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계열 인싸였던 나의 자랑…‘희생자 탓’ 프레임 깨야”
[주간경향] 159명의 청년이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가 6개월을 맞았다. 반년의 시간이 흘러 봄이 왔지만, 유족들에게 치유의 시간은 아직 허락되지 않고 있다. 유족이 애타게 알고 싶은 ‘그날의 진실’이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지난겨울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의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가 있지 않았느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경찰 특수본의 수사는 법적 책임에 국한한 ‘꼬리자르기’로 끝났다. 국회 국정조사는 여야 대립 속에 헛돌았다. 유족들이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줄곧 요구해온 배경이다.
지난 4월 20일 더불어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진보당은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독립적인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이 위원회에 특별검사 도입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뼈대다. 국민의힘은 이 법안을 두고 “국민의 아픔마저 정쟁의 도구로 삼으려는 병이 다시 도진 것”(장동혁 원내대변인)이라고 했지만, 유족들은 “진실을 알자는 것이 어떻게 정쟁이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유족들이 갈구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이태원 참사를 올바르게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주간경향은 지난 4월 19일과 20일, 25일 송진영씨(고 송채림씨 아버지)와 조미은씨(고 이지한씨 어머니), 최정주씨(고 최유진씨 아버지)를 각각 대전과 서울 등에서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태원 참사 6개월] (1)고 송채림씨 아버지 송진영씨 인터뷰
믿을 수가 없었다. 그날 밤 그 많은 사람이 모이는데 왜 경찰이 제대로 배치되지 않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6개월이 지났다. 늘 나의 자랑이던 아이는 ‘놀러가서 죽은 아이’가 됐고, 진실을 요구하면 이미 책임을 묻지 않았냐 한다. 국회는 이제야 이태원 참사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손꼽아 기다린다. 진실이 낱낱이 밝혀지고 ‘희생자 탓’ 프레임을 깨부수는 그날을.
2022년 10월 30일 새벽 1시쯤, 송진영씨(54)는 아내가 우는 소리에 잠을 깼다. 거실에 나가보니 TV 화면이 이태원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아내는 딸 채림씨의 친구로부터 온 전화를 받고는 온몸을 떨고 있었다. “채림이가 이태원 길바닥에 누워 있어요”, “우리 채림이가?” 부부는 아이 상태를 다급히 물었지만, 친구들은 “채림이와 같이 있을 수 없었다”고 했다. 경찰의 귀가 조처 때문이었다.
운전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부부는 첫 기차를 탔다. 남대문경찰서에 들러 휴대폰 위치추적을 요청한 것은 새벽 6시쯤. 오후 1시쯤이 돼서야 경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송채림양 아버지시죠? 송채림양이 송탄 장례식장에 와 있습니다.” 딸이 부상자 명단에 있길 간절히 바라던 부부는 ‘장례식장’이란 말에 그만 무너지고 말았다.
딸의 죽음을 확인한 이후 며칠은 송씨의 기억에 잘 남아 있지 않다. 가까스로 장례를 치렀고, 발인을 했고, 유골을 안치했다. 그러는 사이 지역구 국회의원, 시장, 구청장, 공무원, 기자들이 휘몰아치듯 다녀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요란한 방문세례를 보며, 한국사회가 이 청년들의 황망한 죽음을 그대로 두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절차가 끝나고 며칠 뒤 문득 깨달았다. 세상은 이 참사를 벌써 잊으려 한다는 것을.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희생자 명단공개는 패륜’이라고 했을 때 기겁했어요. 세월호 참사 때도 ‘실종자 몇학년 몇반 누구’ 이런 정보부터 방송에 나왔잖아요. 근데 왜 이태원 참사만 달라야 하죠. ‘놀러가서 죽었으니 공개하면 패륜이다’ 결국 이거 아닌가요.”
그는 “관료들이 참사 초기부터 씌워놓은” ‘놀러갔다가 죽은 아이들’이란 틀짓기에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 “유족들조차 이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현실”이 고통스러웠다. 그가 가장 먼저 딸의 얼굴을 공개한 이유다. “어디 가서든 자랑하고 싶었던 내 딸아이를 내가 숨긴다? 그건 우리 채림이에게 두 번 죄를 짓는 것 같았어요. 어른들에게 예의바르고 자기 주관도 서 있고 친구들에게도 인기 많던 아이였습니다. 채림이가 공개하길 원할 것 같았어요.”
“늘 자랑하고 싶었던 내 딸, 왜 숨기겠어요”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를 위한 서명운동을 할 때면 돌 던지듯 이런 말을 뱉는 시민들이 있다고 한다. “놀러가서 죽었는데 나라에 뭘 더 요구하나.” 서명운동을 나갔던 유족들은 서러워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었다.
“희생자 탓하는 논리가 사회적으로 용인된다면 내일이라도 참사는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희생자 탓’ 프레임을 깨지 못하면 저는 아이를 볼 수 없어요. 어떻게 깨야 할까요. 길은 단 하나예요. 그날의 진실을 밝히는 겁니다.”
더불어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진보당은 지난 4월 20일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정부로부터 독립된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특조위에 특별검사 도입 요구권 등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았다. 송진영씨는 “경찰 ‘셀프수사’로는 밝혀내지 못한 참사의 원인을 이태원 특조위가 제대로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왜 경찰이 배치되지 않았냐부터 다시 따져야 해요. 10월 29일 이태원엔 137명의 경찰이 있었습니다. 그중 마약 단속 50명, 생활안전·여성청소년과 소속 경찰이 19명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사복 차림이었고요. 뒤늦게 투입된 20명을 제외하면 정복 경찰 48명은 대개 파출소 인력이었습니다. 원래 우리나라가 ‘혼잡경비’ 경찰은 배치를 안 하는 나라인가요. 인파가 많은 곳 어디를 가봐도 혼잡경비 경찰이 있어요. 왜 10만명 운집을 예상하고도 배치를 제대로 안 했는지 규명이 돼야 합니다.”
누군가는 경찰 특수수사본부의 수사를 통해 ‘인파 안전대책 미수립’의 법적 책임이 박희영 용산구청장,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에 있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았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용산 실무진에 국한된 ‘책임 묻기’만으로 그날의 진실을 밝혔다고 볼 수 있을까. 실무진이 ‘왜’ 핼러윈축제 안전에 소홀했는지 중층적 원인을 밝혀야 윗선의 정치적 책임도 함께 물을 수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유족들은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따른 집회 통제 집중의 여파, 핼러윈축제 전 경찰 스스로 발표했던 ‘클럽 마약류 집중단속’이 미친 영향 등을 구체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본다.
희생자의 시신이 가족에게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점 역시 유족들이 밝히길 원하는 대목이다. 송진영씨가 채림씨 친구들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새벽 1시. 송탄에 있는 병원의 영안실에서 채림씨를 만난 시각은 오후 1시였다. 12시간이 통째로 ‘공백’이다.
“새벽 1시에 친구들이 채림이 신원을 확인해줄 수 있었는데도 경찰이 강제로 귀가시켰어요. 원래대로 하면 친구들이 ‘연고자’가 되는 것인데 강제로 ‘신원미상 변사자’가 된 겁니다. 그 12시간 동안 경찰이 뭘 했는지 우리는 아직도 모릅니다. 아이 휴대폰에 200통 가까운 전화가 걸려왔었는데 12시간 중에 한 통만 받았어도 신원 확인할 수 있었어요. 심지어 현장에 있던 유족들이 ‘우리 아이가 저기 있다’고 하는데도 시신을 넘겨주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유족들은 시신 인계 과정에 대한 당국의 구체적인 설명을 아직까지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정부의 무성의한 대응은 “유족 없이 임의로 마약 검사를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키우고 있다. “희생자 탓하기 위한 증거를 찾느라 12시간이나 걸린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있어요. 희생자들을 다목적 체육관에 모았다가 서울과 경기 외곽 수십 곳의 병원으로 분산시켰는데 그걸 지휘한 책임자를 찾아 이유를 밝혀야 이 의문이 풀려요.”
주도적이었던 ‘인싸’ 채림이
지난 4월 19일 대전에 있는 채림씨의 집 뒤편 구봉산은 푸르렀다. 주택가엔 봄을 알리는 벚꽃이 만개했다. 놀이터에선 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2층에 있는 작은 테라스 한켠을 가리키며 송씨가 말했다. “채림이가 여기서 친구들을 불러다 삼겹살을 구워먹곤 했어요. 짬만 나면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놀았죠.” 2층에 있는 채림씨의 방과 테라스는 고민 상담을 하고픈 친구들이 아무 때나 찾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기억하는 채림씨는 자신의 길을 개척할 줄 아는 똑부러진 아이였다. 일반계 고등학교에 다녔지만, 2학년 때 서울에 있는 패션스쿨로 위탁교육을 받게 됐다. 송진영씨는 그저 ‘그런 제도가 있나 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학교에서도 잘 모르는 제도를 채림씨가 찾아낸 것이었다.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글로 선생님을 설득한 사실을, 아버지는 채림씨가 세상을 뜨고서야 알게 됐다.
채림씨는 패션스쿨을 졸업한 2021년엔 패션 콘테스트에 나가 상을 탔다. 이듬해엔 ‘리코’라는 인터넷 쇼핑몰을 창업했다. 웨딩숍에서 디자인과 가봉 아르바이트를 하며 쇼핑몰의 종잣돈도 스스로 마련했다. 쇼핑몰 운영에 쓰이는 조명과 소품도 직접 만들었다. 나중에 자신의 이름을 건 의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채림씨의 꿈이었다.
송진영씨는 금방이라도 채림씨가 “아빠~” 하면서 2층에서 내려올 것만 같다고 했다. 지금도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막내딸. “채림이는 자신이 밝은 모습으로 기억되길 바랄 것 같아서” 아빠는 머리카락을 파란색으로 물들인 채 환하게 웃는 딸의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택했다.
역동적인 삶을 살았던 그 아이들
송진영씨는 채림씨의 얘기를 하다 유족들이 최근 제작한 스카프를 갖고 왔다. 희생자를 상징하는 보라색과 핼러윈축제를 상징하는 주황색이 섞인 스카프였다. “다채로운 색깔의 이 스카프가 우리 아이들을 잘 상징한다고 생각해요. 희생자들의 직업 상당수가 예술 계열이에요. 가장 역동적인 아이들이었던 거죠.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던,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인싸’가 우리 아이들이었어요. 그래서 그 장소에 있었던 겁니다.”
또래에게 인기가 많았던 채림씨는 종종 친구들의 꿈에 나온다고 한다. 송진영씨 부부는 꿈에서라도 딸을 만져볼 수 있길 애타게 기다리지만 아직까지 만나진 못했다. “어제 꿈에 채림이가 찾아왔길래 그랬어요. ‘채림아, 엄마 아빠한테 꼭 가봐.’” 채림씨 친구가 송진영씨에게 얼마전 해준 얘기다.
밝고 당찼던 딸에게 세상이 씌우려 했던 ‘희생자 탓’ 올가미를 아빠가 완전히 걷어주는 그날, 아빠는 막내딸을 꿈속에서 만나 꼭 안아주고 싶다고 했다. 그때는 정부, 경찰, 수사 따위 다 잊고 이런 얘기를 해줄 생각이다. 아빠의 딸로 태어나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너를 키우는 동안 정말 행복했다고.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문기의 추석 선물’ ‘딸에게 보낸 동영상’···이재명 ‘선거법 위반’ 판결문
- 조국 “민주주의 논쟁에 허위 있을 수도···정치생명 끊을 일인가”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사라진 돌잔치 대신인가?…‘젠더리빌’ 파티 유행
- “민심의 법정서 이재명은 무죄”···민주당 연석회의 열고 비상행동 나서
- 40대부터 매일 160분 걷는 데 투자하면···수명은 얼마나 늘어날까?
- 드라마인가, 공연인가…안방의 눈과 귀 사로잡은 ‘정년이’
- 중학생 시절 축구부 후배 다치게 했다가···성인 돼 형사처벌
- 은반 위 울려퍼진 섬뜩한 “무궁화꽃이~”···‘오징어게임’ 피겨 연기로 그랑프리 쇼트 2위
- ‘신의 인플루언서’ MZ세대 최초의 성인···유해 일부 한국에 기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