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人] (16) '미출판 작품만 번역' 영미문학 전도사 박재영 교수
"좋은 작품 국내 독자에 알리고 싶어…후학들 연구에도 도움 되길"
[※ 편집자 주 =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지방 대학들은 존폐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대학들은 학과 통폐합, 산학협력, 연구 특성화 등으로 위기에 맞서고 있습니다. 위기 속에서도 지방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학 구성원들을 캠퍼스에서 종종 만나곤 합니다. 연합뉴스는 도내 대학들과 함께 훌륭한 연구와 성과를 보여준 교수와 연구자 또 학생들을 매주 한 차례씩 소개하려고 합니다.]
(전주=연합뉴스) 김진방 기자 =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영미권 고전 작품을 찾아 번역하는 일이 연구 못지않게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번역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2017년부터 국내에 미출판 영미권 고전 소설을 번역해 출간하고 있는 박재영 전북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는 28일 번역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 같이 설명했다.
박 교수는 2017년 영국 여성작가인 샬럿 대커의 '조플로야' 번역을 시작으로 2019년 제시 레드먼 포셋의 '플럼번', 2020년 앨런 글래스고의 '끌림 1, 2', 2021년 윌키 콜린스의 '이세벨의 딸', 2022년 앤 피트리의 '116번가', 2023년 앤 래드클리프의 '시칠리아 로맨스'를 출간하는 등 꾸준히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박 교수는 번역을 시작한 계기에 대해 "논문을 30여 편 가량 썼지만, 사실 논문은 독자가 매우 제한적이다. 논문도 좋지만, 여러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번역을 하게 됐다"면서 "돈을 벌려고 한다기보다는 미국에서는 잘 알려졌지만,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작품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려고 번역을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한국에서 수학교육을 전공한 뒤 1995년 미국으로 건너가 애리조나주립대에서 학부·석사·박사 등 8년간 영문학을 전공했다.
박 교수가 번역할 작품을 고르는 데는 엄격한 기준이 두 가지 있다.
먼저 한국에 번역이 안 된 작품이어야 하고, 두 번째는 도서관에 남겨두면 후학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작품이어야 한다.
박 교수는 "지금까지 번역한 6개 작품 모두 미국에서 대학에 다닐 때 수업을 들었던 작품"이라며 "제가 전문 번역가도 아니고, 번역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작품을 고르다 보니 국내에 출판되지 않은 작품들을 선정해 출간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사실 고전문학을 주로 번역하는 이유는 제가 번역하는 책들은 독자가 많지 않아 출판사에 부담이 많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작권이 종료된 작품을 고르려고 노력한다"면서 "또 교수로서 후학들이 읽어볼 만한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해 두기 위한 이유도 있다"고 강조했다.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해야 하는 교수로서 거의 매년 400∼500쪽에 달하는 작품을 번역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박 교수가 한 작품을 번역하는 데는 평균 9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그는 "매년 한 작품을 출간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번역하고 있다. 평균적으로 6개월에 초고가 완성된다. 그 뒤로 3∼4개월 정도 교정을 본다"면서 "고전 작품이라 그런지 교정 기간이 일반 작품보다 오래 걸린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져서 현직에 있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번역 작업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가 번역한 작품의 주인공들은 18, 19세기 영국 여성이거나 흑인, 싱글맘 등 사회적 약자들이 많다.
이런 작품을 선정해 번역하는 이유는 아직도 차별 정서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 작은 울림을 주고 싶어서다.
박 교수는 "제가 공부를 하던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는 여성주의 문학 등 소수 문학이 한참 유행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관련된 작품을 주로 번역하게 됐다"면서 "또 한편으로는 한민족, 순혈주의를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 우리가 간과했던 소외됐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는 또 "제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한국 사회와 동떨어진 근대 영국 여성이거나 흑인이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것들"이라며 "국제 교류가 활발해지고, 한국에도 여러 국가의 사람들이 들어와 사는 현실을 생각하면 소수 문학이 던지는 물음에 우리도 귀를 기울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앞으로 계획에 대해 "고전 작품 번역을 꾸준히 하고, 본업인 연구와 초·중·고교 교과서 집필도 계속해서 해나갈 생각"이라며 "현재 목표는 지치지 않고 은퇴하는 순간까지 이 일을 계속해 스스로 떳떳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chin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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