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성군'의 고민과 고뇌…뮤지컬 무대가 된 경복궁 근정전
"현장감 생생" 나흘 공연 일찌감치 매진…내달 구찌 패션쇼도 열려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주상 전하 납시오!"
지난 29일 밤 서울 경복궁 근정전. 붉은색 바탕에 가슴과 등, 양쪽 어깨 부위에 용의 무늬를 금색으로 수놓은 '곤룡포'를 입은 남성이 한 걸음씩 내디뎠다.
조선의 제4대 왕이자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재위 1418∼1450)의 등장이었다.
그러나 형인 양녕대군(1394∼1462)이 폐위되면서 갑작스레 왕위에 오른 탓일까.
한동안 어좌(御座·임금이 앉는 자리) 뒤에는 아버지인 태종(재위 1400∼1418)이 자리를 지키며 임금보다 더 큰 존재감을 드러냈고, 신하들의 견제도 만만치 않았다.
유교 정치의 기반이 될 각종 의례와 제도를 정비하고, 농업과 과학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며,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를 만들어 반포하기까지. 왕좌의 무게를 떠받든 건 숱한 고민과 고뇌였다.
경복궁의 중심인 근정전이 '위대한 성군' 세종의 삶을 보여주는 뮤지컬 무대로 변신했다.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 의식을 거행하는 등 국가의 중요 행사가 열리던 근정전 일대에서 뮤지컬과 같은 대중 공연이 펼쳐진 건 1954년 경복궁 개방 이후 처음이다.
현재 국보로 지정된 중요 문화유산인 만큼 공연 진행은 물론,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다.
경복궁 월대(越臺, 月臺) 위에는 뮤지컬 공연에서 쓰던 어좌를 뒀고, 아래에는 너비 11m, 폭 7∼8m 크기의 임시 무대를 설치했다. 관련 지침에 따라 바닥 돌과 품계석(品階石·품계를 새겨 정전 앞뜰에 세운 돌)에 영향이 없도록 최소한으로 작업했다.
관람석은 왕이 다니던 어도(御道)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플라스틱 의자를 배치했다.
맹태영 궁중문화축전 기술감독은 "문화유산을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사항"이라면서 "공연을 위한 짐 반입부터 바닥 돌 하나하나까지 정확히 범위와 규모를 확인하고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비가 그친 뒤 기온이 뚝 떨어져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관람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700석 규모의 관람석은 공연 시작 30분 전부터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빼곡히 찼다. 기온이 10∼11도에 머무르며 찬 바람까지 불자 롱 패딩 점퍼나 모자, 장갑으로 무장한 사람도 있었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근정전 건물이 다양한 색으로 빛나자 관람석에서는 연신 '와'하는 함성이 나왔다. 배우들은 2단으로 된 근정전 월대 이곳저곳을 거닐며 마치 조선 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 열창했다.
관람객들은 특히 태종 역을 맡은 배우 남경주가 왕에게 '악업은 본인이 질 테니 성군이 되어 달라'고 당부하며 어도를 따라 마지막 길을 걷는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머니와 함께 뮤지컬을 관람한 직장인 김모 씨는 "조선시대, 그리고 세종의 이야기를 다룬 공연인 만큼 일반 극장에서 느낄 수 없는 궁궐만의 현장감이 생생하게 느껴졌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코스타리카에서 온 관광객 장-폴 바르가스 씨는 "한국인 친구가 미리 예매해준 덕에 공연을 볼 수 있었다"며 "경복궁 방문은 처음인데 정말 '원더풀'(wonderful·아주 멋지다는 의미)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근정전 일대는 다음 달 패션쇼 런웨이로 또 한 번 변신할 예정이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는 5월 16일 근정전 앞에서 '2024 크루즈 패션쇼'를 열 계획이다. 근정전 일대에서 패션 브랜드 행사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구찌 측이 앞서 문화재청에 제출한 계획 등에 따르면 행사는 근정전 앞마당을 중심으로 하되 행각(行閣·궁궐 등의 정당 앞이나 좌우에 지은 줄행랑)을 모델이 걷는 무대 즉, 런웨이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최근 구찌를 통해 배포한 자료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경복궁의 진정한 매력을 전 세계인들이 알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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