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독립운동가'에 가네코 후미코·후세 다쓰지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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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었지만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가네코 후미코와 후세 다쓰지 선생이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습니다.
가네코 후미코 선생은 독립운동가 박열 의사와 부부의 연을 맺은 뒤, 노동자 후원과 친일파 응징 활동, 무정부주의 운동을 펼쳤습니다.
이와 함께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후세 다쓰지 선생은 '일본의 쉰들러'로 불린 인권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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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었지만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가네코 후미코와 후세 다쓰지 선생이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습니다.
가네코 후미코 선생은 독립운동가 박열 의사와 부부의 연을 맺은 뒤, 노동자 후원과 친일파 응징 활동, 무정부주의 운동을 펼쳤습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 후 일본의 조선인 학살 과정에서 남편과 함께 연행됐다가 박 의사의 폭탄 구입 계획이 드러나 사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1926년 2월 도쿄 대심원 법정 공판에서 한복 치마저고리를 입고 자신의 이름은 '박문자'라고 밝힌 선생은 사형 판결 즉시 '만세'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지만, 옥살이 도중인 1926년 7월 의문의 죽음을 맞았고, 유해는 남편의 고향인 경북 문경에 묻혔습니다.
선생은 옥사한 지 92년 만인 2018년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습니다.
이와 함께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후세 다쓰지 선생은 '일본의 쉰들러'로 불린 인권변호사입니다.
선생은 1919년 '2·8독립선언'에 참여했던 재일조선인 유학생들과 '국가 전복 모의' 혐의를 받은 박열·가네코 부부를 대신해 법정에서 싸웠고, 가네코 선생의 유해를 거둬 한국으로 운구하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선생에게 200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
YTN 한연희 (hyhe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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