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 탈출 ‘프로미스 작전’의 패스워드는 바로 이것[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이세형 기자 2023. 4. 30. 09:00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의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 |
“한국 국민이 우리 국민이다(Your people are our people).”
무력 분쟁에 휩싸인 수단에서 한국 교민 28명을 철수시킬 때 칼둔 알 무바라크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행정청장이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보낸 메시지다.
무력 분쟁에 휩싸인 수단에서 한국 교민 28명을 철수시킬 때 칼둔 알 무바라크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행정청장이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보낸 메시지다.
UAE는 23(현지 시간‧수단 수도 하르툼 출발)~25일(경기 성남 서울공항 도착) 진행된 수단 내 한국 교민 구출을 위한 ‘프로미스(Promise‧약속) 작전’ 때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UAE는 시시각각 변하는 수단 정세 정보를 한국에 제공했다. 하르툼에서 한국 공군의 C-130J 수송기가 도착한 홍해의 항구도시 포트수단까지 육로로 이동하는 것을 제안한 것도 UAE였다. 한국 교민들은 하르툼을 탈출하기 전 현지 UAE 대사관저로 이동해 잠시 머물기도 했다. 또 UAE는 탈출에 필요한 차량 섭외와 경호에도 도움을 줬다.
특히 UAE는 현재 무력 충돌 중인 수단 정부군과 반군(신속지원군·RSF) 측에 모두 ‘한국 교민의 이동을 막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일려졌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싱크탱크인 킹파이잘 이슬람연구센터의 조셉 케시시안 수석연구위원은 “UAE는 수단에서 영향력이 큰 나라”라며 “한국으로서는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을 만큼 가까운 우방국(UAE)의 도움을 받는 게 적절한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UAE는 시시각각 변하는 수단 정세 정보를 한국에 제공했다. 하르툼에서 한국 공군의 C-130J 수송기가 도착한 홍해의 항구도시 포트수단까지 육로로 이동하는 것을 제안한 것도 UAE였다. 한국 교민들은 하르툼을 탈출하기 전 현지 UAE 대사관저로 이동해 잠시 머물기도 했다. 또 UAE는 탈출에 필요한 차량 섭외와 경호에도 도움을 줬다.
특히 UAE는 현재 무력 충돌 중인 수단 정부군과 반군(신속지원군·RSF) 측에 모두 ‘한국 교민의 이동을 막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일려졌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싱크탱크인 킹파이잘 이슬람연구센터의 조셉 케시시안 수석연구위원은 “UAE는 수단에서 영향력이 큰 나라”라며 “한국으로서는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을 만큼 가까운 우방국(UAE)의 도움을 받는 게 적절한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최근 뉴욕타임스(NYT)는 UAE, 러시아, 중국, 이스라엘 같은 나라들이 안보, 경제 측면에서 수단에 관심이 많고 이중 수단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는 UAE라고 전했다. UAE는 어떤 이유에서 수단 내 영향력 키우기에 공을 들였을까. 또 UAE가 수단에서 영향력이 큰 이유는 무엇일까.
● ‘식량 안보’ 차원서 일찌감치 수단에 주목
UAE의 수단에 대한 관심은 1989년부터 2019년까지 수단을 통치했던 독재자 오마르 알 바시르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국토가 사실상 사막이며 면적도 한국의 약 83.4%에 불과한 UAE는 원유와 천연가스는 풍부하지만 대규모 식량 생산은 불가능하다. 주요 식량 대부분을 미국, 호주, 유럽, 인도 등으로부터 수입해왔다.
가까운 지역에서 직접 안정적으로 식량을 생산하는데 관심이 많았던 UAE는 같은 아랍권이며 동아프리카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꼽히는 수단에 주목했다(UAE는 한국과의 경제 협력에서 스마트팜 등 식량 생산 관련 기술에도 많은 관심을 가진다).
수단은 다른 아랍 국가와 달리 대규모 식량 생산과 목축이 가능한 땅을 보유하고 있다. 아랍권에서 가장 농업 발전 가능성이 큰 나라로 꼽힌다. 국제사회에서 아랍 국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로 ‘아랍판 유엔’으로 불리는 아랍연맹(AL·Arab League) 산하 아랍농업개발기구(AOAD·Arab Organization for Agricultural Development)의 본부가 하르툼에 자리 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수단에서 아랍 언어와 문화로 박사 학위를 받은 김종도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장은 “수단은 농지나 목초지로 활용 가능한 땅이 풍부할 뿐 아니라 토양도 우수해 작물의 생산성이 높다”며 “1980년, 1990년대 현지 정세가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캐나다와 일본 기업들이 수단 농업의 발전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다양한 연구조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극심한 정세 불안만 아니었으면 글로벌 농업, 식량 기업들의 수단에 대한 투자도 계속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UAE가 지원 줄이자 30년 수단 독재 정권도 붕괴
알 바시르 집권 시절 UAE는 수단에 재정 지원과 함께 원유와 비료 등을 공급하며 영향력을 키웠다. 비록 알 바시르가 UAE가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무슬림형제단(근본주의 이슬람 사상을 강조하며 왕정에 부정적인 정치단체)과 이란과도 가까운 관계였지만 UAE는 수단에 대해 우호적인 스탠스를 유지했다.
하지만 2017년 6월 UAE가 사우디와 함께 주도한 ‘카타르 단교사태’ 때 수단이 중립을 취하면서 UAE와 알 바시르 정권 관계는 악화된다. 카타르 단교는 카타르가 이란과 무슬림형제단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이유로 UAE, 사우디, 바레인, 이집트가 카타르와의 경제‧외교 관계를 일시에 중단한 사태로 2021년 1월까지 이어졌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중동정치프로젝트(POMEPS)가 최근 발행한 ‘수단에서 UAE와 사우디가 벌이는 거대한 게임’에 따르면 수단은 카타르 단교사태로 인한 갈등이 한창이던 2018년 3월 UAE와 카타르로부터 동시에 재정 지원을 받는다. 알 바시르의 노골적인 ‘양다리 외교’에 분노한 UAE는 수단에 대한 원유 공급 등 각종 지원을 중단했고, 수단 경제는 급격히 악화됐다.
심각한 경제난 속에서 국민들의 불만은 폭발하고 대규모 반정부 시위도 확산된다. 그리고 2019년 4월 알 바시르는 권좌에서 물러나게 된다. 결과적으로 UAE의 경제 지원 중단이 독재자 알 바시르의 30년 독재를 무너뜨린 것이다.
● 부르한과 다갈로 진영에 모두 지원
알 바시르가 쫓겨난 뒤, 현재 무력 충돌 중인 수단 정부군 지도자 압델 팟타흐 부르한과 RSF의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가 권력의 중심에 오른다.
UAE는 공식적으로는 중립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사실상 다갈로 진영을 적극 지원했다. 그 결과 RSF는 군인들을 사우디와 UAE가 주도한 예멘 전쟁에 지상군으로 파견했다. 사실상 용병이었고, 군인들의 월급 등 각종 파병 비용은 UAE가 부담했다. 또 다갈로는 수단의 주요 금광을 장악하고 UAE에 금을 수출해 왔다. 다갈로와 측근들이 UAE에 개인 자산을 옮겨놓았다는 의혹도 있다.
하지만 UAE가 부르한 진영을 모른 척한 것도 아니다. 부르한 진영에도 재정 지원을 했다. 또 UAE는 부르한이 수단 주권위원회 의장으로 사실상의 국가수반 역할을 할 때 이스라엘과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중재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과 수단은 2020년 10월 외교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고 부르한은 미국 워싱턴을 방문하기도 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UAE는 수단 내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다갈로와 부르한 진영에 모두에 보험을 들었고, 두 진영 역시 생존하기 위해선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다갈로와 부르한 진영 모두 UAE와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길 희망하고, UAE의 요청에는 긍정적으로 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주변국서 반왕정 세력 영향력 커지는 것에 민감
군사, 안보 측면에서도 UAE는 수단에 계속 관심을 가져왔다. 앞으로도 수단 내 정치 상황에 대한 UAE의 관심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UAE는 부족 갈등과 군벌 간 충돌이 자주 발생해 정세가 불안한 수단에 무슬림형제단 같은 반왕정 성향의 정부나 무장 정치단체가 들어서는 것을 막고 싶어 한다.
UAE, 사우디, 바레인 등 아라비아반도의 아랍 왕정 산유국들은 1979년 이슬람교 시아파 지도자들이 중심이 돼 왕정을 붕괴시키고 신정공화정 체제를 수립한 ‘페르시아의 후예’ 이란을 극도로 경계한다. 정확히는 이란의 “부패한 왕정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혁명 메시지 수출 전략’을 경계한다. UAE 입장에선 아라비아반도 동쪽(이란)에 이어 서쪽(아프리카 지역)에서도 왕정에 위협적인 세력이 영향력을 키우는 건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것.
UAE는 공식적으로는 중립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사실상 다갈로 진영을 적극 지원했다. 그 결과 RSF는 군인들을 사우디와 UAE가 주도한 예멘 전쟁에 지상군으로 파견했다. 사실상 용병이었고, 군인들의 월급 등 각종 파병 비용은 UAE가 부담했다. 또 다갈로는 수단의 주요 금광을 장악하고 UAE에 금을 수출해 왔다. 다갈로와 측근들이 UAE에 개인 자산을 옮겨놓았다는 의혹도 있다.
하지만 UAE가 부르한 진영을 모른 척한 것도 아니다. 부르한 진영에도 재정 지원을 했다. 또 UAE는 부르한이 수단 주권위원회 의장으로 사실상의 국가수반 역할을 할 때 이스라엘과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중재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과 수단은 2020년 10월 외교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고 부르한은 미국 워싱턴을 방문하기도 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UAE는 수단 내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다갈로와 부르한 진영에 모두에 보험을 들었고, 두 진영 역시 생존하기 위해선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다갈로와 부르한 진영 모두 UAE와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길 희망하고, UAE의 요청에는 긍정적으로 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주변국서 반왕정 세력 영향력 커지는 것에 민감
군사, 안보 측면에서도 UAE는 수단에 계속 관심을 가져왔다. 앞으로도 수단 내 정치 상황에 대한 UAE의 관심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UAE는 부족 갈등과 군벌 간 충돌이 자주 발생해 정세가 불안한 수단에 무슬림형제단 같은 반왕정 성향의 정부나 무장 정치단체가 들어서는 것을 막고 싶어 한다.
UAE, 사우디, 바레인 등 아라비아반도의 아랍 왕정 산유국들은 1979년 이슬람교 시아파 지도자들이 중심이 돼 왕정을 붕괴시키고 신정공화정 체제를 수립한 ‘페르시아의 후예’ 이란을 극도로 경계한다. 정확히는 이란의 “부패한 왕정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혁명 메시지 수출 전략’을 경계한다. UAE 입장에선 아라비아반도 동쪽(이란)에 이어 서쪽(아프리카 지역)에서도 왕정에 위협적인 세력이 영향력을 키우는 건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것.
이수정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책임연구원(중동학)은 “중동의 허브 역할을 하며 정치, 경제 영향력을 키워나가길 희망하는 UAE에게 가장 중요한 건 왕실과 지역 정세의 안정”이라며 “UAE가 막대한 오일달러를 바탕으로 정세 불안을 겪는 주변국의 내부 정치에 개입하려는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UAE가 후티 반군(시아파 계열로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음)과 내전을 치르고 있는 예멘 정부군(수니파)을 2015년부터 적극 지원하고 있는 것도 반왕정, 반수니파 세력이 자리 잡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예멘은 UAE의 핵심 우방국인 사우디와 긴 국경선을 맞대고 있다. 국경선을 맞대고 있진 않지만 UAE와도 지리적으로 가깝다.
한 외교 소식통은 “UAE는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등 아라비아반도 북부의 나라들에서 이란의 정치, 군사 영향력이 커진 것만으로도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UAE 입장에선 서쪽의 수단, 남쪽의 예멘에서도 왕정에 부정적이거나 이란의 우호적인 세력이 힘을 키우는 것을 그냥 둘 수 없다”고 말했다.
UAE는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아랍국가에서의 독재 반대 운동)의 영향으로 2011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를 축출한 뒤 내전에 휩싸인 리비아에도 적극 개입해 왔다. 수도 트리폴리와 서부 지역을 기반으로 한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의 통합정부(GNA)와 동부 지역을 장악한 세속주의 군벌 리비아국민군(LNA) 사이의 갈등에서 UAE는 LNA를 지원하고 있다. 사우디도 LNA를 지원 중이다. 반대로 이란과 더불어 사우디의 핵심 라이벌 국가로 꼽히는 튀르키예는 GNA를 지원하고 있다.
이처럼 정세 불안을 경험하고 있는 주변국에 적극 개입하는 UAE의 전략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장 센터장은 “UAE가 오일달러와 외교 역량을 갖추고 있지만, 자국 이익을 보호하고 지역 내 영향력을 키운다는 이유 아래 주변국 개입에 너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이런 전략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부담은 커지고, 적대적 진영의 테러 등 안보 리스크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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