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메’ ‘무드 샘플러’…아이돌은 그냥 컴백하지 않는다[K팝 머글의 덕후 도전기]
흔히 ‘덕질 DNA는 따로 있다’고들 합니다. 타고난 기질에 따라 덕질을 할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나뉜다는 것이죠. 그래서일까요.‘덕후’와 ‘머글’ 사이에는 거대한 강이 흐릅니다. 머글에게 덕후의 언어는 마치 외국어 같습니다. 수시로 진화를 거듭하는 K팝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콘텐츠 소비의 개인화가 심화하면서 이 간극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덕후 DNA가 없더라도 ‘학습’은 할 수 있습니다. ‘K팝 머글의 덕후 도전기’는 이 간극을 줄여보는 코너입니다. K팝 세계의 트렌드와 토막 상식을 전합니다. 덕후는 못 되어도, ‘좀 아는’ 머글은 될 수 있습니다.
※머글 :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유래한 단어로 마법사가 아닌 보통의 인간을 가리킨다. 현재는 특정 분야를 깊이 파는 ‘덕후’(오타쿠)의 상대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치열한 K팝의 세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노력은 필수다. 특히 휴식기를 거쳐 오랜만에 대중 앞에 서는 아이돌 그룹들은 최대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동원한다. ‘컴백 전 프로모션’은 그 노력 중 하나다.
컴백 전 프로모션이란 앨범 발매일 전에 음원의 일부나 콘셉트 영상 등 콘텐츠를 조금씩 푸는 것을 말한다. 새 앨범과 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리고 주목도를 높이는 것이 목적이다. 프로모션 기간은 그룹마다 다르지만 짧게는 2주, 길게는 4주 정도로 이뤄진다.
컴백 전 ‘맛보기’로 제공되는 콘텐츠에는 ‘하라메’ ‘무드 샘플러’ ‘콘셉트 포토’ 등이 있다. ‘하라메’란 ‘하이라이트 메들리’의 줄임말이다. 곧 발표할 앨범에 담긴 곡들의 일부분을 조금씩 모아 만든 짧은 길이의 메들리다. 팬들은 이를 통해 전체 앨범을 유추한다. ‘콘셉트 포토’와 ‘무드 샘플러’는 새 앨범의 콘셉트와 분위기를 보여주는 멤버들의 화보(사진) 또는 영상을 말한다. 이런 콘텐츠들은 며칠 간격으로 잡힌 일정에 맞춰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 등에 차례로 공개된다.
정식 앨범 발매에 몇주 앞서 ‘선 공개곡’을 발표하는 것도 흔하다. 최근 컴백한 걸그룹 아이브의 ‘키치’, 솔로 앨범을 낸 방탄소년단(BTS) 지민의 ‘셋 미 프리 파트 2’는 모두 선 공개곡이다.
음원, 영상 등 콘텐츠의 맛보기 제공 외에 물리적 공간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5월1일 컴백하는 5인조 걸그룹 르세라핌은 컴백 나흘 전인 4월26일부터 12일간 서울 성수동에 팝업 스토어를 연다. 팝업 스토어에서 굿즈를 사거나 디저트를 먹으면서 르세라핌의 정체성과 세계관, 새 앨범의 메시지를 알 수 있게 했다. 지난달 솔로 앨범을 낸 블랙핑크 지수도 새 앨범 콘셉트를 시각적으로 재현한 공간인 ‘플라워 하우스’ 이벤트를 열었다.
스케줄이 복잡할 땐 일정표가 필요한 법이다. 많은 그룹들은 컴백 전 프로모션 일정을 정리한 ‘컴백 타임 테이블’, 즉 시간표를 미리 발표한다. 컴백 2~3주 전부터 선 공개곡, 앨범 트레일러, 콘셉트 포토, 하이라이트 메들리 등의 공개 시점을 며칠 간격으로 잡아두고 이를 표로 정리해 알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간표가 있으면 팬들도 언제 공개될지 모를 콘텐츠를 애타게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컴백 타임 테이블에서도 각 그룹의 개성과 재치가 드러난다. 오는 8일 컴백을 앞둔 4인조 걸그룹 에스파는 최근 톡톡 튀는 타임 테이블로 화제를 모았다. 에스파가 지난 24일 공식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 42초 길이 영상에는 멤버들이 해외 길거리에서 뉴스 인터뷰를 하는 듯한 모습이 담겼다. 새로 나올 앨범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의 영상 같지만 핵심은 화면 아래에 흐르는 ‘한줄 뉴스’에 있었다. 팬들은 ‘4월27일 콘셉트 포토 공개’ ‘4월28일 앨범 디테일 공개’ 등 숨어있는 일정을 즐겁게 찾아냈다.
덕후들은 컴백 전 프로모션을 어떻게 바라볼까. 소위 ‘떡밥’이 많으면 그저 좋다는 팬들이 있는가 하면, 지나치게 긴 예열 기간이 오히려 기대와 재미를 반감시킨다는 의견도 많았다. 프로모션 기간이 길어지는 추세인 데 반해 정작 활동 기간은 짧아 ‘주객전도’라는 반응도 나왔다.
한 보이그룹의 팬인 A씨는 “하이라이트 메들리 같은 것은 컴백 직전까지 뮤직비디오처럼 열심히 돌려보며 기대한다”면서도 “(프로모션 기간이) 2주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보다 길면 긴장감도 줄고 늘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보이그룹 팬인 B씨는 “미리 공개된 음원 일부로 전체 곡을 상상하거나 세계관을 추리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재미를 못 느끼는 편”이라며 “ ‘팍’하고 빨리 나오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컴백이 아닌 신인의 데뷔 프로모션도 비슷한 형태도 이뤄진다. 데뷔 전 멤버를 순차적으로 공개하고 티저 영상을 내보내며 주목도를 높인다. 때로는 보편적인 패턴을 깨는 것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례도 나온다. 지난해 7월 데뷔한 4인조 걸그룹 뉴진스는 사전 정보 없이 ‘어텐션’ 등 데뷔 음반 수록곡 4곡과 뮤직비디오를 동시에 공개해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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