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평서 셋이 살아요"…하숙집 전전하는 공무원들 [관가 포커스]

강경민 2023. 4. 30.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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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에서 근무하는 A과장은 요새 KTX 세종역 신설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에서 진행된 KTX 세종역 신설을 위한 서명운동에 지인 등 이웃들의 동참을 독려하기도 했다. KTX 세종역이 신설된다면 서울 수서역에서 세종까지 출퇴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A과장은 작년부터 행정고시 기수 동기들과 함께 세종시 아파트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27평짜리 방 3개짜리 아파트에서 3명이 각각 방 한 개씩을 나눠쓰고 있다. 월세를 같이 나눠 내는 조건이다. A과장의 집은 양재역 인근. 이전까지는 양재역에서 세종시를 오가는 정부 통근버스를 타고 출퇴근했지만, 작년부터 통근버스가 폐지되면서 출퇴근이 불가능해졌다.

A과장은 한때 세종시 이사도 생각했지만, 자녀들 교육 때문에 이런 생각은 완전히 접었다고 했다. 서울 강남에서 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과 중학생 자녀에게 차마 세종시로 전학 오라고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A과장은 “아내와 자녀 2명 대신 나 혼자 고생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하숙집 월세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시 주요 아파트 단지를 비롯한 지역사회에선 이달 중순부터 KTX 세종역 신설을 위한 10만인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세종시도 관련 타당성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용역 결과를 올 연말에 국토교통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조치원역 KTX 정차와 KTX 세종역 신설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최민호 세종시장의 핵심 공약이다.

KTX 오송역에서 정부세종청사로 가는 BRT 버스를 타기 위해 승객들이 줄서 있다. 한경DB


통상 서울에서 정부세종청사로 가려면 KTX 오송역을 이용한다. 서울역에서 오송역까지는 KTX로 55분가량 걸린다. 문제는 오송역에서 정부세종청사로 가려면 버스로 25~30분이 더 걸린다는 점이다. 버스전용차선인 BRT(Bus Rapid Transit·간선급행버스체계)가 있는데도 이 정도 시간이 걸린다. 급한 마음에 오송역에서 택시를 타면 1만5000원이 넘게 나온다. 서울~오송 KTX 요금(1만8500원)에 버금간다. 이마저도 BRT를 타고 걸리는 시간과 비교해 거의 차이가 없다.

통상 정부 부처 과장급 이상 간부들은 1주일에 최소 두 차례 이상 서울과 세종에 오가야 한다. 세종청사에서 출발해 광화문 서울청사나 국회에 도착하려면 2시간 30분~3시간가량이 소요된다. 정부청사를 찾는 민원인들도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세종시에 사는 주민들도 불편함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다.

세종이 아닌 오송에 KTX역이 만들어진 것은 호남고속철도 건설과 행정중심복합도시 설립이 별도로 진행된 결과다. 2005년 행정중심복합도시 예정지(현 세종시)가 결정됐을 당시엔 이미 경부고속철과 호남고속철의 분기역으로 오송역이 결정됐던 상황이었다. 별도 KTX역을 만들기 쉽지 않았다는 뜻이다.

KTX 세종역 신설 움직임은 정부 부처 이전이 본격화된 이후 불거졌다. 지방선거 때마다 세종시장 후보들은 KTX 세종역 신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경제성이 발목을 잡았다.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아주대가 잇따라 실시한 타당성 조사에서 비용대비편익(B/C)은 모두 1을 넘지 못했다. 통상 B/C가 1.0을 넘어야 경제성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세종에 제2 대통령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을 설립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면서 KTX 세종역 신설은 다시 힘을 얻었다. 당초 공약 파기 논란이 있었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이 공약 추진을 재차 강조하면서 불이 붙고 있다.

상당수 공무원은 KTX 세종역 신설이 하루빨리 이뤄지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KTX 세종역이 신설되면 서울에서 세종시 출퇴근이 상대적으로 편해지기 때문이다. 서울 등 수도권과 세종시를 오가는 정부 통근버스는 작년 1월부터 전면 중단됐다. 세종 중심 근무 정착을 위해 수도권 거주 공무원들의 통근 지원을 위한 통근버스 노선을 폐지한 것이다.

이렇다 보니 수도권 출퇴근을 포기하고, 세종시에 정착하는 공무원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가족을 동반하지 않은 채 세종시에 혼자 거주하는 공무원들도 적지 않다. 집값 부담으로 공무원끼리 주택을 임대해 방 하나씩을 나눠 쓰는 룸셰어 방식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세종시 도담동에 있는 한 공인중개사 대표는 “작년부터 세종으로 새로 내려오는 공무원 중에선 세 명이 함께 아파트 한 채를 같이 쓰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룸셰어로 생활하는 공무원들은 세종시 숙소는 사실상 잠만 자고 나오는 하숙집일 뿐이라고 했다. 금요일 오후만 되면 서울로 올라가기 때문에 주말엔 세종시 숙소를 활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했다. 이렇다 보니 세종시 주요 상권은 주말만 되면 텅텅 비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다 보니 KTX 세종역 신설이 서울 등 수도권과 세종시를 출퇴근하는 일부 공무원들을 위한 통근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세종시 주요 상권으로 불리는 도담동과 나성동 등에서 식당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KTX 세종역 신설 효과에 반신반의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도담동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B씨는 “저녁 손님들의 90% 이상은 세종시에서 거주하는 공무원들”이라며 “KTX 세종역이 신설되면 수도권으로 출퇴근하는 공무원들이 많아져 발길이 끊길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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