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가율 90%는 정말 안전한가요?

김남석 2023. 4. 2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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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 A씨가 거주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아파트 공동현관문에 전세사기 피해 대책을 호소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다음 달부터 전세사기 예방 대책 중 하나인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상품의 가입요건이 강화된다. 공시가격의 140% 기준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 90%를 넘지 않아야 보증상품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

기존 조건은 공시가격 150%, 전세가율 100%였다. 이전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으로 기준가격이 올라가면서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이 동일해도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다.

통상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주택은 시장에서 안전한 주택으로 여겨지고, 해당 주택을 기준으로 전세가격이 형성된다. 특히 아파트에 비해 명확한 실거래가격을 알기 어려운 빌라와 기존 거래가 없는 신축빌라의 경우 주변 시세에 의존하게 되고, 전세보증보험가입이 가능한 가격이 표준이 된다.

예를 들어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공인중개사무소에 갔을 때 중개사가 "이 집은 이 가격이면 보증보험도 가입할 수 있어요"라고 설득한다면, 임차인은 '안전한 집이구나'라고 인식하고 의심 없이 계약을 체결한다.

이때 모든 집에 근저당권 등이 없다면 해당 시세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시세가 같은 집이더라도 대출 여부에 따라 안심할 수 있는 전세가격이 달라진다. 한 주택의 시세가 3억원이고, 2억7000만원에 전세계약을 체결했다면 전세가율이 90%지만 같은 시세의 주택에 담보대출이 5000만원만 있어도 전세가율은 110%로 높아진다. 임차인들이 이런 각 주택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주변 시세만 믿고 전세계약을 체결하면 주택 시세가 떨어지지 않아도 역전세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게 된다.

물론 전세반환보증 상품을 제공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최대한 많은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가입 요건을 낮게 설정한 것이다. 하지만 너무 높은 전세가율 조건으로 인해 갭투자를 방치하고, 역전세 위험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전세계약의 갱신은 통상 2년마다 이뤄진다. 최근 2년간 집값 하락률이 10%를 넘긴 지역은 서울에서만 8개구에 달하고, 최근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화성과 김포시 등도 하락률이 10%를 넘어섰다.

HUG가 전세가율 조건을 확인하는 것은 처음 가입하는 시기와 갱신 시기 뿐이다. 결국 가입 후 집값이 지금처럼 빠르게 떨어진다면 역전세로 인한 보증금 반환 위험에 바로 노출된다. 반환보증 가입 주택이 인근 전세가격의 기준시세가 된 만큼 주변 모두가 어려움에 빠진다.

기존 2년간 집값이 10% 이상 떨어진 시기는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였다. 하지만 해당 시기에는 오히려 전세수요가 높아지면서 전세가격이 급등했고, 이로 인해 역전세를 감당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번 하락기에는 기존과 다르게 매매가격보다 오히려 전세가격이 빠르게 떨어졌다. 높은 금리 때문인지, 주택 공급이 이전보다 늘어서인지 해석은 분분하지만 결과적으로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면서 집주인들은 전세보증금을 오히려 돌려줘야 했다.

정부도 임대인도 임차인도 모두 처음 겪는 상황을 맞이하면서 깡통전세 우려는 빠르게 현실로 나타났다. 전세사기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본인이 계약한 기간이 지난 뒤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한 이상 임차인이 돈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결과는 같아졌다.

집을 한 채만 가진 집주인의 경우 하락분 만큼 빚을 내서라도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었지만, 집값 급등기 유행했던 갭투자로 집을 수십, 수백채로 늘렸던 집주인들은 연쇄적으로 보증금 반환 시기가 돌아오면서 결국 손을 들었다.

이들이 자본 없이 수백채의 집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높은 전세가율 덕분이다. 집값과 전세가격이 비슷하니 임차인에게 받은 전세금을 가지고 새로운 집을 사고, 그 집에 또 다른 세입자를 받으며 무책임하게 보유 주택을 늘렸다. 집값이 끝없이 올랐거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 채 전세가격만 떨어졌다면 집을 팔아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었겠지만, 이미 집값은 폭락했다. 결국 임대인은 무책임하게 파산을 선언했고 임차인만 피해자로 남았다.

이런 상황에 HUG가 내놓은 전세가율 90%는 무책임한 조건으로 보인다. 이미 집값이 2년간 10% 이상 폭락한 사례를 수 차례 겪었고, 역전세로 인한 손실을 가장 크게 입은 곳도 HUG다. 하지만 또다시 전세가율 90%에 달하는 주택에 보증보험을 내준다는 것은 시장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렵고, 세금을 내는 국민들도 납득이 어려운 수준이다.

부동산원이 발표한 최근 1년간 전국 연립·다세대 주택의 평균 전세가율은 81.8%다. 전세가격이 떨어지면서 최근 3개월간의 전세가율은 77.1%까지 떨어졌다. 수요자 우위 시장이 형성되고, 전세가율이 떨어진 지금이 정부가 '적정 전세가격'의 가이드라인을 내세울 수 있는 적기가 될 수 있다.

강제로 전세가격을 조정하는 것은 어렵지만, 정부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적정 가격을 제시하는 것은 가능하다. 보험 가입을 하지 않은 주택이 위험한 주택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는 이미 형성됐다. 이제 적정 전세가율만 낮추면 향후 똑같은 피해는 막을 수 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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