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긴 채 던져진 아들의 셔츠…죽음에 대한 예의마저 없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지한씨의 어린시절. 누나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조미은씨 제공

[주간경향] 159명의 청년이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가 6개월을 맞았다. 반년의 시간이 흘러 봄이 왔지만, 유족들에게 치유의 시간은 아직 허락되지 않고 있다. 유족이 애타게 알고 싶은 ‘그날의 진실’이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지난겨울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의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가 있지 않았느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경찰 특수본의 수사는 법적 책임에 국한한 ‘꼬리자르기’로 끝났다. 국회 국정조사는 여야 대립 속에 헛돌았다. 유족들이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줄곧 요구해온 배경이다.
지난 4월 20일 더불어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진보당은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독립적인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이 위원회에 특별검사 도입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뼈대다. 국민의힘은 이 법안을 두고 “국민의 아픔마저 정쟁의 도구로 삼으려는 병이 다시 도진 것”(장동혁 원내대변인)이라고 했지만, 유족들은 “진실을 알자는 것이 어떻게 정쟁이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유족들이 갈구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이태원 참사를 올바르게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주간경향은 지난 4월 19일과 20일, 25일 송진영씨(고 송채림씨 아버지)와 조미은씨(고 이지한씨 어머니), 최정주씨(고 최유진씨 아버지)를 각각 대전과 서울 등에서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태원 참사 6개월] (3)고 이지한씨 어머니 조미은씨 인터뷰

“엄마, 오늘 하루 시간이 비어서 친구들을 만나려고 해. 홍대에서 밥을 먹고 이태원에 사는 형에게 들렀다 올게.” 지난해 10월 29일 아들은 이렇게 말하며 집을 나서려 했다. 꼬깃꼬깃한 와이셔츠를 입고 있기에 엄마는 아들을 불러세웠다. “몇 분만 기다려주면 안 돼? 내가 다려줄게.” 현관에 선 아들을 보니 이번엔 낡은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산 3만5000원짜리 구두였다. “엄마, 이번엔 진짜 좋은 구두를 사야겠어”, “그래, 나랑 같이 백화점에 가서 부츠 하나 장만하자.” 그렇게 고 이지한씨는 집을 나섰다. 오후 4시쯤이었다.

그날 자정 무렵, 경찰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빠인 이종철씨에게 경찰은 “이대서울병원 응급실에 오셔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무슨 일인지를 묻자 이지한씨가 사망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믿을 수 없어 “동명이인 아니냐”고 되물었다. 경찰은 휴대폰에 담긴 신상정보를 불러줬다. 아들이 맞았다.

“응급실에 갔는데 하얗고 예쁜 아이가 누워 있는 거예요. 너무 멀쩡하고 깨끗했어요. 죽은 사람의 얼굴이 아닌 것 같아서 제 숨을 불어넣어 봤어요. 빈 관을 통과하는 듯한 소리…. 그때 절망했죠. 내 아들이 진짜 간 건가.” 엄마는 아들을 부둥켜안고 오열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지한씨가 배우 활동을 하던 시기의 모습이다. 고 이지한씨 인스타그램 캡처

그날 하루 비었던 스케줄

그후 조미은·이종철씨가 겪은 일들은 다른 이태원 참사 유족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넋을 놓은 채로 장례를 치르고 다른 유족들을 찾아 헤맸다. 진실규명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피켓시위를 하고, 서명운동을 하고, 때로는 길바닥에 누웠다. 모든 유족이 2차 가해에 시달렸지만, 이들 부부에겐 유독 공격이 집중됐다. 이종철씨가 유가족협의회 대표를 맡으면서 부부가 정부 규탄의 전면에 나선 영향이 컸다.

특히 조미은씨는 국회 국정조사 당시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신현영 민주당 의원 닥터카 탑승’만을 물고 늘어지는 것을 지적하다 2차 가해의 표적이 되다시피 했다. 조미은씨 발언을 다룬 보도엔 그를 조롱하는 댓글들이 줄줄이 달렸다.

“딸이 댓글을 보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분위기는 알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극우파가 갑자기 나타나 공격하면 어떡하지’ 하는 공포에 사로잡히기도 해요.”

조미은씨는 신자유연대의 입에 못 담을 폭언을 듣다 쓰러져 일주일간 누워 지내기도 했다. 아빠인 이종철씨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국회의 국정조사 파행에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던 이씨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씨는 4월부터는 유가족협의회 대표 자리를 내려놓은 상태다.

이종철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대표가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야3당 용산이태원참사국정조사결과 국민보고회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천정을 보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죽음을 오가며 사투를 벌였지만

처절했던 6개월이 지났다. 조미은씨 부부는 아직도 아들의 죽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구급일지상 아들은 10월 29일 11시 53분 이태원 거리에서 이대서울병원으로 이송됐다. 사망선고는 12시 23분 내려졌다.

조미은씨 부부는 용산구청장·용산경찰서장에게만 법적 책임을 물은 경찰 ‘셀프수사’의 결론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이들이 보기에 경찰 특수수사본부는 “맨 위에서부터 맨 아래까지 엮여 있는 잘못”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독립적 조사위원회를 꾸려 참사의 원인을 다시 밝혀야 하는 이유다.

“국회 국정조사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모른다’, ‘못 들었다’, ‘보고받지 못했다’라는 말로 다 빠져나갈 수 있다면 한국에서 고위공직자에게 죄를 어떻게 묻을 수 있나요.” 고위공직자에게는 ‘추상적 책임’만 있어서 면책이 가능하다면, 고위직들은 그 어떤 참사가 일어난다 해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희생자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았던 경찰들의 태도도 조미은씨 머릿속에서 ‘반복재생’되며 그를 괴롭히고 있다. 경찰의 검시 뒤 아들의 셔츠와 바지는 “박박 찢겨” 영안실 한 귀퉁이에 던져져 있었다. 자신이 다려주었던 흰 셔츠가 찢긴 채로 버려진 것을 보며, 옷가지를 유품 봉투에 넣어놓는 ‘수고’조차 않는 경찰이 원망스러웠다.

게다가 조미은씨는 아들이 사망 진단을 전후해 피검사를 진행한 흔적을 찾았다. 담당경찰은 “피검사는 없었다”고만 답했다고 한다. 경찰로부터 “마약과 관련해 부검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말을 직접 들었던 부부는, 혹시 유족의 동의 없이 마약 검사를 한 건 아닌지 의구심을 품고 있다.

이종철 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 이정민 부대표, 이 대표의 부인 조미은 씨가 지난해 11월서울 중구 구세군 중앙회관에서 열린 2023 시민사회단체 신년하례회에서 이태원 참사 추모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권도현 기자

쌀밥도 못 먹인 엄마였습니다

지한씨는 조미은씨에게 “뱃속에서부터 너무 순해 ‘잘 있나’ 만져보곤 했던” 아들이었다. 22년 전 조미은씨는 육아일기에 이렇게 쓰기도 했다. “우리 건호 하면 떠오르는 말 ‘순댕이’. 때론 말썽도 좀 부리지 하고 생각하곤 한단다.” 지한씨의 어릴 적 이름이 ‘건호’였다. 열일곱 살 때부터 아이돌 준비를 하다 배우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면서 이름을 지한으로 바꿨다고 한다. 그후 동국대 연극학부에 진학했고, 지난해엔 유명 배우들의 기획사에도 들어갔다.

지한씨는 최근 방영된 MBC 드라마 <꼭두의 계절>에 출연하면서 대중에게 차츰 이름을 알려가던 참이었다. 또 다른 지상파 드라마에선 주연급 캐스팅이 거론되고 있었다. 딸 같은 아들, 남자친구 같은 아들이었던 지한씨는 “오늘은 어느 배우님을 만났고 어떤 촬영을 했는지”를 엄마에게 자세히 얘기하길 좋아했다.

조미은씨가 20여년 전 쓴 육아일기. 이지한씨의 어릴 적 이름은 건호였다.

이태원 참사로 아들 이지한씨을 잃은 조미은씨와 이종철씨. 송윤경 기자

흰 쌀밥, 국, 돈가스, 직접 만든 치킨과 식혜…. 조미은씨는 아들이 잠든 추모공원에 갈 때마다 음식을 잔뜩 챙긴다. 지난 9년간 아들의 주식은 현미밥과 닭가슴살이었다. 학교 급식이 아니면 쌀이 섞인 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몸무게가 67㎏을 넘지 않도록 늘 관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철두철미한, 책임감이 강한 아이”였기에 불만 한번 내비친 적이 없었다. “흰 쌀밥만 보면 지한이 얼굴이 오버랩돼요. 왜 쌀밥 한번 먹이지 못했을까. 현미밥에 몰래 섞어주기라도 할 것을…. 저는 정말 나쁜 엄마예요.”

꿈을 향해 혹독한 단련만 하다가 떠난 아들, 너무나도 착했던 내 아들. 조미은씨는 지한씨 죽음의 원인을 찾아 합당한 책임을 묻는 것만이 “지금 내가 살아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 조미은씨가 아들 고 이지한씨에게 쓴 편지 두편을 싣는다.

4.3일 화요일. 날이 흐리다.
지한아, 내 아들.
요즘은 무슨 정신으로 사는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어. 오늘은 날이 흐리지만 어제는 눈이부시게 화창했구, 벚꽃이 제대로 만개해 꼴보기 싫게 예쁘게 피었더구나.
우리동네 우체국과 경찰서 양옆으로 하얀색 분홍색으로 풍성하고 찬란하게 피어있는 벚꽃이, 그 밑에서 사진을 찍으며 봄을 만끽하고있는 평범한 시민이, 엄마의 눈에는 그 모든것이 사치스럽게 느껴지드라.
꽃나무는 흔들어 꽃을 빨리떨어뜨려 버리고 싶었고 파릇파릇 새싹은 너무 앙증맞고 귀여웠지만 쳐다보다 얼른 고개를 돌려 보기 조차 싫었고.
그런데 오늘 afp외신 기자들이 가족 사진을 찍으러온대.
너랑 가족사진을 찍은적이 없는데 그런 것을 크게 의미를 두고 산적이없는데, 막상 너와같이 찍은 가족사진 한장 없다는 지금의 이 현실이 가장 후회가 많이되네.
마침내 기자들이 집으로 왔구 소파에 앉아 네 영정사진을 들고 네식구가 사진을 찍는다고 앉으니.
허....참!
또다른 고통이 밀려온다
사지가 밧줄에 묶여 당겨질때의 고통, 머리카락이 하늘로 솓구치고 온몸의 털이 위로 솓아오르고 내목에 밧줄을 감아 의자를 발로차기전의 그 떨림. 그 순간의 찰라.
지한아, 너를 어찌하면 좋으니. 네 영정 사진과의 처음이자 마지막 가족사진.
아들아!
하늘에서 선물처럼 내려준 내 아들 지한이. 오늘도 엄마는 엎드려 운다.
엄마가 무조건 잘못했다. 미안해 지한아.

3.25 금요일 늦은 밤
지한아, 오늘은 말을 할수 없을정도로 엄마, 아빠, 누나는 너무 슬프구나.
지한아, 오늘 꼭두의계절 마지막회였어. 김호준 피디님이 지한이의 마지막영상이 나온다며 전화와 문자까지 주셨어. 흠...후...으...읔 어떻게보지? 어떻게.....
그렇치만 봐야될거같아. 꼭 봐야지 하는맘을 굳게먹었지만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실눈을 뜨고 처다볼수밖에 없더라. 너무 잘생겼더라 내아들. 너무 잘났더라 내아들. 너무 고생했다 우리아들. 이제 고생끝 행복 시작이었는데. 너무 많이 굶었는데. 맛있는것도 많이 못 먹었는데. 믹서기에 갈은 닭가슴살 누린내가 아직도 내 코에서 나는것같은데...
지한아, 네가 가고 없는 어느날 지한이 네가 먹다 못먹은 현미100프로 밥을 데워서 엄마가 한숟갈 먹어봤지뭐야. 웩....앜! 1초도 망설임 없이 씽크대에 뱉어버렸어. 너무나 맛이 없어서, 씹을수가 없어서, 향이 싫어서, 입에 거슬려서.
후....
이런걸 매일 하루도 빼지않고 먹었단 말이지? 불쌍한 지한이.
우리만 먹고 있었던 흰쌀밥을 맛있게 해서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아니 그현미밥에 조금이라도 섞어서 억지로라도 줄걸.
멍청한 엄마, 바보같은 엄마.
왜 내가 그걸못했을까?
왜 내가 그걸 않했을까?
난 엄마도 아니야.
그렇게 맛없는 줄도 모르고 네가 가고나서야 그걸 먹어보다니.
난 엄마로서 자격이 없어.
미안하구나 아들아.
너무 미안하구나.
네게 햅쌀밥 한번 억지로라도 먹여볼걸.
흰 햅쌀밥이 이렇게 단맛이 나는데 우리만 먹었다니.
지한아,
너는 너무 멋진 배우였고 지금도 너는 멋진 배우다
우리 아기 지한이, 우리 아들 지한이. 우리의 꿈이었던 지한이.
남친같은 지한이, 딸같던 지한이.
나의 어린 아들. 눈물이 강이 되야 이 고통이 끝나려나.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