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낙인에 거래끊긴 강서구 화곡동 빌라

류인하 기자 2023. 4. 30.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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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빌라 밀집 지역의 모습. 한수빈 기자

“2주째 계약을 한 건도 못했어요. 화곡동 하면 전세사기 지역으로 낙인이 찍혀버려서 기존에 잘 살던 분들도 ‘나가겠다’고 계약을 해지하는 판입니다.”(화곡동 A공인중개소 대표)

전세사기에 대한 경계감이 커지면서 ‘2030세대·신축 빌라’ 거주자 비중이 높은 서울 강서구 화곡동 주택 거래가 사실상 ‘올스톱’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30일 기준 4월 서울 강서구 다세대·연립주택 전월세 거래건수는 457건(계약일 기준)으로 전년 동월(1010건) 거래량의 절반 밑으로 큰폭 줄었다. 정상적인 매물도 전혀 소화가 되지 않는 상황이어서 세입자를 찾기 어려운 임대인, 손님이 끊긴 중개업소 등의 ‘2차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28일 방문한 화곡동 공인중개업소들 대부분은 손님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평소라면 중개업소들이 한창 바빠야 할 금요일이지만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그나마 앉아있는 사람들도 “옆 가게 사람인데 그냥 놀러온 것”이라고 했다. 책상과 의자 같은 집기구만 일부 남겨놓은 채 아예 문을 닫은 공인중개소도 곳곳에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김태우 서울 강서구청장은 지난 24일 ‘HUG전세사기 피해자지원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화곡동이 필요 이상의 피해를 입고 있다”며 “(새로운 새입자들이 들어오기를 꺼려하는) 2차 피해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개점휴업” 한산한 공인중개사무소

A공인중개소 대표는 “이 동네에 사는 임대인 한 분은 빌라가 4채 있었는데 세입자들이 다 나간다고 해서 올 초에 갖고 있던 아파트를 급히 팔았다”면서 “세입자 2명 보증금 주고 내보내고, 나머지 2명도 연말에 계약이 끝날 상황이어서 미리 보증금을 마련해둔 것”이라고 말했다. B공인중개사는 “작년에 한참 ‘빌라왕’ 사망으로 시끄러울 때 좀 손님이 끊겼다가 올 초까지 또 괜찮았는데 인천 미추홀구가 터지면서 덩달아 다시 거래가 끊겼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소들의 분위기도 뒤숭숭했다. C공인중개소 대표는 “(대각선 앞을 가리키며) 저기는 최근에 경기도 구리에서 터진 전세사기 매물을 공동중개한 게 확인돼서 경찰조사받으러 간 뒤로 문을 안 열고 있다”면서 “수수료를 좀 많이 받았다던데 면허정지 될 것 같다고 불안해하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요즘에 누가 여기 전세들어오려고 하겠느냐”며 “나도 문만 열어놓고 있다”고 했다.

화곡동 거래 시장이 유독 위축된 것은 ‘화곡동 빌라왕’ 사고의 여파가 아직 남아있는 데다, 2030세대 거주 비중이 높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화곡동은 서울지하철 5호선 화곡역과 2·5호선 까치산역을 끼고 있어 출퇴근이 편리한 역세권 입지에다 상권이 고루 갖춰져 있다. 무엇보다 바로 옆 양천구 신월동 등 인근 지역에 비해 저렴한 신축빌라가 다수 몰려있어 청년 세대의 관심이 높았다.

실제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3월 기준 강서구 화곡동에 거주 중인 2030세대는 전체 인구(17만593명)의 38.5%인 6만5732명에 달한다. 강서구 전체 2030세대(17만9100명)가운데 36.7%가 화곡동 주민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화곡동 공인중개사들은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자체적으로 ‘나쁜 임대인’ ‘나쁜 공인중개사’ 명단을 공유하고 있다.

D공인중개소 대표는 “2개월 전쯤 공동중개(임차인과 임대인이 각가 다른 공인중개소에서 거래하는 것)를 하는데 임차인이 집을 너무 마음에 들어해서 계약금까지 넣었다가 임대인 물건에 임차권 등기명령이 돼 있는 걸 보고 우리쪽에서 먼저 계약을 깬 적이 있다”면서 “전세사기 매물은 아니었지만 요즘 화곡동은 그 정도로 깐깐하게 중개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5월 1일부터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 보증보험 가입기준이 ‘공시가격×126%’로 제한되지만 화곡동은 이미 지난 3월부터 ‘공시가격×120%’ 기준에 맞춰 전세계약을 체결하는 ‘관행’도 만들고 있다.

E공인중개소 대표는 “사장님(임대인)을 엄청 설득한다. 들어오겠다는 세입자가 있을 때 지금 이렇게 안 맞춰주시면 당분간 집 비워둬야 한다고 엄포를 놓는다”면서 “그렇게 해도 화곡동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나빠지다 보니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고 새로운 세입자를 못 들이는 집이 계속 늘어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 밀집 지역의 모습. 한수빈 기자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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