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예쁜 가짜 책을 산다고? 남한테 꼭 집 안 보여줘도 된단다
혹시 읽지도 못하는 책으로 집을 꾸미고 있진 않니? 집은 말이야, 네 취향과 너다움이 묻어나면 충분해. 그럴 듯하지 않아도 괜찮아.
얼마 전 좀 놀란 일이 있었다. 그래서 주제를 급하게 바꾸었다. 이 얘기를 같이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 집'에서 시작한다. 며칠 전 마법의 알고리즘으로 광고의 파도를 타고 타다가 '장식용 모조 인테리어 북, 뉴 시즌 페이크북'이라는 제품명에 이르렀다. "음, 페이크 북?" 페이크 북이라는 것이 대체 어떤 상품인지 모르겠어서 구경을 해보았다.
말하자면 모형 책이었다. 핸드폰 매장에 가면 인기 핸드폰과 외관은 똑같은데 실제 작동은 하지 않는 모형 핸드폰을 말하는 '목각 폰'이랑 똑같은 기능을 하는데 이건 책이었다. 인테리어에 좀 관심 있다 싶은 사람들에게 이미 잘 알려진 북유럽 잡지 'KINFOLK'부터 인기 패션 브랜드인 'LOWVE', 'TOM FORD' 등의 룩북(Look book)부터 'The Monocle'과 같은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의 단행본까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가격도 상당히 저렴해 스타벅스의 커피 한 잔 값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미 몇몇 책은 심지어 품절이었다. 상품설명이 말하듯 '무심하게 꾸안꾸 느낌'의 감성 넘치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인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과연 자본주의란 내가 필요를 느끼기도 전에 내 욕망을 읽은 생산품들이 어디선가 만들어져 내 앞에 짜잔 하고 나타나는 대단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좀 복잡한 마음이 되었다. 왜냐면 이것이 '책'이었기 때문이다. 'Design/Art Book'이라는 영역으로 전문 출판사가 있을 정도로 책 한 권이 거의 예술의 경지에 이른 아름다운 책들이 물론 있다. 물론 아름다운 만큼 가격도 눈을 의심하게 할 만큼 고가이고, 심지어 몇 부 제작도 하지 않는 리미티드 에디션이라 전시의 목적으로 수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책들도 '내용'을 위해서 '겉'을 꾸민다. 그래서 좀 슬퍼졌다. 왜, 사람들이 사는 집에 읽지 않을 책이 필요한 거지?
물론 이 모든 것이, 보여지는 것이 전부인 세상 때문이라고 하면 사실 나도 자유롭지는 못하다. 인스타그램이니 유튜브니 방구석에서 엄지손가락 하나 까닥이며 전 세계인의 열정적이고 센스 넘치는 삶을 훔쳐보다 보면 나 스스로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는 나날들이 있었다.
"내가 좋음 그만이지, 내가 행복하고 즐겁다고 느끼면서 살아야 해" 하는 다짐이 부질없게 남들이 보여주는 멋진 인생과 내 인생의 궤적을 비교하고는 소심한 마음이 될 때가 있다. 나이는 이제 서른보다는 마흔에 훨씬 가까워지는데 서울에 집 한 채는 있어야 너무나 당연한 것 같고, 남들은 다들 너무 멋들어지게 잘 꾸며놓은 집에서 잘 차려 먹고사는 것 같다.
"이런 비교가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야. 사람은 저마다의 속도로 살아내는 그만의 생이 있어"라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그때일 뿐 끈질기게 머리를 비집고 들어오는 비교 지옥의 굴레를 끊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비록 지면으로 만나지만 마음이 써지는 누군가가 인스타그램에 넣을 '인스타그래머블한 한 컷'을 위해 읽지도 못하는 책을 구입하고 싶다면, 나는 언니(동생 된)의 마음으로 사지 말라고 하고 싶다.
사까?마까? 고민될 때 진짜 예쁜 책 고르는 법
[ https://premium.sbs.co.kr/article/97ig0RssbL ]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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