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채 내다파는 中…‘달러 패권’ 도전에 원화 향방은
미·중 갈등에 대응…‘위안화 굴기’ 속도
원화, 위안화 따라가는 동조 현상 심화되나
중국이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를 내다팔면서 중국의 미 국채 보유액이 1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중 갈등이 고조되자 중국이 ‘달러화 패권’에 도전하는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국채 보유량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미국 국채 순매도 규모가 늘어나면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서 달러화 가치도 덩달아 오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금융·외환시장에서는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 중인 중국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 중국의 미 국채 보유액, 12년 만에 최저
30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센터는 최근 미국 재무부의 ‘국제자본 유출입동향(TIC)’를 인용해 지난 2월 말 기준 중국의 미 국채 보유잔액이 8488억달러로 지난 2010년 6월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 2021년 12월 말의 1조403억달러와 비교하면 1915억달러 줄었다.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잔액은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된 2017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고, 지난해에는 그 흐름이 가팔라졌다. 실제 중국의 미 국채 보유잔액 증감율은 지난해 2월 -6.8%에서 지난 2월 -17.5%로 감소 폭이 커졌다.
지난해의 경우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강도 긴축으로 달러화가 초강세를 보이자, 중국은 물론 일본, 한국 등 주요국도 자국 통화가치를 방어하는 등 ‘역(逆)환율 전쟁’ 실탄을 마련하기 위해 미 국채를 순매도했다.
그러나 올 들어 연준의 금리 인상 종료 기대감으로 강달러 현상이 완화되면서 각국 중앙은행들의 외환시장 개입 필요성이 감소했다. 이에 주요국의 미 국채 보유잔액은 지난해 11월을 기점으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TIC를 보면 세계 38여개국의 미 국채 보유잔액은 지난해 10월 말 7조1332억달러에서 2월 말 7조3436억달러로 늘었다.
중국이 주요국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중국 정부가 포트폴리오 다각화와 위안화 국제화를 목표로 미 달러 자산과 국채 비중을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조는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세계 경제 블록화(동맹국 중심으로 공급망이 재편되는 현상)가 가속화하면서 더 두드러졌다.
최근 미국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대중 제재 강도를 높이고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화하자, 중국이 이에 대항해 미 국채를 팔아치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관영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중국이 장기적 경제·금융 안보 강화를 위해 미 국채 보유잔액을 줄이고 있다”며 “미 경제는 정부 부채한도 등으로 신뢰를 잃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제재 조치들이 국채 보유자들에게 위험을 높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도 외환보유액의 다변화를 내세우면서 미 달러화 비중을 축소해왔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 1995년 중국 외환보유액 내 달러화 비중은 79%에 달했지만, 2017년에는 58%로 낮아졌다. 이는 전 세계 평균(63%)을 밑도는 수준이다. 인민은행은 2017년 이후 외환보유액 중 달러화 비중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이 수치는 더 낮아졌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국제금융센터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위안화 결제가 증가하고 있는 점도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잔액 축소에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에 속도를 내면서 중국에서 만든 ‘국경간 위안화 지급 시스템(CIPS)’을 통한 위안화 결제액은 지난 2021년 4분기 21조3000억위안에서 지난해 4분기 26조1000억위안으로 늘었다.
대표적으로 브라질은 지난 14일 중국과의 정상회담에서 노골적으로 친중 행보를 보이면서 중국의 위안화 굴기에 힘을 실어줬다. 양국은 헤알화와 위안화로 대규모 무역과 금융 거래를 직접 수행하기로 했다. 브라질 기업들은 달러 결제망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대신 CIPS를 이용한다고 밝혔다.
◇ 中 ‘위안화 국제화’ 시도…원화 변동성 커지나
미·중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중국의 지속적인 미 국채 순매도가 간접적으로 원·달러 환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요국이 미 국채를 팔면 시중에 국채 물량이 늘면서 국채 가격이 하락(국채 금리는 상승)하고, 미 국채 금리에 연동되는 달러화도 강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통상 달러화 강세는 원화 약세로 이어진다.
그러나 시장 관계자들은 중국의 국채 순매도가 달러화의 추세적 약세 흐름을 막을 정도로 강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상원 국제금융센터 부전문위원은 “중국의 미 국채 보유잔액이 계속 줄어들고 있지만, 매도세가 공격적이지 않고 완만하기 때문에 달러화 가치에 영향을 미칠 만큼 크지 않다”며 “중국을 제외한 주요국이 다시 미 국채를 사들이고 있어 달러화에 대한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 시도가 장기적으로 환율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원화는 위안화의 프록시(proxy·대리) 통화로 불릴 정도로 위안화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중국이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이기 때문에 중국 경기 상황에 따라 위안화가 오르내리면 원화도 이런 흐름을 따라가는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시장에서 위안화의 위상이 높아질 경우 원화와 위안화의 동조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처럼 이미 중국과의 무역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중국이 청산은행 설립, 위안화 직거래시장 개설 등 위안화 국제화 노력은 양국 통화의 동조화를 부추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KIEP는 “위안화 국제화로 외국인의 원화 예금, 원화 금융자산 투자가 줄면서 역으로 원화 국제화를 저해할 수 있다”고 했다.
가뜩이나 원화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 전망,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 흐름, 중국 경기 등의 영향을 받아 출렁이고 있는데 여기에 중국의 ‘위안화 굴기’까지 더해지면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부터 1300~1330원대 박스권에서 방향성을 잃고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장중 한때 1340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수출 부진으로 무역적자 규모가 불어나는 등 우리나라 경제 기초체력이 약해진 탓에 원화가 주요국 통화에 비해 큰 폭으로 오르내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올 들어 이달 20일까지 우리나라 무역수지는 265억84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 규모는 벌써 지난해 같은 기간(95억400만달러 적자)의 3배에 달한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미 통화 긴축 불확실성에 더해 무역수지 적자가 지속된 여파로 지난 2월 원화 환율 변화율이 여타 통화 평균치를 2배 이상 상회했다”고 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월 원화 가치 변화율은 7.4%로 34개국 중 가장 높았다.
미·중 패권경쟁이 장기적으로 미국 주도의 경제질서를 흔들고 세계 교역량 감소로 이어질 경우 지금의 ‘달러 체제’에 균열이 생기면서 달러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탈(脫)달러 체제, 즉 달러 패권이 막을 내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는 이미 미국과 중국간 교역의존도가 낮아지면서 세계 경제가 교역 감소 위험에 직면했기 때문”이라면서 “이로 인해 달러화 변동성이 확대될 여지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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