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특산품은 자동차?!…네 바퀴에 담긴 獨 문화와 산업의 정수 [이건혁의 브레이크뉴스]

잉골슈타트·네카줄름=이건혁 기자 2023. 4. 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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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자동차 강국이라고 하면 어느 나라를 떠올리시나요.

기술과 자본을 모두 갖춘 테슬라의 나라 미국? 세계 1위 자동차 수출국이자 도요타를 보유한 일본? 전기차 분야에서 급성장 중인 중국? 아마 소비자들께서는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포르쉐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 브랜드를 보유한 독일을 첫손가락으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겁니다.

이번 편에서는 독일 현지에서 나흘 동안 직접 겪고 본, 독일의 자동차 산업과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인상적이었던 점과, 한국 자동차업계와 사회가 배웠으면 하는 점을 몇 가지 풀어보려고 합니다.

독일 잉골슈타트 아우디 본사 입구. 오른쪽 건물은 사무실, 왼쪽 건물은 생산 공장이다. 이곳에서는 연간 33만3000대의 아우디 자동차가 생산돼 전 세계로 판매된다. 잉골슈타트=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제가 방문했던 곳은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의 작은 도시, 잉골슈타트입니다. 독일 대표 도시 뮌헨에서 약 90㎞, 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이 도시에는 독일 차 3대장 중 하나인 아우디의 본사와 공장이 있습니다. 도시 인구는 약 13만 명, 아우디 잉골슈타트 공장 근로자가 약 4만 명이니, 그 가족과 협력사 직원 등을 합치면 사실상 도시 전체가 아우디 관계자라고 볼 수 있겠네요.

아우디는 생산 공장과 전시장, 출고장 등을 모두 갖춘 곳을 ‘포럼(Forum)’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독일에서는 잉골슈타트와 네카줄름 두 곳에 아우디 포럼을 운영하고 있네요. 아우디 잉골슈타트 포럼에서 인상적인 공간 중 하나는 ‘출고장’이었습니다. 아우디를 구입한 소비자가 자신의 차를 직접 받아 가는 장소입니다. 구매자의 약 30% 정도가 출고장에서 직접 자신의 차를 받아 가는 걸 선택한다고 합니다. 한국보다 비싼 탁송 비용, 그리고 자기 차의 첫 시동은 자신이 걸어야 한다는 인식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하죠.

기자가 방문했을 때도 여러 소비자가 자기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아 자신의 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인수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무뚝뚝하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 독일인들의 얼굴에서 ‘내 차를 받았다’는 진한 행복을 읽어낼 수 있어 무척 신선했습니다. 누군가는 ‘입양’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그만큼 독일인들에게 자동차는 가족과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의미일 겁니다.

공장 내 개별 촬영이 금지돼 있다. 하지만 아우디 잉골슈타트 공장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은 이와 다르지 않다. 엔진과 차체가 결합하는 공정(왼쪽)과 근로자들이 차체에 휠을 결합하는 모습(오른쪽) 모두 방문객들이 1, 2m 앞까지 접근할 수 있는 곳에서 이루어진다. 아우디 제공.

사람들이 독일 각 지에서 수백㎞를 마다하지 않고 잉골슈타트 출고장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생산 공장을 직접 볼 수 있어서입니다. 잉골슈타트는 연간 33만3000대를 생산하는 아우디 핵심 생산기지 중 하나입니다. 아우디 Q2, A2, A3, A4 등 대중적이고 인기가 많은 준중형 크기 차량을 만들어내죠. 기자뿐만 아니라, 아우디를 산 고객, 그냥 공장을 구경하고 싶은 사람 누구든 투어를 신청하고 공장을 볼 수 있습니다. 공장에 들어서면 엄청난 규모의 차체 제작용 기계부터 도색, 조립 등 자동차가 생산되는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근로자들이 귀찮아할 것이란 걱정도 했는데, 오히려 그들은 ‘봐라, 이렇게 완벽하게 만들어지는 차다’라는 표정으로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100년 넘는 회사의 역사와 옛 자동차까지 모두 전시해 둔 박물관까지 둘러보고 나면, 소비자들은 자신이 구입한 아우디 차량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에 취해 운전대를 잡게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우디뿐만 아니라 메르세데스벤츠, BMW, 폭스바겐 등도 비슷한 공간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죠. 많은 관광객이 찾는 뮌헨의 BMW 벨트(Welt, 독일어로 world라는 뜻입니다)는 유명하죠. 볼프스부르크에 있는 폭스바겐의 출고장 겸 테마파크 ‘아우토슈타트’, 역시 공장과 신차 출고장이 함께 있는 메르세데스벤츠 ‘쿤덴 센터’ 등도 사람들의 마음을 떨리게 하는 공간입니다.

독일 네카줄름의 아우디 포럼. 콘셉트카부터 네카줄름 공장에서 생산되는 주요 차종 등이 모두 전시돼 있다. 기념품 판매점도 있다. 네카줄름=이건혁 기자 gun@donga.com
독일 완성차 브랜드들은 왜 이런 공간을 운영하고 있을까요. 자동차 구매 경험의 만족도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랜 전통을 보유한 브랜드의 역사, 깨끗하고 완벽하며 철저한 관리가 이루어지는 공장을 보고 나면 ‘아 역시 이 브랜드 자동차를 사길 잘했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독일은 물론 전 세계 소비자를 ‘찐팬’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인 셈이죠.

물론 이러한 자동차 콘텐츠 공간들을 운영한다고 해서 그 회사 제품의 품질이 높아지는 건 아닙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2015년 폭스바겐의 ‘디젤 게이트’죠. 폭스바겐이 경유 연료를 사용하는 차들의 배기가스 소프트웨어를 조작해 주행 시험 시에만 저감장치가 작동해 환경 기준치를 맞추도록 한 겁니다. 실제 주행 시에는 저감장치가 작동하지 않아 기준치 이상의 유해 물질이 그대로 대기 중으로 배출됐죠. 이는 소비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준 사건이었습니다.

폭스바겐의 잘못이기도 했지만, 당시 경유차 개발에 앞서 있던 독일산 자동차 전반에 대한 절대적 신뢰에 금이 간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8년이나 지나면서, 소비자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졌죠. 그리고 다시 ‘고품질 고성능 독일차’의 이미지를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독일 폭스바겐그룹은 세계 시장에서 848만1000대를 팔며 판매량 2위에 위치했죠. (1위는 도요타, 3위는 현대차그룹입니다)

한국에서도 독일산 수입차의 인기는 절대적입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수입차 판매량(테슬라 제외)이 28만3435대로 사상 최대였던 2022년 독일 브랜드 점유율은 68.9%였습니다. 올해 1분기(1~3월)은 73.9%로 더 높아졌네요. 메르세데스벤츠와 BMW의 양강 체제 속에 아우디, 포르쉐, 폭스바겐 등도 꾸준히 팔리고 있습니다.

네카줄름에 있는 아우디의 스마트 공장 벨링어 호페에서 근로자들이 전기차 RS e트론 GT를 조립하고 있다. 아우디 제공.
소비자들이 여전히 독일산 자동차를 찾는 건, 자동차가 단순한 제품을 넘어 하나의 콘텐츠가 됐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년간 축적된 기술과 브랜드의 역사, 이를 보존하고 유지하려는 노력, 투명하게 공개된 생산 과정, 성실한 국민성, 그리고 자동차 등 교통 문화 전반을 대하는 독일인들의 태도 등 모든 게 반영된 제품이기 때문이겠죠.

한 자동차 관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동차는 국가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디젤 게이트와 같은 엄청난 사건이 있었음에도, 신뢰가 일정 수준 이상 유지되는 거죠.” 소비자들이 자동차 브랜드의 국적이 어디인지, 생산 공장이 어디인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국산 자동차, 한국 회사가 만든 자동차는 소비자들에게 어떤 가치를 지닐까요.

지난해 현대자동차그룹은 세계 3위 판매 실적을 올렸습니다. 세계적인 호평을 받은 아이오닉5, EV6 등 전기차를 포함한 친환경 자동차 판매량이 늘어났고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중심으로 한 판매 전략이 먹혀들었다는 분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난해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으로 인해 경쟁사들의 판매가 부진하면서 거둔 일시적인 성공이라는 시선도 있었죠. 일단 경영성과 면에서는 성공적입니다. 1분기 현대차와 기아의 합산 영업이익은 6조4667억 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으로 집계됐습니다.

독일 뮌헨 중심가에 있는 제네시스 전시 공간 ‘제네시스 스튜디오’. 내부에는 제네시스 GV60, GV70 전동화 모델, G80 전동화 모델 등이 전시돼 있다. 뮌헨=이건혁 기자 gun@donga.com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현대차·기아를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2%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그건 아직 현대차·기아의 ‘찐팬’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 테슬라 전기차를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들 때문에 ‘테슬람(테슬라와 이슬람의 합성어)’이라는 단어마저 생겼지만, 현대차·기아 구매자 중 그런 사람을 찾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한국 자동차 회사들도 열성 팬들을 양산해낼 수 있을까요. 마침 전기차 시대가 열리고 있고, 미래 모빌리티(이동수단)로의 혁신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한국 자동차도 국가를 대표하는 하나의 콘텐츠로 성장하길 희망해봅니다.

잉골슈타트·네카줄름=이건혁 기자 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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