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약’ 넘어 ‘제제’로…한약이 국민 건강에 기여하려면
최근에 한약에 대한 이용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정부가 실시한 한 통계 조사가 있었다. 조사 문항 중 하나가 한방의료기관 이용 경험에 대한 질문이다. 결과를 보면 이용 경험이 연령대에 따라 크게 달랐다. 60세 이상에서는 90% 이상이 한방의료기관을 이용해 봤다고 응답했지만, 30대 이하에서는 50%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를 놓고 보면 젊은 세대일수록 한의원을 가지 않았으니 한약을 이용해본 적도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한방의료기관을 이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한약을 이용해보지 않은 것은 또 아니다.
일반적으로 ‘한약’이라고 하면 대부분 한의원에서 달여서 먹는 ‘첩약(여러 약재를 한 봉지에 싼 형태)’을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현대화된 ‘제형’으로 나오는 한약이다.
제형은 한의원에서 처방하기도 하지만, 약국에서 대부분 판매가 이뤄진다. 예전에 다이어트약으로 유명했던 ‘살사라진’이라는 약은 원래 ‘방풍통성산’이라는 한약을 제품명으로 바꾼 것이다.
코로나 19 증상을 가라앉히는 효과로 품절이 됐던 한약인 ‘은교산’의 경우에는 은교산이라는 이름으로도 출시가 됐지만, ‘안티캄’ ‘월드로신’ 등 제약사별로 다른 이름으로 시장에 나왔다. 이외에도 처방이 있어야 구입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된 한약도 있다.
통념적으로는 한의사가 처방하면 한약, 의사·약사가 처방하거나 판매하면 양약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 때문에 젊은 세대일수록 한약에 대한 경험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의원뿐만 아니라 약국에서, 또는 병원에서 제제의 형태로 한약을 접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직능 간 모호한 상태가 한약 제제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의사들은 첩약에 대한 선호도가 강해서 한약 제제에 대한 사용 의지가 높지 않다. 첩약의 대체품으로만 인식되는 현실이다. 그리고 의약계에서는 한의계와의 갈등으로 인해 젊은 의사들을 중심으로 한약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인 불신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로 보인다.
의약분업 제도상에서 약업계도 한약 제제가 주요한 매출원은 아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한약 제제는 발전하지 못하고 직능 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한국과 이웃한 국가들은 다르다. 중국은 중약으로, 일본은 캄포약으로 표현하는 한약 제제의 시장 규모가 상당하고, 한약 제제를 생산하는 꽤 큰 기업들이 존재한다.
아마 미래의 한약 모습은 현재의 첩약보다는 한약 제제의 형태가 될 것이다. 이러한 한약 제제에 대한 연구가 더 활성화되고, 새로운 효능의 한약 제제들이 많이 개발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 현재로서는 한약 제제 의약분업 등 다양한 직역들이 서로 동의할 수 있는 형태로 여러 가지 제도적인 보완이 진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약은 우리 전통 지식에 기반한 중요한 지식이자 의료수단의 하나다. 국민이 손쉽고 편리하게 한약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약 제제가 많이 발전됐으면 한다.
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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