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마약 엄벌에도 복용률 늘어… 치료 통해 ‘중독의 고리’ 끊어야 [세계는 지금]

윤솔 2023. 4. 3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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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마약과의 전쟁’이 남긴 교훈
美 연방 교도소 수감 45% 마약 사범
1년동안 10만3000명 약물과다 사망
‘마약 비범죄화’ 파격 결단 포르투갈
단순 투약자 조기 포착해 예방 주력
2018년 약물 사망률 EU보다 5배 ↓
“전과자로 낙인 말고 치료 기회 줘야”

“미국은 ‘마약과의 전쟁(War on Drugs)’에서 졌다.”

지난 2월 뉴욕타임스(NYT)에 실린 칼럼 제목이다. 최근 미국의 마약 관련 통계를 보면 이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2020년 9만3000명이었던 미국 내 약물 과다복용 사망자 수는 2021년 10만명을 돌파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최신 데이터인 지난해 11월을 기준으로 보면 이후 거진 1년 동안 또 10만3000명이 마약으로 목숨을 잃었다.
2017년 11월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노숙인 밀집지역에서 마약중독자가 스스로 헤로인을 주사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연합뉴스
미국이 마약 문제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의 마약 전담기구 마약단속국(DEA)은 지난해 미국 안팎에서 4억명을 죽일 수 있는 양의 펜타닐을 압수했고, 미국 내에서는 DEA를 비롯한 주 경찰 마약전담반, 미 연방수사국(FBI)의 협업으로 매년 116만명의 마약 사범이 체포되고 있다. “미국 마약정책의 방향을 바꿀 때가 왔다”는 NYT 칼럼 속 제안을 그저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최근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한국도 미국의 실패로부터 배워야 할 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강경책’ 고집한 미국

미국 정부는 오랫동안 마약 단속을 강화하고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으로 마약 사용을 억제하려 했다. 1981년 출범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중독 치료보다 형사 처벌에 중점을 두면서 이런 전통이 시작됐다. 백악관 국가마약통제정책국(ONDCP)에 따르면 1970년대 마약 예산의 57∼58%가 치료·예방에 투자됐는데, 이것이 레이건 행정부 첫해 28%로 삭감되면서 20년 동안 30% 언저리를 맴돌았다. 대신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반(反)마약법이 국회를 통과했는데, 일례로 1986년 레이건 대통령이 서명한 ‘약물남용 방지법’은 크랙 코카인을 5g만 소지하고 있어도 가석방 없이 최소 5년형을 선고하도록 의무화했다. 크랙은 코카인에 베이킹소다를 섞어 만든 저렴한 흡연용 마약이다.

레이건 행정부의 반마약 캠페인은 당시 마약 수요를 감소시키는 효과를 거뒀다고 평가받았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마약 소비량이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였다는 설문 결과가 나왔고, 군대 내 마약 소비량은 67%나 줄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미국인이 교도소에 수감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미국에서 비폭력 마약 범죄로 인한 수감자는 1980년 5만명에서 1997년 40만명으로 크게 늘었다. 특히 가난하고 젊은 흑인 남성 소규모 마약상이 주된 단속 대상이 되면서 1989년에는 20~29세 흑인 남성의 4명 중 1명이 수감 또는 가석방 중이었다. 전과자로 전락한 사람들은 사회와 단절됐고, 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다시 마약에 손을 대는 악순환이 반복했다. 이때 만들어진 사법 체계는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쳐 이달 15일 기준 미 연방 교도소 수감자의 44.7%가 마약 관련 혐의자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의 마약 소비 감소가 강력한 사법 제재 덕분이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수십 년이 지나 2018년 국제 비영리단체 퓨자선기금은 마약 사범 수감률과 약물 사용·과다복용으로 인한 사망률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계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비범죄화’ 실험한 포르투갈

미국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마약 문제에 접근한 국가도 있다. 포르투갈은 1980년대부터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서 값싼 헤로인이 유입되면서 90년대에 이르러서는 전체 인구의 1%가 이에 중독됐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로 심각해졌다. 높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감염률도 문제였는데, 포르투갈의 에이즈 감염률은 1999년에 인구 100만명당 88.3명에서 2000년에는 104.2명으로 늘어 유럽연합(EU) 평균인 25명을 한참 웃돌았다. 포르투갈 보건 당국에 따르면 에이즈 감염의 주요 원인은 정맥 내 약물 사용, 즉 마약 사용자들의 주사기 재사용 및 공유였다.

1990년대까지 포르투갈은 마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약 사범 형량을 늘리고 단속을 강화했다.

90년대 후반에는 전체 감옥 수감자 중 절반 가까이가 마약 사범으로 채워져 미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던 2001년, 포르투갈 정부는 국민의 마약 소비를 처벌하지 않기로 하는 파격적인 결단을 내린다. 이 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11명의 전문가로 이루어진 정부 자문기구가 있었다. 이들은 마약 사범들을 단속하고 구금하는 데 드는 비용을 재활치료와 예방에 쏟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방식은 단순 투약자를 전부 구금하는 것보다 훨씬 더 경제적이었고,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치료를 꺼리던 중독자들을 조기에 포착해 이들이 마약 관련 합병증이나 과다복용으로 사망하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포르투갈이 마약을 합법화한 것은 아니다. 개인 소비 목적의 마약 사용·소지에 대한 형사처분이 폐지되면서 포르투갈 국민이 처벌 없이 일정량의 마약을 소지할 수 있게 됐을 뿐이다. 다만 정부가 정한 보유량을 넘기면 마약상으로 간주해 재판을 받게 했고, 중독자로 판단되면 치료 시설로 보내졌다. 이 같은 제도는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포르투갈은 결과적으로 마약 비범죄화로 큰 효과를 봤다. 2018년 포르투갈의 약물 관련 사망률은 EU 평균보다 5배 낮았고, 미국의 50분의 1 수준이었다. 에이즈 감염률도 2000년 100만명당 104.2건에서 2015년 4.2건으로 대폭 감소했다.
◆“마약 없는 나라는 없다”

한국에서도 최근 마약 문제가 수면 위로 오르면서 처벌·단속 강화를 바라는 목소리들이 크다. 21일 국회 당정협의회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마약 사범을 “‘악’ 소리가 나도록 강하게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마약 확대를 억제하려면 처벌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장은 “매년 마약 검거가 얼마 이루어졌다는 소식은 들려오는데, 약을 하는 사람은 늘기만 한다”며 “밀수입·판매자 처벌은 강화하더라도 치료받을 사람이 자유롭게 치료받는 환경은 조성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마약 치료에 대한 인식 전환이 있었다. 1995년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49%는 마약 사범 형량 강화를 ‘강하게 지지한다’고 답했지만, 19%만이 ‘중독자 치료를 위한 예산 증대’에 이같이 답했다. 하지만 2019년 AP통신·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NORC) 공동조사에 따르면 과반수의 미국인이 마약 문제의 해결책으로 약물 오남용 치료 확대(63%), 중독자에 대한 차별 철폐(53%)를 지지했다.

박 센터장은 “우리 사회는 아직 중독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했다. 미디어에서 마약을 자극적으로 다루다 보니, 마약 중독을 질병보다 범죄로 보는 시선이 강하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 만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마약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대다수는 마약 사용자가 도덕성이 부족하고(80%), 사생활이 문란할 것(78%)이라고 생각했다. 박 센터장은 “마약이 아예 없는 나라는 없다”며 “마약 사용자를 모두 전과자로 만들어서 사회에 적응할 수 없도록 한다면, 이들은 계속 중독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윤흥희 한성대 마약알콜학과 교수는 “마약중독자의 뇌 손상에 대한 의료적 치료에는 한계가 있어 재발을 막으려면 심리적 치료가 중요하다”며 “현재 한국에서 청소년 마약 사범이나 초범에 대한 기소유예가 이뤄지는 것은 단순 투약자를 바로 전과자로 낙인찍지 말고 치료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아직 마약을 접하지 않은 청소년에게 약물 예방교육을 진행하고, 마약 사용자에게는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마약 확산을 막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윤솔 기자 sol.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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