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중이온가속기 ‘라온’, 해외 과학 두뇌 귀환시킬 것”

대전=이병철 기자 2023. 4. 2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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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트리블 미 브룩헤이븐 연구소 부소장
해외 석학 13명 참여한 라온자문위 이끌어
“첫 중이온 가속기 만든 한국, 예상보다 빨라
두 가지 빔 라인, 새로운 과학 세계로 이끌 것”

중이온가속기는 우주에서 가장 가벼운 수소부터 철(Fe), 우라늄(U) 같은 무거운 중원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이온을 빔 형태로 가속해 새로운 희귀동위원소를 찾는 연구 장치다. 중원소를 이온으로 만들어 빔으로 쏴 표적에 부딪치면, 표적에 있는 원소와 중원소의 핵이 충돌하며 새로운 원소가 만들어진다. 그 중 일부는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희귀동위원소다.

지금까지 발견된 동위원소는 3000개 가량에 이르지만, 과학자들은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한 동위원소가 7000 이상 남아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희귀동위원소는 우주의 탄생 초기의 물질과 진화의 비밀을 밝힐 열쇠인 동시에 전자·재료·의료 분야에서 혁신을 가져올 재료로 주목받고 있다.

전 세계 연구 기관은 저마다 대형 중이온가속기를 건설해 희귀동위원소를 찾아 나서고 있다. 미국 미시간주립대는 지난해 에프립(FRIB)의 가동을 시작했고, 유럽 국가들은 공동으로 2025년까지 완공을 목표로 페어(FAIR)를 만들고 있다. 한국도 2011년 중이온가속기 ‘라온’ 프로젝트를 가동해 10년 만인 2021년 시설 완공에 성공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첫 빔 인출에도 성공했다. 라온의 운영을 맡은 기초과학연구원(IBS) 중이온가속기연구소는 내년 정상 가동을 목표로 현재 다음 빔 인출을 준비하고 있다.

라온은 지난해 빔 인출 이후 빔을 가속해 에너지 수준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이온가속기연구소는 현재 중이온 빔이 통과하며 가속하는 124개의 캐비티(빔 가속 장치)의 위상을 맞추는 작업이 한창이다. 캐비티는 중이온 빔을 가속하는 장치로, 빔이 캐비티의 정확한 위치에 들어오도록 하는 과정이다. 국내 전문 인력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연구소의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다. 신택수 중이온가속기연구소 실험장치부장은 “지난달 예정된 빔 인출이 주파수 조율 상의 어려움으로 5월로 미뤄졌다”며 “라온의 가동이 제때 이뤄질 수 있도록 다음달부터 연구소의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라온의 가동이 본격화되면 한국 연구자들의 손으로 새로운 원소를 찾아 ‘코리아늄’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를 위해서는 라온의 정상 가동뿐 아니라 다양한 실험 조건에서 능숙하게 운영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제 막 중이온가속기를 도입한 한국이 빠른 시일 내 목표를 이루려면 운영과 실험 경험이 많은 해외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 역할은 세계적인 석학 13명으로 구성된 라온 자문위원회가 맡는다.

한국 최초의 중이온가속기인 '라온'의 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로버트 트리블 미국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 부소장은 27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10여년 만에 가속기 구축을 앞둔 것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빠른 속도"라고 말했다. /IBS 중이온가속기연구소

라온의 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로버트 트리블 미국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 부소장은 지난 4월 27일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한국이 지금과 같은 일정으로 라온의 작동을 준비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놀라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20년 이상 걸리는 중이온가속기 구축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다.

트리블 부소장은 핵물리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으로,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 국립 초전도사이클로트론연구소(NSCL), 일본 리켄 빔팩토리(RIBF), 이탈리아 핵과학연구소의 자문위원을 지낼 정도로 가속기 연구에도 정통한 인물이다. 그를 포함해 13명의 석학이 앞으로 3년간 라온의 자문을 맡는다.

트리블 부소장은 “이미 전 세계 많은 중이온가속기가 있지만, 라온은 우리의 기대를 아득히 뛰어넘는 더 먼 세계로 인도할 것”이라며 “새로운 지식과 물질을 찾아낼 라온의 자문위원장을 맡아 흥미롭다”고 강조했다.

라온의 크라이오모듈. 중이온 빔은 크라이오 모듈의 캐비티를 통과하며 빠르게 가속한다. 가속된 빔은 표적에 부딪혀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희귀동위원소를 만든다. 현재 IBS 입자가속기연구소는 캐비티를 정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IBS 입자가속기연구소

-라온의 첫 인상은 어땠나.

“지난해 10월 라온이 빔 인출을 할 때 방문한 적이 있다. 아주 놀라웠던 점은 한국이 라온의 가동을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라온 정도 규모의 가속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20~30년이 걸린다. 그런 일을 한국은 10여년 만에 해냈다. 전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려운 속도다.”

-라온 자문위원회에서 첫 회의를 열었다. 어떤 점을 의논했나.

“오늘은 첫 회의였던 만큼 아주 구체적이거나 민감한 정보를 다루지는 않았다. 중이온가속기연구소가 미리 보내 준 질문에 대해 조언하는 자리였다. 앞으로 라온이 본격 가동을 시작하면 라온을 이용한 실험에 대해 제안서를 검토할 프로그램 자문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현재 라온의 준비 상태를 바탕으로 프로그램 자문위원회를 어떤 일정과 과정을 거쳐 구성해야 할지 의논했다. 전체 회의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는 2주 정도 후에 나올 예정이다.”

-앞으로 라온 자문위원회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

“매년 한 차례 정기적으로 회의를 갖는다. 이전 회의에서 자문했던 부분들이 어떻게 이행됐고, 그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는지, 새롭게 발생한 운영 상의 문제는 무엇인지를 꾸준히 고민할 예정이다. 그 외에 수시로 필요한 부분에 대한 협력도 이뤄질 예정이다.”

-라온은 한국의 첫 중이온가속기다. 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부담은 없었나.

“특별히 부담이 크지는 않았다. 위원회에 참가하는 다른 위원들도 전 세계의 훌륭한 연구기관에서 모인 만큼, 협력을 통해 라온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예정이다. 그간 여러 기관 중이온가속기의 자문위원회에 참가해왔다. 과거 경험이 라온의 운영에 크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라온을 통해 새로운 원소 ‘코리아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나.

“다른 가속기가 우리가 기존에 알던 지식과 가까운 영역을 다룬다면, 라온은 그보다 훨씬 먼 곳에 있는 지식을 발견할 수 있다. 일반적인 동위원소보다 중성자가 훨씬 많은 ‘중성자 과다핵’ 연구에서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중이온가속기는 같은 종류의 원소지만, 다양한 질량을 가진 동위원소를 만드는 장치다. 이미 기존 가속기를 이용해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희귀동위원소를 여럿 발견했지만, 라온은 특별히 더 많은 중성자를 갖는 동위원소를 찾는 데 특화됐다.”

-중성자 과다핵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주와 물질의 탄생,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해하려면 중성자 과다핵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초기 우주에는 없던 무거운 원소들이 핵융합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실제로 중성자별이 합쳐지면서 ‘급성 중성자 포획’이라고 부르는 현상으로 수많은 원소들이 만들어진다는 것도 관측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설명할 수도, 계산할 수도 없다. 라온에서 급성 중성자 포획을 재현하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핵물리학은 아주 전통적인 연구 분야다. 여전히 중요한 분야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20세기를 원자의 세기라고 부른다. 원자의 구조에 대해 이해하게 됐고, 양자역학을 통해 물질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나 스마트폰도 핵물리학 연구들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없을 거다. 21세기의 핵물리학은 우주의 기원과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여전히 중요하다.”

-최근 핵물리학계에서 주목하는 연구 분야는 무엇인가.

“라온처럼 거대한 입자가속기를 이용한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미국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에서 가속기를 이용해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하고 수㎲(마이크로초)가 지났을 때의 상태를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때는 쿼크와 글루온 같은 기본입자들이 플라즈마 형태로 수프처럼 엉겨 있는데, 물질의 상태가 결정되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다. 이런 연구들은 가속기를 이용해야만 할 수 있다.”

로버트 트리블 미국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 부소장은 27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라온을 기반으로 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통해 기초 연구가 산업 기술로 뻗어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IBS 중이온가속기연구소

-라온의 건설이 빠른 편이라고 평가했지만, 여러 문제로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다.

“한국에는 유능한 과학자들이 있었지만, 많은 인재들은 해외로 나가서 연구를 하고 있다. 특히 기초과학 분야에서 그런 경향성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 라온이 한국의 첫 중입자가속기인 만큼 전문 인력도 많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라온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면 한국 과학자들이 해외로 나가지 않고도 연구를 할 수 있다. 앞으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전문가가 늘어난다면 이런 문제도 곧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라온을 중심으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과학계와 산업계의 다양한 시설이 한 곳에 모은다는 것은 아주 좋은 전략이다. 일본과 중국도 비슷한 전략을 갖고 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어두운 광산을 밝혀주는 등불’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산업계의 연구자들이 어두운 광산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면, 라온과 협력하는 사람들은 나아갈 길을 정확히 찾을 수 있다. 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산업계에서 새로운 기술의 탄생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라온과 연계가 기대되는 산업 분야는 무엇인가.

“여러 분야가 있지만, 특히 의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이온가속기를 이용한 항암치료가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전자, 재료 산업을 비롯한 모든 산업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낼 것이다. 미국은 이미 핵물리학 분야에 대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단순히 우주의 비밀을 푼다는 과학적 목표만이 아니라 산업적 가치가 크다는 의미다. 미국의 기초과학 연구비는 매년 80억달러(약 10조원)이고, 핵물리학에는 8억달러를 투자해 전체의 11%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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