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학의 미리미리] 마른 몸에 대한 욕망, 뚱뚱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2023. 4. 29.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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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지난 달, 배우 기네스 펠트로(Gwyneth Paltrow)가 '점심으로 사골국(bone broth)을 자주 먹는다'고 한 것에 대해 미국의 유명 모델인 테스 홀리데이(Tess Holliday)는 '사골국은 적절한 식사(suitable meal)가 아니라고 비판했다.

기네스 펠트로는 점심으로 주로 수프(soup)를 많이 먹는데 사골국도 자주 먹는다고 했다. 곰탕이나 설렁탕처럼 소면이나 밥을 말아먹는 게 아니라 그냥 국물만 마신다는 느낌이 확실했다. 사골국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아무런 영양가가 없다. 사골국은 칼슘이나 다른 영양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지 않다. 사실 그냥 물만 먹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적절한 식사가 아니'라는 말은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기네스 펠트로는 저녁은 거의 야채로만 먹는다고 했는데, 테스 홀리데이는 이에 대해 탄수화물은 악마가 아니고 지방은 나쁜 게 아니라고 말했다.

테스 홀리데이는 기네스 펠트로가 섭식장애(eating disorder, ED)를 미화(glorifying)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도 섭식장애가 있다고 말하며, '뚱뚱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세상에 이런 메시지가 계속 전파를 탈 수 있도록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고 있다'고 말하며 사람들에게 기네스 펠트로처럼 먹는 것을 적절한 것, 괜찮은 것으로 생각하게끔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 기네스 펠트로(Gwyneth Paltrow)와 테스 홀리데이(Tess Holliday). 사진=flickr

섭식장애는 정신장애의 유형 중 하나로 많은 사람을 자살로 내몰고 있다. 섭식장애는 개인에게 매우 위험하지만 이 사회는 섭식장애를 조장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마른 몸을 강요한다. 그냥 강요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마른 몸은 당연하고도 마땅하게 갖추어야 할 인간의 조건으로 자연스럽게 제시되어 있다. 뚱뚱한 사람, 체격이 큰 사람은 '게으른 사람, 나태한 사람,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 자기 관리 못하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편견은 뚱뚱한 사람이 '프로페셔널(professional, 전문적)하지 못하다, 일을 잘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도 이어진다. 이런 사회에 섭식장애 환자가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남성에게도 외모에 대한 기준이 강요되지만, 여성에 대한 외모의 기준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훨씬 더 촘촘하다. 그래서 더욱 위험하고 해롭다. 섭식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 여성의 비율은 남성보다 4배나 높다.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섭십장애 진료인원의 성별 점유율은 남성이 18.9~23%, 여성은 77~81.1%다. 20대 여성의 섭식장애 진단율은 20대 남성에 비해 9배나 높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10대 20대 여성 중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야만 하는 향정신성의약품(식욕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용도의 약물)을 트위터 등의 sns를 통해 구입하여 복용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소식들이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거식증을 뜻하는 애너렉시아(anorexia)와 찬성을 뜻하는 프로(pro-)의 합성어인 '프로아나'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기도 하다. 마른 몸을 위해 극단적인 방법으로 극심한 “다이어트”를 하며 그런 모습을 인증하는 게시물을 올리면서 해시태그로 사용하고 있다. 많이 굶고, 무언가를 먹었다면 토해낸다. 변비약이나 이뇨제를 먹어서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비워내기도 한다.

테스 홀리데이는 자신이 정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아직 답은 없어도, 그가 쏘아 올린 이 논의는 중요하다. 자기 자신의 몸을 긍정할 수 없으면 자기 자신을 긍정할 수 없고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도 없다. 체격에 대한 차별(size-ism), 뚱뚱함에 대한 혐오(fat phobia)에 관한 논의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몸에 대한 긍정 운동(Body positivity movement)은 모든 몸을 인정하고 긍정하자고 이야기한다. 몸의 크기(size), 모양, 피부, 성별정체성, 젠더표현, 장애여부 등과 상관없이, 획일적인 미적 기준에 저항하고 모든 사람의 몸을 존중해야 한다는 운동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몸 긍정 운동을 폄훼, 비하, 조롱하는 사람들은 '뚱뚱한 것도 아름답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라며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훼손한다'고 조롱하고 PC(Political Correctness)주의자들이 세상을 혼미하고 혼란스럽게 한다고 조롱한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도 테스 홀리데이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과 전 세계에서 그를 욕했다. 마치 테스 홀리데이가 기네스 펠트로에게 '당신은 아름답지 않고 나만 아름답다'고 말한 것처럼 이야기가 왜곡됐지만, 테스 홀리데이는 그런 말은 한 적이 없다. 테스 홀리데이는 기네스 펠트로에게 아름답지 않다고 하거나 마른 몸이 잘못됐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마른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골국물만 마시거나 야채만 먹는 것은 적절한 식사가 아니라는 것, 섭식장애를 유도하고 찬양하는 미디어의 악영향에 대해서 말했을 뿐이다.

몸 긍정 운동을 비하하는 사람들은 'PC주의자들과 몸 긍정 운동 덕분에 너같이 뚱뚱한 사람도 아름답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나도 아름답고 너도 아름답다”고 해야지, 왜 자기만 아름답다고 하고 마른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냐'며 조롱한다. 'Inclusion(포함)을 주장해서 모든 몸의 형태가 포함되게 해줬으면 너도 모두를 포함해야지 너는 왜 마른 사람들을 배제(exclusion)하기 위해 공격하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를 훼손하고 있으며 염치없는 짓이고 꼴 보기 싫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관종'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관심을 받아야 자신이 계속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하며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뚱뚱한 사람들이 마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말을 하는 시대가 됐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양성과 포함 운동(Diversity and Inclusion Movement)이 만들어낸 괴물이자 폭력이라고 하는 사람도 발견된다.

테스 홀리데이의 건강을 “걱정”해 주는 사람도 수없이 많이 등장했다. '아름다운 건 둘째 치고 너무 아플 것 같다', '저렇게 뚱뚱하면 아플 텐데 왜 자신의 건강을 챙기지 않고 저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건강하고 날씬하게 다이어트 하며 관리하면서 사는 사람을 비난하면서 자신의 욕심과 배를 불리며 살고 싶을까?' 이런 말들이 난무했다.

그러나 건강을 걱정하는 말하기로 몸을 규제하고 규정하는 것은 함정이다. 체격이 큰 사람, 뚱뚱한 사람은 전부 다 건강하지 않고 마른 사람, 날씬한 사람은 전부 다 건강할까? 내 가족 중에는 아주 마른 당뇨병 환자도 있고 날씬한 고혈압 환자도 있다. 그들은 매일 약을 하나씩 먹으며 관리를 해야만 하는 만성질환자들이다. 이 사회가 기준 삼는 아주 날씬하고 마른 체형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 사회는 '몸매는 자기 관리'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마른 몸에 대한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다. 무언가를 먹을 때, “먹으면 안 되는데”라는 죄책감을 느끼며 몸매만 생각하며 살게 된다면, 우리는 자신의 몸과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획일적인 미적 기준을 강요, 강제하는 외모지상주의 사회는 우리의 몸을 지배한다. 우리의 몸을 지배하면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삶도 지배할 수 있다.

획일적인 미적 기준이 누구에게 이로운가 생각해 보자. “여성스러운 몸”이라는 것은 함정이다. 누가 여성은 아담하고 마르고 가벼운 몸을 가져야 한다고 정해주는가? 여성에게 강조되는 몸은 누구를 위한 몸일까? 김연경 선수, 장미란 선수는 “여성스럽지 않은 몸”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회다. 누가 여성스러운 몸의 기준을 만들었는가. 누가 누구의 몸을 규정하고 있는가. 여성들에게 작고 마른 몸을 가지고 싶게 만드는 것은 가부장제 사회다. 여성이 마르고 작고 날씬해야 통제하기 쉽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로맨틱한 장면에서는 남성의 품에 폭 들어오고 쉽게 들어 올릴 수 있는 가벼운 몸이 이상적인 여성의 몸으로 표현되지만 이는 과정을 통해 여성의 몸은 통제하고 지배하기에 쉬운 몸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획일적인 미적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우리가 몸의 크기, 피부 등에 신경 쓰면 쓸수록 그것이 누구한테 이로울까? 평생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우리는 다이어트에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쓰게 된다. 단백질 보충제, 다이어트 식품, 헬스 PT(Personal Training, 개인훈련), 바디 프로필(body profile) 촬영 등에 돈과 시간을 쓴다. 지방 흡입 수술을 하기도 한다. 피부도 마찬가지다. 피부에 어떠한 흠도 점도 털도 있으면 안 된다고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레이저를 맞으러 피부과에 가야 한다. 값비싼 화장품을 사기도 한다. 나의 삶을 잘 살기 위한 나의 몸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전시되기 위한 몸을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 몸의 다양성(body diversity). 사진=gettyimagesbank

몸의 다양성(body diversity)이나 몸 긍정 운동(body positivity movement)은 누가 건강한지 아닌지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체격이 큰 사람, 뚱뚱한 사람 그리고 다양한 피부색과 장애 등을 가진 사람의 몸들이 배제되고 차별당하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장애와 질병을 가지고 있지 않은 마른(날씬한) 몸을 표준이자 기준으로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을 배제한다. 몸의 모양이나 크기 또는 기능에 따라 배제, 차별, 억압, 폭력을 경험하게 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비행기, 버스, 전철에서 좌석의 크기가 너무 작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전철이나 버스를 아예 타지 못하기도 한다. 취업 등의 임금노동과 관련된 일 그리고 친교나 네트워크 등의 사회 활동에서 불이익을 경험하거나 아예 배제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노력이나 자기관리와 같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제도와 문화)의 문제라는 것이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투자하는가? 강요된 투자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나의 삶은 어떨까 생각해 보라. “자기 관리”라는 이름으로, “건강”이라는 미명으로 우리를 옥죄던 획일적인 미적 기준에 도전하고 저항하자.

아침 인사가 외모칭찬이었다면,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외모 이야기밖에 할 말이 없다면, 이제는 변화해 보자. 서로가 서로를 획일적인 기준 맞춰서 살게 하는 것을 멈추고 주변 사람들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더 풍성한 관계를 누리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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