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는 배터리가 강하다, LFP는 강하다
■강한 것이 살아남는다
전기차는 100년 전에도 있었다. 내연기관 차에 밀려 사라졌을 뿐이다. 왜 그랬을까? 배터리 때문이다. 온종일 충전해도 수십 km 밖에 못 갔으니까. 게다가 비싸고 무거웠으니까.
사라졌던 전기차가 다시 돌아온 것도 배터리 덕분이다. 내연기관보다 폭발적인 성능을 낸다. 적당히 충전하면, 충분히 긴 거리를 주행한다. 배터리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즉, 전기차의 심장은 배터리다. 따라서 자동차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배터리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무엇이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까.
한국 배터리 산업의 밝은 미래를 확신하는 <K 배터리 레볼루션>은 배터리 전쟁은 '밀도 전쟁'이라고 역설한다. 핵심은 이렇다.
-'배터리 기술의 발전=에너지 밀도의 향상'이다.
-에너지 밀도가 높은 배터리를 만드는 기업이 미래를 주도한다.
-현존하는 가장 밀도 높은 배터리 기술을 가진 한국 배터리가 미래를 주도한다.
[K 배터리 레볼루션, 박순혁 지음]
요약하면, 배터리 시장의 승자는 '기술적으로 우월한 쪽'이 될 것이다. 현존하는 배터리 가운데는 삼원계(통칭, NCM)가 그렇다. 이 삼원계 기술이 더 강한 쪽이 살아남는다.
즉,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
강한 쪽이 있으면 약한 쪽도 있을 것이다. LFP가 그쪽이다.
LFP를 기술적 관점에서 정의하자면 '죽었다 깨어나도' 삼원계(NCM)의 에너지 밀도에 도달할 수 없는 배터리'다. 같은 거리를 달리게 만들려면 LFP는 더 무겁다. 같은 무게로 만들면 LFP의 주행거리가 현저히 짧다.
이유는 구성 광물이다. 기술적 설명을 다 생략하고 도식적으로 설명하면, 두 배터리의 차이는 양극재를 구성하는 광물의 차이다. 삼원계는 니켈 N, 코발트 C, 망간 M을 양극재로 쓰는 배터리다. LFP는 인산철 LP를 쓴다. 인산철이 훨씬 무겁다. 밀도는 낮다. 태생의 한계다.
즉, LFP는 약하다.
■ <중국 LFP 배터리 공급망 분석 및 시사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KIEP 이 보고서(최재희)를 하나 냈다. 주제가 배터리인데 LFP 배터리다. '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확신이 맞는다면, LFP가 설 자리는 없는데 왜?
일단, 중국이 LFP를 원한다. 테슬라에 이어 순수 전기차 판매 세계 2위인 BYD는 100% LFP 배터리만 생산해 자사 전기차에 탑재한다.
세계 1위 배터리 업체 CATL도 LFP를 더 생산한다. 중국에선 2021년부터 LFP가 삼원계를 넘어섰다. 2023년 3월 기준으로는 70%가 LFP다. 이렇게 LFP를 선호하는 중국, 상위 4개 업체( CATL, BYD, CALB, SVOLT)의 2025년 목표 연간 생산량은 합산해서 2,370Gwh다. (참고로 LG에너지솔루션의 2025년 목표 생산량은 540Gwh다.)
중국이 있어, 약한 배터리 LFP의 사망은 아직 멀리 있다.
이게 끝이 아니다.
미국, 미국도 LFP를 원한다. 블룸버그는 2030년까지 미국 전기차 수요의 40%를 LFP가 점유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목할 것은 테슬라다. 테슬라의 계획을 보면 기존의 모델3과 모델Y 외에 앞으로 출시 예정인 모델2와 전기버스, 단거리 전기 트럭에도 LFP가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
BMW나 폭스바겐, 스텔란티스 등 유럽도 LFP를 쓰겠다고 했다.
심지어 삼원계의 적장자, 한국 배터리의 희망, LG 에너지솔루션 조차 미국 애리조나에 3조원을 투자해 LFP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 왜? LFP보다 삼원계가 낫다면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를 생산하는 업체는 중국의 BYD다. (PHEV 포함, 순수 전기차는 테슬라가 1위다.) 광물부터 부품, 그리고 배터리와 완성차를 모두 제조하는 '수직통합형 기업'이다. 이 BYD의 전기차, 100% LFP만 쓴다.
<배터리 전쟁>에서는 BYD의 선택을 이렇게 말한다.
이 회사가 LFP 양극재에 감상적인 애착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 저렴하고 안전한 대안이어서 힘을 실을 뿐이다.
[배터리 전쟁, 루카스 베드나르스키 지음]
머리 아픈 이야기지만, 어쩔 수 없이 잠시 광물 이야기를 조금 해야 한다.
LFP니 삼원계니, 모두 배터리 부품 가운데 '양극재'의 소재와 관련된 차이다. LFP에 들어가는 인산철은 무겁고 밀도도 낮지만, 인(P)과 철( Fe)은 지구상에서 가장 흔한 원소 가운데 하나다. 즉, 싸다. 반면 삼원계의 원소들은 상대적으로 비싸다.
차이는 이것만이 아니다. 배터리의 핵심소재, 리튬 소재에도 차이가 있다.
리튬이라고 다 같은 리튬이 아니다. LFP 비교적 정제과정이 간편한 '탄산리튬'으로 만들 수 있다. 삼원계는 탄산리튬을 한 번 더 가공해야 얻을 수 있는 수산화리튬을 쓴다. (가공을 더 하니 당연히 원가가 더 높다) 이유는 녹는점이다. 수산화리튬은 녹는점이 낮아 니켈과의 합성이 편하다.
즉, LFP에는 더 싼 탄산리튬이 들어간다. 게다가 들어가는 리튬의 양도 적다. 더 싼 리튬을 더 적게 쓰고, 흔하고 싼 인산철을 쓴다. LFP의 경쟁력은 여기에 있다.
이 차이는 결국 원가의 차이가 된다. LFP배터리에서 양극재의 원가 비율은 17%까지 떨어졌다. 삼원계에서 양극재 비율이 40%에 달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큰 차이다. 더 흔한 광물로 더 쉽게, 또 더 싸게 만들 수 있다.
이게 LFP의 장점이다. 이 장점이 밀도가 낮다는 단점을 상쇄한다.
이제 근본적 물음을 던져야 한다.
■ 꼭 강해야 해? 꼭 더 가볍고 부피가 작아야 해?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 가정용 고급 소형 전기차라면 무게 차이가 큰 차이일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그런 전기차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장거리 운전을 하지 않는 운전자라면, 또는 트럭이나 버스라면? 꼭 가볍고 부피가 작지만 비싼 배터리를 써야 할까?
일단, 일론 머스크는 '아니, LFP 써도 돼'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더 의미 있는 질문은 'ESS 에너지 저장 장치'나 '전기 선박' 차원에서 던질 수 있다. ESS는 전기 저장장치다. 스마트폰 충전하려고 가지고 다니는 휴대용 배터리팩과 용도가 같다. 전기를 저장해놨다가 필요한 때 빼 쓴다. 전력이 생산되는 곳, 혹은 안정적 전력 공급이 필요한 곳에 이 ESS 시설을 공장처럼 만든다.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의 시대에 ESS는 필수 요소다. 간헐성 때문이다. 신재생 에너지는 낮에만, 바람이 불 때만 전기를 생산한다. 필요한 때 쓰려면 저장해야 한다. 기후 대응 과정에서 이 간헐적 신재생 에너지의 영향이 커질수록(커질 수 밖에 없다) ESS의 역할은 커진다.
이 거대한 전기저장 배터리 ESS는 굳이 작을 필요도, 가벼울 필요도 없다. LFP 배터리가 최선일 수 있다. LG가 미국 애리조나에 짓는 LFP 공장도 바로 이 ESS용 배터리 생산 공장이다.
같은 맥락에서 전기 선박도 마찬가지다. 결국, LFP와 삼원계는 역할을 분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살아남는 배터리가 강하다, LFP는 강하다
자, 전제가 잘못됐다. 강해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아서 강한 것이다. 자연계의 적자생존은 그런 뜻이다. 기술의 세계에서도 그런 사례는 널려있다. 기술적 우수성을 근거로 으스대다가 사라진 기업과 기술이 한 둘이 아니다.
배터리의 세계에서도 그렇다. LFP의 시대는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이다.
서영민 기자 (seo01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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