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레이디 손에 든 에코백의 정체...진화하는 패션의 정치학 [추동훈의 흥부전]

추동훈 기자(chu.donghun@mk.co.kr) 2023. 4. 29.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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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빈 방문 출국하는 윤석열 대통령 내외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순방길에 오르면서 김건희 여사의 패션이 다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김 여사가 출국길에 입은 옷과 장신구, 그리고 손에 든 핸드백까지 일거수일투족이 뉴스화되기도 합니다. 이번엔 출고가 37만원 짜리 국산 패션 브랜드 ‘마르헨제이’의 헤이즐백을 든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해당 가방은 지난 달 방일 당시에도 들었던 가방입니다. 이처럼 정치인과 정치인 배우자의 패션, 그리고 브랜드는 언제나 화제몰이를 합니다. 가수나 영화배우 또는 스포츠 스타 등 셀럽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공항패션이 정치인과 그 가족까지 확장되는 것인데 옷 하나 가방 하나 함부로 들 수 없습니다. 이러한 패션의 정치학, 브랜드를 통해 살펴봅니다.
정치적 도구로 쓰인 패션
원래 정치에서 패션은 하나의 신호이자 상징으로 그 역할을 해왔습니다. 뻔한 정장일색인 남성 정치인의 경우 넥타이 색깔로 정치적 메시지를 담기도 합니다. 소속 당의 색채나 이념적 성향을 대표하는 붉은 색 계열이나 푸른 색 계열을 활용하는 것이 대표적이죠. 가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같이 청바지 패션을 활용해 권위를 깨트리는 도발도 패션을 통해 이뤄집니다. 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금까지 남성 정치인에서 찾기 힘들었던 안경, 스카프 등 다양한 소품을 활용한 패션을 선보이며 낡고 노회한 남성 정치인 패션에 신선함을 불러오기도 했죠.

여성 정치인의 경우 이러한 패션 활용도가 더 높습니다. 아무래도 머리스타일부터 다양한 형태의 의상, 또한 장신구 및 가방 등 패션 소품까지 다양한 장치가 정치적 도구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가릿 대처 전 영국 총리
이러한 패션 정치의 원조는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 마거릿 대처로 손꼽힙니다. 대처 총리는 블루 재킷과 주름 치마를 갖춰 입은 ‘파워슈트’를 주로 입으며 철의 여인이란 별명에 어울리는 패션 스타일을 완성했습니다. 특히 하늘색에서 시작했던 정치인 대처의 옷 색깔은 점점 짙어져 당수가 됐을 당시엔 로열블루, 즉 귀족적 분위기를 풍기는 진한 군청색으로 변화했습니다. 로열블루와 진주를 사랑한 대처 총리의 패션은 이후 여성 정치인 패션의 교본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패션이 항상 화제를 모았습니다. 항상 위로 올린 머리스타일과 상황에 맞춰 입고 나온 외투의 색상, 옷 스타일을 놓고 임기 내내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여성 정치인에게 패션은 일종의 칼이자 방패로서 활용됐고 강점이 되거나 약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과거 정치인의 패션이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담기기 위한 도구로 쓰였는지에 매몰됐다면 최근 정치에서의 패션은 정치인의 철학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상징으로도 많이 불립니다. 특히 이를 위해 기존엔 어떤 색상의 옷을 입었는가, 어떤 메타포가 담긴 장신구를 활용했는가 등에 주목했다면 최근엔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었는지 또는 해당 브랜드 기업의 기업 철학은 무엇인지를 분석하는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 <연합뉴스>
패션 브랜드, 정치인의 철학을 담다
윤석열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 시장 등 정치인들이 연달아 입어 화제를 모은 ‘폐페트병’으로 만든 업사이클링 옷이 대표적입니다. 윤 대통령은 작년 나토 정상회담 순방 일정 중 등산복 회사 로고만 찍힌 흰색 무지 티셔츠를 입고 산책에 나섰습니다. 오 시장 역시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한 패션쇼에 모델로 등장해 하늘색 티셔츠를 입고 런웨이에 올랐습니다. 업사이클링이란 버려지거나 사용하지 않은 소재나 재료를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리사이클링에서 한 걸음 더 나간 개념입니다.

두 정치인이 입은 옷은 폐페트병을 재활용한 원사를 이용해 제작한 친환경 재활용 소재 티셔츠였습니다. 최근 환경보호의 중요성이 더욱더 강조되는데다 기업을 평가하는 핵심요소 중 하나로 친환경 정책의 실천 여부가 주요하게 다뤄지는 가운데 정치인들 역시 이러한 메시지를 국민들에 전하기 위해 이러한 패션 정치에 나선 셈입니다.

또 영국 왕실의 캐서린 왕세자빈이 올해 영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참석해 착용한 귀걸이도 화제를 모았는데요. 바로 3만원대 SPA 브랜드 자라의 제품이었던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찰스 3세 국왕의 맏아들이자 왕위 계승서열 1위인 윌리엄 왕세자의 배우자인 케서린 왕세자빈은 기존에도 이러한 패션 브랜드를 잘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3년 전 한 행사에서 캐서린 왕세자빈은 알렉산더 맥퀸의 드레스를 업사이클링해서 착용해 이슈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캐서린 영국 왕세자빈<출처=CNN>
물론 정치적으로 그 유용성이 큰 패션과 브랜드가 타블로이드지의 먹잇감이나 주객이 전도되는 문제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정책 현안이아 정무적 결단이 더 주목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이러한 패션과 이미지 정치에 매몰되면서 무엇이 중요한지 혼란스러워진다는 것인데요. 특히 이런 이슈는 여성 정치인 또는 여성 배우자의 패션에서 특히 주목받는 경향성이 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에도 윤 대통령 보단 김 여사의 패션이 더 관심을 받는 뉴스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김 여사 역시 이러한 관심을 의식하고 있는만큼 해외 순방 때마다 국내 브랜드 가방을 착용해왔습니다. 지난해 6월 스페인 방문 시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판매한 에코백을 들었고 올해 1월 아랍에미리트 방문 때는 대구시 업사이클 패션 브랜드 ‘할리케이’의 가방을 들었습니다. 당시 할리케이의 매출은 착용 직후 두 달 만에 전년도 매출을 넘는 수익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SNS 활용...정치인의 패션도 진화
이러한 관심은 비단 국내의 문제는 아닙니다. 해외에서도 이러한 여성 정치인에 대한 과도한 관심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는데요. 지난 2020년 뉴욕의 여성복 브랜드 마담라플뢰르는 정치계에 종사하는 여성 패션 고민을 돕기 위한 서비스 ‘레디 투 런’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정치인들에게 무료로 옷을 대여해주고 이렇게 활용된 옷은 이용 후 비영리 단체에 기부되는 형태입니다. 항상 정치인들이 입는 패션과 브랜드가 과한 주목을 받는만큼 이런 브랜드 부담을 떨쳐버리고, 이렇게 활용된 옷을 재기부하는 선순환 형태의 아이디어를 낸 것입니다.
AOC <출처=GQ>
현재 미국 MZ세대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여성 정치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니셜을 따 AOC라고 불리는 그녀는 최연소 하원의원으로 당선되며 인스타그램 팔로워 400만명을 거느린 SNS 스타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유권자와 소통하는 그녀는 특히 본인의 강점인 SNS와 패션을 통해 이러한 강점을 보입니다.

성 소수자를 지지하는 무지개색 핀을 달거나 여성 참정권을 상징하는 올 화이트 패션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고 정치적 메시지를 담긴 프린트 티셔츠를 입고 행사에 등장하는 등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패션을 정치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과연 앞으로 정치인들의 패션과 브랜드는 어떤 형태로 진화하고 정치적으로 활용될까요. 더 이상 황색 언론의 가십거리가 아닌 정치적 행위로서의 패션 브랜드의 진화를 응원합니다.

‘흥’미로운 ‘부’-랜드 ‘전’(傳). 흥부전은 전 세계 유명 기업들과 브랜드의 흥망성쇠와 뒷야이기를 다뤄보는 코너입니다.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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