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낸 '전세 사기 특별법' 부족하다는 피해자들…지원책 어떻기에[부동산백서]

박승희 기자 2023. 4. 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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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 요건 만족해야 우선매수권·공공임대 등 지원…채권매입 방안 빠져
"너무 폭 넓으면 '진짜 피해자' 구제 못 해"…추가 요구 사회적 합의 난망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정부여당의 전세사기 특별법안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2023.4.28/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서울=뉴스1) 박승희 기자 = 곳곳에서 전세 사기가 기승입니다. 올해 초 서울 강서구에서 '빌라왕'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최근엔 인천 미추홀구의 '건축왕' 사태가 터졌습니다. 갭투자에 나섰던 집주인들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겠다며 손을 들었습니다. 결국 수많은 세입자가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거나 떼일 위기에 처했죠. 암담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사연도 이어지고 있고요.

앞서 정부가 세 차례에 걸쳐 전세 사기 대책을 내놨지만, 예방에 초점을 맞춰 수년 전 전세 계약을 체결한 기존 피해자들까지 구제하긴 역부족이었습니다. 정부는 범부처 합동으로 태크스포스(TF)를 만들어 머리를 맞댔고, 지난주 피해자들을 위한 특별법이 발의됐습니다.

특별법이 통과되면 전세 사기 피해 임차인들은 살던 집을 우선 낙찰받을 수 있게 됩니다. 각종 대출 규제를 완화해 경매 낙찰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는 길도 열렸고요. 취·등록세는 면제하고 재산세도 감면했습니다. 임대인 체금 세금을 보유 주택에 나눠 징수하는 조세채권 안분 제도도 처음 도입했고요. 매수를 희망하지 않을 경우엔 LH에 우선매수권을 양도하고, 공공임대에 장기간 낮은 임대료로 거주할 수 있게 했습니다. 긴급 생활비도 지원받게 됩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왜일까요?

우선 특별법 대상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한 요건이 까다롭다는 겁니다. 제시된 조건은 △대항력을 갖추고 확정일자를 받은 임차인 △임차 주택에 대한 경·공매 진행 △면적·보증금 등을 고려한 서민 임차 주택 △수사 개시 등 전세 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 △보증금의 상당액이 미반환될 우려, 이렇게 여섯 가지입니다.

특히 3번, 4번, 5번, 6번 요건이 모호하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정부는 서민 임차 주택을 전용 85㎡, 3억원 이하로 내부 기준을 정했지만, 서울이나 가족 구성원이 많은 경우 기준을 넘을 가능성이 큽니다. 전세 사기 의도를 입증하기 어려운데, 명확한 기준도 없어 지원에서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많고요. 피해자 '다수', 보증금 '상당액'의 기준도 불명확하단 지적도 있습니다.

정부는 적용 대상을 너무 폭넓게 잡으면 오히려 부작용이 클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한 푼도 건질 수 없을 만큼 피해가 극심한 이들이 정작 구제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요건이 모호한 것은, 구제 범위를 넓히기 위해 일부러 명확한 경계선을 긋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경계선 효과 때문에 억울하게 배제되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기 위해 법률상 기준을 명확히 정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전세 사기 피해지원위원회 심의에서 개별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하자는 목적입니다.

전세 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는 정부의 특별법이 '보여주기식'이라고 반발합니다. 조건 일부를 만족하더라도 피해자로 인정할 수 있도록 폭넓게 개선하고, 선(先)구제 후(後)회수라고 불리는 채권매입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대책위 요구입니다. 현재 정부안으로는 구제받지 못하는 피해 사례들이 여전히 많다면서 "신속한 통과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법안 통과가 절실하다"고 말합니다.

정부는 추가 요구에 대해선 난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사기 피해를 국가가 대납하는 선례는 있어선 안 되는 입장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죠. 일각에선 벌써부터 전세 사기 피해자들에게 특혜를 준다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보이스 피싱이나 주가 조작으로 큰돈을 잃은 사람까지 다 구제해야 하느냐는 겁니다. 사회적 합의가 어려운 방안은 실행하긴 어렵다는 것이 정부 입장입니다.

국회에서는 전세 사기 특별법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이르면 다음 달 초 통과가 목표입니다. 채권매입과 같은 세부 방안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이고 있지만, 빠른 처리가 필요하다는 것은 여야 모두 공감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시행령, 시행규칙 등을 촘촘하게 마련해 피해 구제에 힘쓰겠다는 계획인데요. 특별법이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다시 일으킬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seungh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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