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슬기의 언더뷰] 첫사랑 속삭이던 우리말로 '조선족 이야기' 쓴다

장슬기 기자 2023. 4. 2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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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야버즈' 전춘화 작가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포털사이트에서 '조선족'을 검색하면 관련 단어로 '조선족 범죄', '조선족 추방' 등이 뜬다. 그러나 어떤 민족에 나쁜 사람만 있을 리 없다. 조선족 역시 마찬가지다. 누구나 한 번만 곱씹어보면 금방 알 만한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미디어를 보면 조선족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갖기 참 어렵다. 물론 미디어가 조선족의 범죄를 다루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조선족에 대해 범죄만 다루는 건 문제다.

▲ 포털에서 조선족을 검색하면 나오는 관련 검색어들

조선족인 전춘화 작가의 첫 소설집 《야버즈》는 조선족을 '이해할 수 없는 이방인'에서 '우리 한국 사람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의 위치로 옮겨놓는다. '야버즈'는 중국어 발음 그대로 따온 '오리(야) 목(버즈)'를 뜻하는데 차이나타운에 가면 먹을 수 있다.

자전소설 형식의 《야버즈》엔 5개의 단편이 있는데 주인공이 모두 조선족이다. 전 작가의 소설집은 조선족이 '거론되는 대상'이 아니라 '말하는 주체'이며, 한국과 중국의 거대한 역사에서 그동안 제대로 거론되지 않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작은 역사의 주연'이라는 선언이다. 전 작가는 1987년 중국 길림성 화룡시에서 태어나 연변대 조선어문학부를 졸업했다. 현지의 문예지에 소설과 수필을 발표했고 2011년 한국에 와서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 소설 '야버즈'를 쓴 전춘화 작가가 지난 4월 18일 서울시 강서구 한 카페에서 참여사회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박상환


지난 4월 18일 전 작가를 만났다. 이날의 인터뷰는 전 작가가 한국인인 나에게 자신을 이주민으로 인식하는지, 동포로 인식하는지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사실 그 문제를 크게 고민한 적은 없었다. 생각해 보니, 국적의 차이를 강조하면 이주민이고 민족의 동질성을 강조하면 동포였다. 대답의 내용보다 중요한 건 조선족에 대해 고민하게 한 그의 질문 자체였다. 질문을 그에게 되돌려줬다. 전 작가와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했다.

-조선족을 이주민으로 보는 것과 동포로 보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우리 부모 세대는 동포로 인식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부모 세대가 한국에서 마주했던 것은 동포 의식이 아니라 각박하기 그지없는 자본주의였고, 그 안에서 피고용자가 되어 환대보다는 쓴맛을 경험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젊은이들도 여전히 '한국인과 나는 같은 한민족'이라고 인지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그런데 이 '동포'라는 연결고리가 한국인과 조선족 모두에게 어떤 기대를 하게 합니다. 제가 한국 사람들에게 많이 들었던 질문이 '한국과 중국이 축구 경기하면 누구 편 할래?'였어요. 같은 편에 서길 바라는 거죠. 조선족을 동포로만 여기면 이런 기대치 때문에 정작 다양한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어요. 조선족도 한국인에게 동포로서 더 기대하기 때문에 때로 더 크게 실망하기도 하고요. 한국인이 조선족을 '동포인 동시에 이주민'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또 조선족도 한국인을 '동포이기 전에 선주민'으로 바라본다면 조금 더 조심스럽게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싶어요.”

-조선족과 한국 사회가 서로 적응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한국인과 조선족의 다른 점도 있겠지만 사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지 않나요?

“조선족들은 표현이 투박하지만, 한국인들은 말투가 사근사근 예쁜 편이죠. 인사성도 밝아서 저도 아이에게 항상 인사를 잘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조선족 부모 세대가 초창기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돈밖에 모른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볼 땐 한국인들도 돈을 좋아하거든요(웃음). 한국 서점에 가면 재테크 책이 정말 많잖아요. 다만 한국인들은 '가족을 위해서' 등 돈이 필요한 이유를 잘 설명하고 세련된 방법으로 재테크하면서 돈을 추구하죠. 조선족도 가족을 위해 한국에 왔기 때문에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하는 건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돈을 추구하는 방법이 한국인들에 비해 단순하고 투박한데다 그 이유를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야버즈》 중 세 번째 작품인) '블링블링 오 여사'에서 주인공이 돈을 따지는 이유를 제가 잘 설명해주고 싶었어요.”

-소설집을 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언론에 조선족이 등장하긴 하는데,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죠.

“오히려 20여 년 전 한국 미디어는 조선족을 좋은 이미지로 다뤘어요. 영화 〈댄서의 순정〉2005에서 배우 문근영은 조선족 아가씨로 나와요.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에 오죠. 당시 문근영 배우가 연변에 방문했는데 그야말로 잔치 분위기였어요. 드라마 〈열아홉 순정〉2006에도 배우 구혜선이 '국화'라는 이름의 조선족 아가씨로 나오는데, 한국에 와서 편견과 싸우며 캔디처럼 사는 이야기예요. 그때만 해도 예쁘고 핫한 배우들이 조선족 배역을 맡았어요. 그런데 최근 작품에 나온 조선족으로 기억에 남는 건 영화 <범죄도시>2017의 무자비한 범죄자 장첸이죠. 대부분의 조선족은 장첸처럼 살지 않아요. 조선족 범죄자들이 모국에 와서 저지른 일을 비호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한국 미디어가 다양한 조선족 캐릭터와 삶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 소설 야버즈/ 전춘화 지음/ 호밀밭 펴냄

《야버즈》에는 작가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소설을 쓴 이유를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하다못해 마라탕과 양꼬치도 한국에서 정착을 했는데 우린 이게 뭐니.”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오랜 기간 한국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이방인으로 취급받는 조선족의 처지가 한국인에겐 이름조차 낯선 음식 '야버즈'와 비슷해 보인다. 소설에 대한 그의 생각도 들어봤다.


-한겨레 인터뷰에서 “한국 소설의 개방성에 놀랐다”고 말했는데, 어떤 부분에 놀랐나요?

“'난쏘공(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보고 놀랐어요. 중학생 때 읽었는데 야한 장면이 그대로 나오더라고요. 야해서 충격적이었던 건 아니었고(웃음), 하층민의 진솔한 모습을 적나라하면서 힘 있게 간결한 문장으로 다뤄서 놀랐어요. 렌즈로 비유하자면, 한국 소설은 선명하고 깨끗하고 과감하게 담아낸다면 중국 작품은 앵글을 흐릿하게 써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것 같아요.”

-중국에 머물면서 중국어로 소설 쓰는 삶은 생각해 본 적 없나요?

“조선족들은 중국어·한국어를 다 배우는데 저처럼 연변지역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은 '우리말'이라고 하는 한국어를 더 많이 배워요. 제가 중국어로 생활언어는 가능한데 글을 쓰려면 한족보다 높은 수준을 구사해야 하죠.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그리고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표현할 때 가장 편한 언어로 하잖아요. 전 첫사랑을 고백할 때 우리말로 했어요. 우리말이 운명적인 내 언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쉽게도 조선족 문학은 잘 알려지지 않았죠. 이중문화2가 소설을 쓰는 데는 유리하고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람들도 이중문화를 가진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조선족의 경우 우리만의 문학을 꽃피우기엔 환경이 척박해요. 저 같은 1980년대생 작가가 별로 없어서 이번에 소설집을 내고 선배 작가님들의 응원도 많이 받았어요.”

-한국에서 작가가 되었지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도 문예창작과를 다녔는데, 학기마다 합평3 수업이 있었어요. 각자 쓴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평가하는 건데 저는 글만이 아니라 문법에 대해서도 지적받았어요. 그때 알았는데 제가 배운 우리말이 북한식이더라고요. 단어도 다르고. 예를 들어 우리는 '돌멩이를 던진다'라고 하지 않고 '뿌린다'라고 해요. 감을 익히려고 선배들을 쫓아다니면서 한국어 표현을 배웠죠,”

-《야버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조선족' 하면 한국인들이 떠올리는 이미지에서 많이 탈피했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인물을 만들 때 어떤 부분을 고민하나요?

“소설을 쓰면서 '우리 조선족을 좀 더 좋게 표현해야지' 이런 마음은 전혀 없었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 삶을 그렸어요. 우리 집, 우리 삼촌, 우리 엄마, 내 친구의 살아있는 모습이라서 사실 쉽게 쓰였어요. 그냥 이런 인물들도 있다는 다양성 자체가 너무 예쁜 것 같아요.”

-《야버즈》는 자전적 소설입니다. 다른 주제로 소설을 쓸 생각도 있나요?

“작가 대부분이 초창기에는 자기 정체성에서 글을 시작해요. 자신에게 가장 편한 이야기를 쓰는 거죠. 그런데 작가라는 직업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기 스펙트럼을 계속 넓힐 수 있다는 것이에요. 제가 당분간은 조선족 이야기를 하겠지만, '더는 할 말이 없다' 할 때까지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면, 그때는 아마도 인종·국가 상관없이 다양한 인생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작가님은 한국인과 결혼해 두 아이를 키우고 소설집도 냈지요. 이제는 한국에 정착했다고 생각하나요?

“'정착'이라기보다 '정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아마 우리 세대는 연변으로 돌아가긴 어려울 거예요. 부모님 세대는 연변에서 농사를 많이 지었어요. 아니면 국유기업에서 일하거나 닭·소 키우는 목축업, 그것도 아니면 양꼬치집 같은 자영업을 했죠. 하지만 이제 연변에서 농사는 주로 한족이 짓습니다. 또 중국은 바다를 낀 지역이 주로 발전하는데 연변은 내륙에 있고요. 게다가 중국의 소수민족은 대부분 모국이 없어 한족화되는데 조선족은 모국이 있어 자기 언어를 지켜왔고 북한과 붙어있어서 요주의 땅이기도 해요.

물론 조선족이 한국에서 살려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경쟁에 익숙한 한국인들에 비하면 연변에서 온 조선족들에겐 이런 생활이 버겁기도 해요. 훈련도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치열한 경쟁에 뛰어든 느낌이죠. 고향에 돌아갈 수는 없고 한국에서 치열하게 생존하기도 만만치 않고,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정체'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한국문화에 동화되어야 하는지 종종 고민이 들 것 같네요.

“요즘은 제가 바꿔야 할 것과 끝까지 지킬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어요. 한국에 살고 있으니 상생과 공존을 위해 한국문화를 이해하고 배려할 부분들은 분명히 있죠. 다만 가끔 한국인들이 다른 외국인들에겐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한국문화에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주면서도 조선족에겐 너무 빨리 동화되길 바라는 태도를 보일 때는 속상하기도 해요.”

▲ 소설 '야버즈'를 쓴 전춘화 작가가 지난 4월 18일 서울시 강서구 한 카페에서 참여사회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박상환

'선진국에서 왔다면 한국인들이 자신과의 차이를 더 이해해줬을 거'란 전 작가의 말이 뇌리에 남았다. 한국인들은 강자에 대해서는 경계를 흐릿하게 지워주고 약자에 대해서는 큰 차이가 없더라도 경계를 짓고 있었다. 그럼에도 전 작가는 조선족과 대비되는 한국을 현실 그대로 보려고 했다.

자신의 남편 등 한국인에 대해선 “특유의 부드러움이 있다”고 했고, 한국인들이 어떤 일을 하든 빠르게 전략을 세워 정보를 수집하는 모습을 “부지런하다”고 평가했다. 상대적으로 투박한 조선족의 말투나 행동에서 오는 오해를 밝혀야 한다고 했다.

전 작가는 지금의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야버즈를 먹으러 가자고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기다란 오리목을 칼로 쳐주면 연인이 나눠 받아 뼈째 입에 넣어야 한다. 표제작 '야버즈'에선 '오리의 다른 부위에도 살 많은데 굳이 목에 붙은 살을 힘겹게 발라먹어야 하냐'는 질문으로 시작한 대화가 '조선족은 진짜 칼 들고 다니냐'는 질문으로 이어지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한국인들은 닭발을 먹는다 '굳이 살도 거의 없는데 시뻘건 소스까지 묻혀 먹는다'고 하기에 닭발은 너무나 사랑받는 술안주 아닌가. 야버즈를 입에 넣고 이리저리 굴려 살을 발라내는 과정은 정착하지 못한 조선족의 심리적 공허함을 채우는 과정일지 모른다.

소설에서 전 작가는 “자본주의 본질이 무엇인 거 같아? 나는 하이에나처럼 물불 가리지 않고 뭐라도 더 얻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와 반대로 인간의 본질은 내 것이라고 믿는 것만 평생 지키는 것이라고 봐. 아이러니한 건 얻는 것과 지키는 것 둘 다 하기에 인간은 벅찬 존재라는 거야”라고 썼다.

자본주의 체제인 한국으로 이주해 살아남기에도 벅차지만, 전 작가는 그들이 평생 지킬 것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아마 조선족에겐 '우리도 동등한 인간으로 대접받을 권리가 있다'는 자각일 거고, 한국인에겐 '우리도 동등한 인간으로 대접해야 하지 않겠냐'는 요구이지 않을까.

※ 이 인터뷰는 장슬기 미디어오늘 기자가 참여연대 월간 매거진 '참여사회' 인터뷰어로 참여해 작성한 기사입니다. 참여사회 2023년 5월호(통권 305호)에 실렸습니다. 인터뷰 전문은 미디어오늘과 참여연대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인터뷰 인용 시 '참여사회' 표기를 부탁드립니다. ▷참여연대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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