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 국민은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에 단호히 반대”
“우리는 전쟁 침략국 아냐…푸틴에 기생하는 루카셴코 독재정권과 구분해야”
(시사저널=클레어함 유럽 통신원)
리투아니아에 망명 중인 벨라루스의 야권 지도자 스뱌틀라나 치하노우스카야(40)는 2020년 대선에서 유력한 야권 후보였다. 그는 28년 장기집권으로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라는 별칭을 가진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에 맞선 민주화운동의 상징이다. 야권 세력이 지난해 8월 구성한 임시정부 수반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올해 3월 궐석재판에서 반역죄 및 국가안보 파괴 혐의 등으로 15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현재 벨라루스의 유력 야권 정치인들은 모두 자국 감옥에 수감 중이거나 망명 상태다. 벨라루스의 독립언론도 마찬가지다. 강제 폐쇄된 벨라루스의 네이버 격인 '투트 바이(TUT.BY)'는 강제 폐쇄된 이후 '제르칼로'로 이름을 바꾼 채 리투아니아를 본거지로 삼고 있다. 벨삿TV 및 유로라디오는 폴란드 바르샤바로, 라디오프리유럽의 벨라루스 지부도 체코 프라하로 이전한 상태다.
치하노우스카야는 4월19일 온라인 화상으로 시사저널을 만나 독재 탄압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사이에 놓인 조국 벨라루스의 야권 지도자로서 복잡한 심경을 털어놨다.
"벨라루스인 최소 5만 명 체포·구금·고문"
올해 자신은 15년, 파워블로거인 남편 샤르헤이 치하노우스키는 19년6개월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지난 대선 이후 벨라루스의 국내 상황은 어떤가.
"지난 대선에 연루된 야권 정치인들은 각종 혐의로 중형을 선고받았다. 예를 들어 마리야 칼레스니카는 11년형, 베라니카 찹칼라와 발레리 찹칼라 부부는 둘 다 17년형, 박타르 바바리카는 14년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지난해 노벨상 수상자 알레스·랴츠키는 10년형을 받았다. 이제 벨라루스에서는 누구든지 극단주의자로 선언될 수 있기에 그 누구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다. 매일 평균 17~20명이 구금되고 있다. 현재 공식적으로는 1500명의 정치범이 있지만, 보고되지 않은 사례를 고려하면 실제로는 3~4배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도 최소한 5만 명의 벨라루스인이 체포·구금·고문을 겪었다. 한마디로 스탈린 시대가 회귀했다."
지난해 8월 연합과도내각을 구성했는데, 이 임시정부의 목표와 활동 내용, 그리고 앞으로의 난관은 무엇인가.
"저는 곧 벨라루스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 망명 중에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2년이나 지났고 (우크라-러)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우리의 주권이 위태로워졌다. 그래서 임시정부 구성이 시급해 일부 정치인이 합심해 '통합과도내각'이라는 하나의 기구로 통합했다. 두 가지 주요 임무는 벨라루스의 주권을 보호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를 목표로 우리는 벨라루스 국민과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가해진 반인도적 범죄 증거를 수집해 루카셴코를 비롯한 권력 책임자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메커니즘을 개발 중이다. 난관은 부족한 활동자금이다. 어떻게든 우리는 생존하고 있으나 운동이 성공하려면 생존을 넘어선 그 이상의 재정이 필요하다."
벨라루스 국민은 국내에서는 독재권력의 피해자지만, 우크라-러 전쟁이라는 국제정치 상황에선 가해자라는 이중 정체성을 지닌다. 실제 많은 벨라루스 국민은 전쟁에 반대하는 것으로 들었는데, 그간 어떤 반전 활동이 있었나.
"대다수 벨라루스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한다. 우크라이나의 승리는 벨라루스인들이 장기 독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주기 때문에, 양국의 운명은 상호의존적이다. 그래서 '카스투스 칼리노우스키 연대' 같은 자원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싸우고 있다. 수도 민스크에서는 러시아의 침공 직후 국민이 전쟁에 반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대규모 철도 사보타주가 80번 이상 발생했다. 우리 국민은 우크라이나군 지원을 위해 기부금을 모았고, 최근 파르티잔(비정규군)은 러시아 군용기 A-50을 폭파하는 성과도 거뒀다. 벨라루스에서 모든 대안언론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벨라루스 및 러시아 정부의 프로파간다에 맞서는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이 '집단지성' 캠페인에 다수 시민이 참여하고 있는데, 현지 상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망명 중인 매체들에 보낸다. 대중매체에 접근할 수 없어 열악한 상황이지만, 소셜미디어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하고 있다. 벨라루스의 상황을 모르는 외신은 벨라루스를 단순히 침략자로만 간주하지만, 독재와 전쟁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루카셴코 정권과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의 루카셴코 정권 인정에 실망"
푸틴의 핵무기 위협에 대한 벨라루스 야권의 입장은 무엇인가.
"벨라루스에 핵무기를 배치하는 것은 우리 헌법과 부다페스트 의정서를 위반하는 것이다. 1994년 러시아연방, 영국, 미국은 부다페스트 의정서를 통해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영토 보전, 주권 보호를 보장한 바 있다. 핵무기 배치는 주변국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고, 벨라루스를 보복공격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기에 크게 우려된다. 또한 통제권을 러시아가 가지면 우리 주권은 더 축소되고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는 더 높아진다. 루카셴코는 푸틴을 지원하기 위해 주권을 넘기고 있다. 향후 민주화 이후에도 핵무기를 제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이를 막기 위해 모든 정치적 도구를 활용하고 있다. 제 군사고문은 핵무기를 운반할 차량들이 벨라루스에 있는 것 같다고 했지만, 매사가 극비로 이뤄져 저희도 많은 정보를 알지 못한다. 철도 사보타주 이후 러시아에서 온 모든 열차에는 500m 간격으로 군인이 배치된다고 들었다."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한국 사회에 특별히 바라는 점이 있다면.
"지리적으로 먼 한국은 벨라루스의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벨라루스인들은 28년 동안 루카셴코 정권의 독재하에 살아왔다. 이제 우리는 변화를 간절히 원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 2020년 이후에도 루카셴코는 푸틴의 지원과 잔인한 탄압으로 권력을 유지했지만 벨라루스인의 눈에는 정당성을 잃었다. 루카셴코는 대선 부정과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에 대한 유혈진압으로 극소수 국가를 빼곤 해외에서 합법적 국가원수로 인정받지 못하는 반면, 한국 정부는 이런 국제적 조류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한국의 주권을 존중하기 때문에 한국 정부에 무엇을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루카셴코가 국제무대에서 벨라루스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우리 입장을 전달하고 싶다.
루카셴코 정권의 대표로 한국에 파견된 안드레이 차르네츠키 주한 벨라루스대사는 애초부터 합당하지 않다. 그는 민주 인사 탄압으로 악명 높은 국가보안위원회(KGB) 국장 24년 경력의 소유자다. 또한 벨라루스인들은 루카셴코가 푸틴의 전쟁 공범이 된 후에도 민주국가인 한국에서 박두순 대사의 신임장을 루카셴코에게 제시한 것에 대해 크게 실망하고 있다. 루카셴코는 한국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인정한다는 사실을 이용해 자신을 정당화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앞으로 벨라루스가 정상화될 때 한국의 민주화 경험과 경제 발전에 대해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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