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묵히다 다시 '시계 제로'…결국 中에도 밀린 韓 비대면 진료

안정준 기자 2023. 4. 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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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비대면 진료, 다시 시계 제로①

[편집자주] 코로나19 대유행 3년, 한시적 허용으로 숨통이 트인 듯 했던 비대면 진료의 시계가 다시 흐려진다. 국회에서의 법제화 논의가 속도를 내지 못한 가운데 법제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당정이 합의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조차 아직 구체적 안이 마련되지 않았다. 비대면 진료의 핵심 이해관계자인 의료계와 플랫폼 업계 등의 시각차 때문이다. 지난 3년, 이미 전 국민의 30%가 비대면 진료의 편리함을 맛봤고 일찌감치 비대면 진료를 법제화한 주요국들과의 비대면 진료 기술 격차가 갈수록 벌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기서 다시 멈출수는 없다.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충돌 지점들을 살펴보고 균형잡힌 법제화 방향을 모색해본다.


#30대 워킹맘 A씨는 얼마전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기침을 하며 고열 증세를 보인다는 연락을 받았다. 곧바로 비대면 진료 앱을 통해 의사의약 처방을 받았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5분. A씨는 "비대면 진료가 없었다면 아마 회사에 반차를 낸 다음 애를 데리고 병원에 가 다시 의사 대면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려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A씨의 경험은 코로나19 3년간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가 바꿔놓은 의료 서비스의 대표적인 사례다. 의사를 보기 힘든 도서지역 환자부터 A씨처럼 병원에 가기가 여의치 않은 직장인까지 지난 3년간 비대면 진료를 받은 사람은 1379만명. 전 국민의 3분의 1이 비대면 진료의 편리함을 맛본 셈이다.

이처럼 코로나19의 한시 허용을 계기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비대면 진료가 유일하게 허용되지 않은 우리나라도 곧 바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비대면 진료 법제화를 향한 발걸음은 최근 다시 '시계제로' 국면으로 돌아섰다. 비대면 진료의 핵심 이해 당사자인 의료계와 플랫폼 업계 등의 주장이 엇갈린 가운데 국회에서의 법제화 논의에 제동이 걸린 탓이다.

30일 보건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가 준비중인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연장안은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공중보건 비상사태 해제 선언이 임박한 4월 말에 이르러서도 아직 구체적 방향과 일정이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당초 시범사업은 비대면 진료가 법적 근거를 잃게 될 경우를 대비해 국민의힘과 보건복지부의 당정 협의를 통해 마련됐다. WHO가 5월 초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해제하면 이에 따라 질병관리청은 코로나19 위기 단계를 '경계' 혹은 '주의'로 내리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심각' 단계에만 허용된 비대면 진료의 법적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이를 대비한 시범사업조차 아직 뚜렷한 안이 마련되지 못한 셈이다.

사실 국회에서의 법제화 논의에 속도가 붙었다면 시범사업은 굳이 추진할 필요가 없는 '플랜 B'였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4일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감염병 단계가 내려가기 전 법제화가 되면 시범사업을 할 필요가 없는 만큼 입법이 조속히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비대면 진료 제도화 관련 법안은 총 5건.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3월 제1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이를 심사했지만 의사와 약사 등 의료계 출신 의원들의 반발에 막혀 심사가 보류됐다. 지난 달 25일에도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제차 열렸지만 이번에는 5건 법안에 대한 논의 자체가 진행되지 못했다.

이처럼 법제화 논의는 물론 시범사업안까지 속도를 내지 못한 것은 근본적으로 비대면 진료가 어떤 모습으로 법제화되느냐에 따라 이해가 갈리는 의료계 및 플랫폼 업계의 시각 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보건의료계 한 관계자는 "의료계 출신 의원들의 반대는 의료계가 비대면 진료 법안을 바라보는 시각을 상징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며 "시범사업안도 법안심사소위 논의를 반영해 마련하려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법안 이해관계자들의 시각차 탓에 모든게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의견이 엇갈리는 대표적 영역이 초진부터 비대면 진료에 포함시킬지 여부다. 플랫폼 업계는 비대면 진료 이용자 대부분이 초진환자여서 재진부터 비대면 진료로 허용할 경우 업계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의료계는 환자 안전을 위해 초진은 대면 진료가 원칙이라는 입장이다. 비대면 진료 수가도 관건이다. 현재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의 수가는 대면 수가의 1.3배인데 의료계에서는 이를 1.5배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이 경우 건강보험재정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이 밖에 약사들은 약물 오남용 우려가 있어 비대면 진료를 통한 약배송에 반대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코로나19를 기회로 숨통이 트이는 듯했던 비대면 진료가 이해 관계자들의 시각차 탓에 다시 갈지자 행보를 보이는 셈이다. 사실 비대면 진료 관련 논의는 이미 24년 전 시작됐다.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 강원도 보건소에서 시범적으로 실시됐다.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대형병원 쏠림현상, 환자 안전 등 우려를 근거로 모두 진척을 보지 못했다.

그동안 비대면 진료 법제화를 막은 이 같은 우려는 코로나19 한시적 허용 3년간 발생하지 않았다는게 정부 시각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3년간 한시적 비대면 진료 현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의원급 의료기관이 참여 의료기관 중 93.6%를 차지했다. 우려와 달리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없었던 셈이다. 비대면진료에 따른 심각한 의료사고도 확인되지 않았다. 사용자 만족도도 높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전화상담 처방 진료를 받은 환자 또는 가족 500명 대상으로 실시한 만족도 조사 결과, 응답자의 77.8%가 '비대면 진료 이용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24년째 법제화가 속도를 내지 못한 사이 한국의 비대면 진료 기술력은 중국에 따라잡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최근 내놓은 '2022년 보건의료·산업 기술수준 평가 전문가 설문 및 결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국의 원격 의료 기술력은 2016년 미국, 일본, 유럽, 한국, 중국 순으로 한국이 4위, 중국이 5위였지만 2022년 한국과 중국은 공동 4위가 됐다. 이 조사에서 기술 격차가 발생한 주요 요인으로는 정부 규제가 꼽혔고, 기타 의견으로 '이해 집단의 반발'이 제시됐다. 일각에선 비대면 진료 법제화조차 안된 상태에서 4위에 오른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말도 나온다.

안정준 기자 7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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