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반도체 경기 회복'만 바라 봐선 안 된다
1년 넘게 이어지는 무역적자
해답은 경제 체질 바꾸는 것뿐…
민간투자 활성화 · 구조개혁 절실
우리 경제의 1분기 성장률을 들여다보면 곳곳이 암초다. 수치상으론 0.3%로 지난해 4분기 역성장(-0.4%)에서 탈출했다. 시장 예상치를 웃돌며 마이너스를 벗어났지만, 경제 회복세를 예단하긴 이르다.
고꾸라진 성장의 구원투수는 민간 소비였다. 고물가·고금리 충격에 얼어붙었던 소비가 오락문화와 음식·숙박 등 서비스를 중심으로 기지개를 켰다.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면서 여행과 공연·관람 등 대면활동이 늘어난 덕분이다. 민간 소비의 성장 기여도는 0.3%포인트였다.
반면 설비투자는 반도체 제조용 장비 등 기계류를 중심으로 4% 감소하며 성장률을 갉아먹었다(-0.4%포인트). 순수출(수출-수입)도 성장률을 0.1%포인트 끌어내렸다. 무역적자가 1년 넘게 이어지면서 순수출의 성장기여도는 4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순수출이 네 분기째 성장률을 갉아먹기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2분기~1999년 1분기 이후 14년 만이다.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은 피했지만, 향후 경기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1분기에 버팀목이 돼준 민간 소비도 체감물가의 고공 행진과 고금리에 따른 가계부채 부담 증가로 마냥 기대할 수 없다.
수출과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반도체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경기 회복 시점도 가늠하기 어렵다. 특히 국내 반도체산업은 격화하는 미국-중국 간 패권다툼 와중에서 특단의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비상 상황이다.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가 지연되는 등 대외변수의 불확실성도 크다.
반도체 및 대중국 수출이 급격히 위축된 가운데 무역수지는 지난해 3월부터 14개월째 적자 행진이다. 올해 들어 4월 20일까지 누적 무역적자가 265억 달러로 벌써 지난해 연간 무역적자(478억 달러)의 절반을 넘어섰다. 무역적자는 달러 수급과 원화가치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머지않아 끝날 것이란 전망에 '킹 달러' 현상이 수그러드는데도 유독 원화가치는 약세를 면하지 못하며 1300원대 환율이 고착화하는 모습이다. 최근 한 달 사이 원화보다 가치가 더 떨어진 화폐는 필리핀 페소와 아르헨티나 페소, 1년 넘게 전쟁 중인 러시아 루블 정도다.
한국은행은 수출로 벌어들이는 달러의 감소를 원화가치 하락 요인의 40% 정도로 본다. 수출의 20%를 차지하던 반도체가 부진에 빠지면서 감춰져 있던 '반도체 천수답 경제'의 허약한 기초체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과거 경제위기 때 고환율은 우리나라 제품의 달러화 표시 가격을 낮춤으로써 수출을 증대시켜 경제 회생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공식이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농산물과 에너지 수입 부담을 키우고 있다. 중국산 희토류와 중동산 원유 등의 높은 가격에 고환율이 겹쳐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과 수익 구조를 악화시키고 있다.
기대를 걸었던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이 우리나라 기업들에 가하는 차별과 규제를 해소하거나 완화하지 못했다.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해협 평화 문제와 관련해 미국 편에 섬으로써 러시아·중국과의 불편한 관계를 심화시킬 소지를 남겼다.
'미국 마이크론이 중국에서 제재를 받을 경우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공급을 자제해야 한다'는 외신 보도에 해답을 내놓지도 않았다. 상황이 이러하니 러시아와 중국으로의 수출은 물론 양국에 대규모 투자를 해온 기업들로선 현지 공장과 법인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내외 기관들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잇달아 하향 조정했다. 한은도 5월 수정 경제전망에서 1.6%로 봤던 성장률 전망치를 낮출 예정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과 SK하이닉스가 1분기에 3조~4조원대 적자를 냈다. 앞으로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도 'V자' 반등은 낙관하기 어렵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에 유리하게 재편하려는 미국의 노림수에 한국 기업들은 투자·판매 등 기본적인 경영활동까지 미국 눈치를 봐야 할 처지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하반기 경기 회복을 기대하는 '상저하고'의 낙관적 전망을 접고 비상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국가채무가 급증한 판에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섣불리 재정을 동원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민간투자 활성화와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체질을 바꾸고 강화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 반도체 경기 회복만 바라보지 말고, 과감한 규제혁파를 통해 미래형 신산업이 태동하고 자리 잡게 해야 한다. 미국·중국·러시아 등이 우리 기업들에 불합리한 요구를 하지 못하도록 정교한 경제안보 외교를 펼치는 것도 긴요하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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