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한일관계 복원 속도…올바른 역사인식 토대 위에 미래 열어야
(서울=연합뉴스) 정부의 강제 동원 해법 발표와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물꼬를 튼 한일 관계 복원이 점차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28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로 재지정하기 위한 절차를 개시했다고 발표했고, 다음날에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5월 7∼8일 한국을 방문해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양국 정부는 기시다 총리의 방한과 관련해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으나 협의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기시다 총리가 내달 19∼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이전에 방한하거나 G7 회의 이후라도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한국을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G7 정상회의 때 한미일 정상이 함께 만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화이트리스트 재지정은 의견 수렴 등의 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발표 내용을 볼 때 사실상 확정한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은 윤 대통령의 지난달 16~17일 방일 직후 일본을 다시 화이트리스트에 포함한 한국과는 달리 그동안 "한국 측 자세를 신중하게 지켜보겠다"며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었다. 양국이 상대에 대한 수출 규제를 해제하고 정상 간 셔틀 외교까지 복원할 경우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 최악으로 치닫던 한일 관계는 4년여만에 완연히 정상 궤도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일본의 발걸음이 갑자기 빨라진 것은 한미일 3국 협력 강화의 필요성이 거론된 지난 26일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의 담대하고 원칙이 있는 일본과의 외교적 결단"에 감사를 표하면서 한일 관계 개선이 한미일의 "3자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엄청난 영향력을 가져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공동의 번영과 안보에 대한 의지에 기반한 3국 협력의 중요성"은 공동 성명에도 포함됐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의 팽창, 그리고 북한의 무력 도발을 분쇄하기 위해 한일 간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 정부가 국내 여론의 부담에도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점을 높이 평가한 것도 이런 이유이다. 12년 만에 이뤄진 한국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과 미국의 환대, 정상회담에서 나온 발언 등이 일본에 일종의 신호로 작용해 행동에 나섰을 가능성이 크다. 과정이야 어떻든 한미일 협력 강화는 블록화 경향이 짙어지는 세계정세에 비춰 우리로서도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일본은 지정학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이다. 더욱이 중국과 러시아를 등에 업은 북한의 끊임없는 무력 도발이 한반도의 안정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한일 관계의 복원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일본에 대해 미덥지 않은 시선이 여전한 것도 사실이다. 한국이 대승적 차원에서 강제징용 해법을 발표한 데 이어 대일 수출규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등의 장애물까지 쾌도난마식으로 제거하는 동안 일본은 이렇다 할 상응 조치를 내놓은 것이 없다. 이제 겨우 화이트리스트 복원을 '검토'하고, 기시다 총리의 답방을 협의 중인 정도이다. 기시다 총리의 방한은 일본으로서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성사된다면 일본 총리의 방한은 2018년 2월 아베 신조 당시 총리 이후 처음이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한국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발표 후 "1998년 한일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1998년 한일 공동선언은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이 선언에 있는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일본의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는 언급하지 않았다. 기시다 총리가 방한한다면 지속 가능한 관계 발전을 위해 과거사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이고 진정성 있는 입장 표명이 있길 기대한다. 누구보다 가까이 지내야 할 이웃이 과거에 발이 묶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올바른 역사 인식을 토대로 엉킨 실타래를 풀고 함께 미래를 설계하는 것은 한일 양국 지도자 모두의 역사적 책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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