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아이디어 베끼기 논란에 불신 퍼지면 혁신도 좌초" [긱스]
"누구든 뛰어들어 깃발 꽂아야 산업 경쟁력 향샹"
"플랫폼, 돈 버는 방식 바꿔야"
알고케어가 올해 초부터 롯데헬스케어와 영양제 디스펜서 사업 아이디어 도용 문제로 분쟁을 이어가고 있고, 닥터다이어리도 카카오헬스케어의 유사 서비스를 놓고 다툼을 벌이고 있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업계 전반에 불신이 퍼지는 조짐입니다. 대기업에 속하면서도 오랫동안 초기 스타트업 발굴에 힘써온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대표에게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무엇을 배우고 고쳐나가야 할지를 한경 긱스(Geeks)가 물어봤습니다.
"기술 혁신은 시간이 중요합니다. 초기 시장일수록 누구든 뛰어들어야 전체 경쟁력도 올라가요. 불신이 퍼지면 이제 막 시작한 디지털 헬스케어의 혁신마저 좌초될 수 있습니다."
정치권으로 옮겨붙은 대기업의 스타트업 아이디어 탈취 논란에 대해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알고케어는 올해 초부터 롯데헬스케어와 영양제 디스펜서 관련 사업 도용 문제로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 닥터다이어리도 카카오헬스케어의 유사 서비스를 놓고 다툼을 벌이고 있다.
지난 28일 경기 성남 본사에서 만난 정 대표는 "어떤 문제를 푸느냐와 어떻게 푸느냐는 구분해서 접근해야 한다"며 "특정 영역에 먼저 진입했다고 후발 주자에 '베끼기'라고 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대기업부터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벤처캐피털(VC)까지 경험한 정 대표는 "구글의 유튜브 인수나 마이크로소프트(MS)의 오픈AI 선점 같은 '아하의 순간'이 국내 대기업엔 없었다"며 "신규 사업팀을 내부에 만들 게 아니라 좋은 기업을 사들이며 혁신을 위한 속도전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Q. 알고케어, 닥터다이어리 등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대기업의 기술 탈취, 아이디어 도용 피해를 주장하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A. 그동안 달궈졌던 문제들이 이번 일로 끓어올랐다고 봐요. 문제는 한번 불신이 생기면 사이클을 타고 전체로 퍼지게 된다는 점입니다. 앞으로도 어떤 일들이 나올 때마다 '아이디어 도용'으로 한데 묶어 보게 될 텐데 그 아이디어를 나눠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영역에서 문제를 푸느냐와 어떻게 운영하느냐를 똑같이 봐선 안 됩니다. 독창성이 인정되고, 운영의 핵심이 너무 비슷하면 당연히 문제죠. 하지만 어떤 영역에 들어가는 것을 놓고 '베끼기'라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Q. 카카오헬스케어와 카카오VX도 아이디어 탈취 주장이 제기되는데 각 사안을 달리 보나요.
A. 카카오VX는 스마트스코어 출신 직원이 전 회사의 관리 계정에 접속했기 때문에 운영상 문제라고 봅니다. 카카오헬스케어의 경우 닥터다이어리와 비슷한 서비스를 내놨다고 해서 문제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처럼 이제 막 시작하는 시장에선 누구든 뛰어들어 전체 수준을 끌어줘야 합니다. 비슷한 서비스가 4~5개 나와서 경쟁하다 보면 전체 산업 경쟁력이 올라가는 거죠. 네이버와 다음이 서로 비슷한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인터넷 모바일 경쟁력이 향상된 것처럼요.
Q. 이번 아이디어 도용 논란이 기술 혁신을 방해할까요.
A. 혁신을 방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혁신은 일어나기 전까지 모두가 불신하죠. 그걸 하는 게 스타트업입니다. 지금은 뭐가 정답인지 모르기 때문에 각자 기업들이 뛰어들어 자기의 문제를 깨는 거죠. 먼저 진입했다고 후발 기업에 왜 따라하느냐고 할 수는 없는 거예요. 기술 혁신은 '다함께' 만드는 게 아니라, '그린필드(초원)'에서 경쟁하는 것과 같아요. 욕먹더라도 저기까지 빨리 가서 깃발을 꽂고 내 땅을 차지하는 게 중요하죠. 혁신엔 타이밍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Q. 오픈이노베이션이 더욱 위축될 것이란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옵니다.
A. 대기업의 오픈이노베이션은 스타트업 투자만이 아니라 사업적으로 혁신을 일어나게 하는 게 목적입니다. 그룹 전체적으로 스타트업을 아예 만나지 말라는 분위기가 생겨버리면 안 되지 않을까요. 기업 내부적으로 프로세스를 정비할 게 있으면 하고, 외부적으로 신뢰를 회복할 부분이 있으면 노력해야죠.
Q. 기업들은 어떤 운영 원칙을 세워야 할까요.
A. 대기업은 '베스트 팔로어' 전략으로 컸습니다. 신규사업 담당자가 더 잘하기 위해 다른 기업의 사업모델을 따라 하는 게 당연하다시피 했죠. 회사마다 윤리적인 원칙을 만드는 게 필요해요. 잘못인 줄 모르고 하는 게 많거든요. 대기업에서 신규 서비스를 내놓을 땐 관련 스타트업을 아예 만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이런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신뢰를 갖게 되죠.
Q. 카카오벤처스는 어떤 내부 가이드라인이 있나요.
A. 기존 투자한 회사와 유사한 스타트업은 투자 검토가 불가해요. 연락이 와도 기존 패밀리사가 있어 어렵다고 얘기하죠.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을 소개해 달라고 하면 해당 기업에 말하지 않고는 세부 자료를 보내주지 않아요. 그게 기본이죠.
Q. 대기업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하나요.
A. 메타의 인스타그램, 구글의 유튜브 인수나 MS의 오픈AI 투자 같은 '아하의 순간'이 한국엔 없었죠. 미국 데이팅 앱 틴더가 어떻게 국내 스타트업 하이퍼커넥트를 2조원에 인수했을까요. 미국 기업은 안에서 못 하는 것은 사서라도 한다는 데 '원점'이 찍혀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해요. 반면 국내 대기업은 속도전에 민감하지 않아요. 스타트업이 잘하는 부분이 있어도 '아직 멀었다'고 폄하하기 일쑤죠. 대기업은 '다 내가 해야 한다'는 문화가 있는데, 신규 사업팀을 직접 꾸리기보다는 좋은 기업을 인수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해요. 각자 기업이 속도전으로 가야 혁신이 가능합니다.
Q. 토스의 권고사직에 대해 쏟아지는 비판 여론을 보면 스타트업이 우리 사회에 정말 혁신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되묻게 됩니다.
A. 그런데도 스타트업이 사회를 혁신하고 있다고 감히 생각해요. 무엇보다 사용자 중심으로 서비스를 만들며 고객의 문제를 푸는 방식을 혁신하고 있죠. 또 뛰어난 사람들이 일하는 꿰뚫는 문화를 만들었어요. 물론 혁신이 좋은 것만 있진 않죠. 사람을 내보내는 것처럼 안 좋은 일일수록 커뮤니케이션과 프로세스가 중요한데 스타트업이 서툴죠. 하지만 직원들을 그대로 두고 회사가 어려워지면 그게 혁신일까요. 토스가 대규모 권고사직으로 시장 상황에 반응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제시했다고 생각해요.
Q. 왜 플랫폼이 적대시되고 있나요.
A. 플랫폼이 돈을 안 벌었을 때는 다 좋아했지만, 돈 벌기 시작하면서 다수의 중소상인과 택시 노동자를 건드리게 됐죠. 다수를 상대로 수수료를 받는 방식은 한계가 있어요. 사용자와 중간 공급자를 연결한다는 측면에선 혁신이 맞지만 돈 버는 측면에선 전통적인 방식이었어요. 결국 플랫폼이 돈 버는 방식을 바꿔야 해요.
Q. 챗GPT가 우리 산업의 방향을 어떻게 바꿀까요.
A. 딥마인드의 알파고는 일반 사용자에겐 진입장벽이 높았는데, 대화형 AI는 모두가 접할 수 있어요. 시장은 사용자가 반응하면서 열려요. 공급자가 생기고, 서비스 플랫폼이 만들어지면서 생성형 AI 생태계가 생길 거예요. 투자 관점에선 기반 기술-중간지대-서비스로 나눌 수 있어요. 기반 기술단에선 MS에 이어 아마존웹서비스, 구글도 대화형 AI를 출시하고, 국내 대기업도 경쟁하겠죠. 생성 AI를 활용한 서비스도 우후죽순 생겨날 겁니다. 현재 기반 기술과 서비스를 연결하는 중간이 비어 있는데, 2~3년 뒤면 데이터를 걸러내고, 비용 효율을 돕는 등 중간에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를 제공하는 숨은 고수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Q. 스타트업 투자 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보나요.
A. 갈수록 더 사람이더라고요. 스타트업마다 '죽음의 계곡'은 항상 옵니다. 10년을 내다보고 투자하기 때문에 10년 동안 정답을 찾아내려는 집념을 놓치지 않는 팀이어야 해요. 그동안 실패한 투자를 돌이켜보면 창업자가 빨리 포기한 경우들이더라고요. 끝까지 해보지 않고 이직 제안을 받아 뿔뿔이 흩어진 곳들이죠. 투자한 회사가 망했다고 투자자가 실패하는 게 아니에요. 사람을 잘못 본 게 투자자로서의 실패죠.
Q. 벤처캐피털리스트가 아녔다면 어떤 직업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나요.
A. 신규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스타트업을 창업했을 것 같아요. 글로벌 대기업 이베이 동남아에서 일할 때 이베이 US의 사용자 경험(UX)이 맞지 않아 동남아 판매자에게 맞춘 '미러링 포털'을 만들었더니 거래량이 쭉 오르더라고요. 사용자가 뭘 좋아하는지 파악해서 거기에 딱 맞는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데 재미를 느껴요.
Q. 앞으로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있나요.
A.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기업이라고 생각해요. 회사 규모마다 사람이 해야 하는 문제가 있고, 시스템이 풀어야 하는 문제가 있어요. 어떤 기업은 사람이 먼저라 체계가 엉망이고 반대인 경우도 있죠. 큰 기업일수록 사람만으로 일할 수 없어요. 시스템이 일할 수 있게 해줘야죠. 회사 성장 단계에 맞게 시스템이 함께 정착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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