아 정도로, 차드와 길게 접경하며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리비아와도 맞닿아 있다. 2000년대 초 이 지역에선 독재자 오마르 알바시르 당시 대통령과 수단 군부가 아랍 전사들로 구성된 군대 ‘잔자위드’를 결성해, 자신의 통치에 반대하는 아프리카계 집단 대부분을 진압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성폭행, 살인, 방화, 인종청소가 이뤄졌으며 30만명 이상이 학살당하고 270만명이 난민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알바시르는 대량학살 혐의로 2009년 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됐다.

이후 잔자위드는 2010년 RSF로 틀을 바꿔 현 내란의 주축이 됐다. RSF를 이끄는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장군은 다르푸르 출신이다. 만약 RSF가 수도 하르툼에서 정부군에 밀려 패배할 경우 다르푸르로 퇴각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정부군과 RSF는 휴전에 합의했으나 하르툼을 비롯한 각지에서 교전이 보고돼 무색해진 상황이다.

지난 27일(현지시간) 수단 하르툼 남부에서 주민들이 피난길에 오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각국은 이날까지도 수단에서 자국민 대피를 이어갔다. 홍해에 면한 항구도시 포트수단에 외국인을 비롯해 탈출하려는 수단인들이 몰려들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그러나 수단 주재 서방 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하느라 여권을 맡겼던 수단인들은 도리어 발이 묶이는 처지에 놓였다고 알자지라통신이 전했다. 대사관 직원들이 신속히 수단을 떠나면서 영사업무가 전면 중단됐는데 이 과정에서 여권을 수단인들에게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말 스웨덴 대사관에 여권과 비자신청서를 제출했던 아마드 마흐무드는 “내가 언제 여권을 받을 수 있을지 알려달라. 집이 더이상 안전하지 않아 나라를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스웨덴 측에 전했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여권 반환은) 불가능해서 유감”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현재 수단 하르툼에서 가장 가깝고 유력한 탈출 경로는 약 900km 떨어진 이집트다. 그러나 여권 없이는 이집트에 들어갈 수 없다. 이달 초 스페인 대사관에 여권을 맡긴 아쉬라프 말릭은 이 때문에 가족들 먼저 이집트로 보내야만 했다. 그는 스페인 대사관 긴급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내가 스페인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자 전화를 끊고 나와의 대화를 거부했다”고 전했다.

알자지라는 이들과 같은 수단인이 수백명에서 수천명까지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마흐무드는 “폭격이 더 심해지더라도 여권이 없어서 떠날 수 없다. 외국 외교관들은 수단 직원들을 신경쓰지 않는 게 확실하다”고 지적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