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에 의한 평화’ 기조 강화…나토식 핵공유 보단 약하고 북중러 반발 부담
28일(현지시간) 마무리된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방미는 윤석열정부가 지향하는 외교 철학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행사로 평가된다. 윤 대통령은 ‘북핵 위험 억제’와 미국이 이끄는 세계질서에 적극 참여하는 ‘리더 국가로의 부상’, ‘세일즈 외교’에 외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은 북핵 억제의 키를 쥔 세계 최강국이자 윤 대통령이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선봉 국가로, 중국의 굴기에 맞서 최근 우방국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는 실력 행사를 하고 있다.
이번 방미 성과는 미국과 밀착하며 대중(對中)∙대러시아 외교 리스크를 감수하는 대가로 윤 대통령이 얼마나 자신이 추구해온 정책에 있어 미국 측의 협조를 이끌어낼지에 관심이 모였다.
윤 대통령은 지난 26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 위협에 맞서 강화된 확장억제 방안을 담은 ‘워싱턴 선언’을 채택했다.
한반도 주변에 핵잠수함 등 미 전략자산을 상시 수준으로 배치하고, 양국 간 ‘핵협의그룹’(NCG)를 설치해 미 핵전력의 운용 계획과 실행 과정에서 한국에 발언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미국의 전적인 기획, 한국 단순 참여’ 형식인 현재의 확장억제 논의 구조를 완전히 개편하는 수준의 전격적 조치라는 게 대통령실의 평가다.
윤 대통령은 이날 미국 하버드대에서 연설을 마친 뒤 질의응답에서 ‘워싱턴 선언’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식 핵공유’를 비교하며 “(한∙미가) 1대1로 맺은 것이기 때문에 미국과 나토 회원국의 다자 약정보다는 더 실효성이 있다고 판단한다”며 “확장 억제라는 개념이 하나의 선언에서 그치지 않고 어느 특정 국가와 문서로서 정리된 첫 번째 사례“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현지 브리핑에서 “우리 국민들이 사실상 미국과 핵을 공유하면서 지내는 것처럼 느껴지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는 점에서 북핵에 맞선 진전된 조치로 보인다. 하지만 역내에 미 전술핵을 직접 들여다놓고 나토 회원국 전폭기에 핵무기를 탑재 가능하게 한 ‘나토식 핵공유’ 보다는 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이 ‘보복 대응’ 대신 ‘압도적 대응’으로 핵우산 선언 수위를 낮춘 점에서 사실상 ‘핵무장’을 한 북한에 비해 여전히 전력 열세라는 것이다.
중국, 러시아와의 긴장 고조로 ‘한∙미∙일’ 대 ‘북∙중∙러’의 동북아 ‘신냉전’ 구도가 강화되는 것도 부담되는 대목이다. 미국 전략핵잠수함의 한국 기항에 반발하며 북∙중∙러가 군사행동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또 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대만 문제 등 인도태평양 지역 현안에 미국과 일치된 목소리를 내며 당장 중국, 러시아가 반발하고 있다.
대통령실 내부에는 미∙중이 협력했던 과거에는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같은 ‘줄타기 외교’가 가능했지만, 미∙중 패권경쟁 시대에는 결국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기류가 강하다. 윤 정부의 미국 밀착 외교에는 이러한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 분야에선 윤 대통령의 정상 외교로 미 전기차법(인플레이션감축법∙IRA)∙반도체과학법 관련 해법 마련에 관심이 쏠렸다.
대통령실 최상목 경제수석은 지난 28일 현지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회담에서 IRA·반도체과학법에 대한 구체적 해법이 나오지 않았다’는 지적에 한국 기업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상 간 “명쾌하게 합의가 됐다”며 앞으로 실무 차원의 지속적 협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미 정상은 회담 공동선언문에서 “양 정상은 IRA·반도체과학법이 기업활동에 있어 예측가능성 있는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상호 호혜적인 미국 내 기업 투자를 독려하도록 보장하기 위해 긴밀한 협의를 계속해 나가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미 행정부가 윤 대통령의 국빈방미에 앞서 이미 해당 법 관련 세부지침을 발표한 만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이를 당장 바꾸기에는 한계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대신 한∙미는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차세대 핵심·신흥기술 대화’를 신설하기로 했다.
양국은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를 계기로 배터리, 반도체,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한·미 간 50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미국 기업의 대한국 투자는 약 59억 달러(약 8조원)가 이뤄졌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의 지난해 5월 방한 때는 현대차가 약 13조원 투자를 발표했고, 롯데그룹이 2조5000억원, 한화그룹이 2000억원 투자 계획을 밝혔다. 이보다 한 해 앞서 삼성그룹은 약 20조원 투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한∙미 경제협력 결과 한국의 대미 투자가 미국 기업의 한국 투자보다 앞서게 된 상황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 투자해야 우리가 세계 시장을 선점할 수 있고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국은 이밖에도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전략적 사이버안보 협력 프레임워크’, ‘한∙미 양자과학기술협력 공동성명’, ‘한∙미 우주탐사협력 공동성명’을 채택하며 협력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30일 오후 5박7일 간의 국빈 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다.
보스턴=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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