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 홍보 241억 원, 저출산은 39억 원 [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이미지기자 2023. 4. 29. 14: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생의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제30회 올해의 광고상 TV 광고 부문 대상을 수상한 2022년 첫 금연광고 ‘괜찮은 담배는 없습니다’ 편. 보건복지부 제공
TV나 유튜브를 보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접하는 공익광고가 있다. 다름 아닌 ‘금연 광고’다. TV뿐 아니다. 신문, 전광판, 라디오 등 미디어 곳곳에서 금연 홍보물을 만날 수 있다. 아이들은 기관에서도 금연과 관련한 콘텐츠와 홍보물을 자주 접한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금연의 필요성과 흡연의 위험성을 반복해서 학습한 덕인지 기자의 아이들만 해도 담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고하다. 길을 걷다가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보면 “엄마, 담배 냄새를 마시면 해로우니까 저 사람들 피해 가자”고 마치 상대방 들으라는 듯 크게 얘기해 엄마를 식겁하게 만들곤 한다.

그런데 출산과 육아 관련한 홍보물은 그만큼 자주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정부에 올 한 해 금연과 저출산 대응 사업의 홍보 예산이 각각 얼마였는지 정보를 요청해봤다. 돌아온 답은 다음과 같았다.

‘금연 241억 원, 저출산 39억 원.’

● “저출산 캠페인 효과 회의적”

<2023년 정부 주요 정책별 홍보 예산>

금연 홍보에 들어간 예산이 저출산 극복 홍보에 쓰인 예산보다 6배 이상 많았다. 물론 저출산 문제가 금연보다 6배 덜 중요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저출산 문제의 경우 인식 개선 캠페인이 효과가 있느냐는 회의론이 있다”고 전했다. 반면 금연의 경우 여러 연구를 통해 홍보물의 효과가 크다는 게 증명됐기 때문에 매년 홍보에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고 했다.

금연의 경우 홍보물의 효과가 크다는 데 이견이 없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기자의 아이들만 봐도 그것은 분명해 보인다. 어릴 때부터 ‘흡연이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해를 끼치는 나쁜 일’이라고 반복 학습해 온 덕에 아이들은 담배라 하면 치를 떨 정도로 알레르기에 가까운 거부 반응을 보이게 됐다. 흡연 인구 중에서도 ‘후두암 주세요’ 같은 섬뜩한 광고문구와 담뱃갑에 실린 혐오스러운 사진 등으로 인해 금연하게 됐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2015년 TV 에서 방영된 정부의 금연 공익광고. 동아일보DB
저출산 대응 홍보는 정부 관계자의 말과 같이 그 효과에 대해 이견이 있는 게 사실이다. 일부 광고들은 효과는커녕 오히려 부적절하거나 공감을 사지 못하는 내용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지난해에도 아동심리 전문가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가 출연한 한 저출산 공익광고가 논란이 됐다. 공원에서 공놀이를 하던 아이가 커피를 들고 있던 여성과 부딪혀 커피가 쏟아지고, 사람이 많은 식당에서 아이가 큰 소리로 우는 장면을 보여준 뒤 “아이니까 괜찮아”라고 이해하고 배려해주자, 그것이 ‘애’티켓이라는 내용이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동친화적인 사회 분위기 조성도 중요하다는 취지였지만, ‘배려를 강요’하는 공익광고 내용에 누리꾼들 사이에서 ‘잘못은 아이가 했는데 사고 친 아이를 무조건 이해하라니 아이 낳기 더 싫어지는 광고’라는 비난이 터져나왔다.

‘아이를 낳아야 한다’거나 ‘출산은 필수’라는 식의 메시지 자체를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일부 공익광고들은 그런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나타냈다가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둘째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카피를 내세웠던 또 다른 광고는 ‘외동 자녀 가정을 상대적으로 결여된 가정인양 만들었다’는 비판을 들었다.

집, 직장, 교육과 같이 당장 시급하게 지원해야 할 항목들이 많은 가운데 의식 개선을 위한 홍보에 돈을 지출하는 것 자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시선도 있다. 고작 캠페인을 통해 출산율을 제고할 수 있겠느냐면서 말이다.

지난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오은영 박사를 모델로 내놓은 ‘애티켓’ 캠페인 광고. 다양한 상황에서 아이와 부모를 배려해 달라는 취지였지만 오히려 일부 누리꾼들로부터 ‘배려를 강요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논란에 휩싸였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영상 캡처


● 한국 ‘육아포비아’…캠페인 정책도 필요

하지만 의식 개선의 중요성은 절대로 작지 않다. 전 세계 어느 선진국이나 불황, 집값과 물가 상승, 일자리 부족과 같은 변화를 겪고 있다. 하지만 여성이 평생 낳는 자녀의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이 1명도 채 되지 않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이렇게 압도적으로 낮은 출산율의 원인이 비단 경제적인 요인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한국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에 더해 출산, 육아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회피 분위기다. 일종의 ‘포비아(phobia·공포증)’랄까. 임신과 출산 시기를 고민하는 지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굳어진다. 기자에게 고민을 토로하는 이들 대부분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있어 사회·경제적 상황이 크게 어렵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주변에서 워낙에 힘들다고 하니 엄두가 안 난다”거나 “키우는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보니 나는 못 키울 것 같다”는 등 출산과 육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임신을 주저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TV, 영화, 책에서도 온통 ‘아이 키우기 힘들다’는 이야기뿐이다. ‘힘든 육아 탓에 출산율이 떨어졌다,’ ‘집도 없고 직장도 찾기 어려운 청년들, 아이 못 갖는다,’ ‘자녀 사교육비용이 또 올라 부담’ 등등. 반복된 금연 광고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담배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공포를 키웠듯이 반복된 ‘힘든 출산·육아’ 콘텐츠들도 육아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막연한 공포감을 더 키울 수밖에 없다.

미디어의 파급력은 생각 이상으로 크다. 지난해 많은 사람들이 시청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성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을 개선했을 뿐만 아니라 주인공이 드라마 속에서 언급한 ‘수족관 돌고래’에 대한 관심도 환기시켰다. 이런 관심을 타고 국내 수족관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남방큰돌고래 ‘비봉이’가 지난 10월 방류되기도 했다. 뉴스 보도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켜 정책과 제도를 일거에 바꾼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변호사가 된 자폐성 장애인 이야기로 지난해 큰 반향을 일으킨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NA 제공
저출산에 있어서 작위적인 광고가 문제였다면 광고 말고도 홍보의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다. 다른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 수도 있고 드라마, 영화 등에 출산, 육아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이 실리게끔 지원할 수도 있다. 현 세태를 반영한다며 늘 결혼하지 않는 청년, 아이 낳지 않는 부부만 보여줄 게 아니라 다자녀 가정이랄지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가정의 모습을 자주 노출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 ‘행복한 육아’도 보여줘야

아이 키우는 게 힘든 건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키우다 보면 행복한 순간이 훨씬 더 많다.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아이가 갖고 싶고 아이를 키울 여력도 있는 사람들은 막연한 두려움을 넘어 부모가 되는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자면 정부도 부모와 육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고민해봐야 한다.

지난 26일 통계청이 발표한 2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출생아 수가 또 줄어서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81년 2월 이후 처음으로 2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고 한다. 이런 뉴스만 계속된다면 더 많은 젊은이들이 ‘안 낳고 살아도 되나 보다’하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 정부의 저출산 광고 가운데 현재 지하철의 일반좌석이 곧 노약자석으로 바뀔 것이라는 내용의 광고가 있었다. 그만큼 출생아가 줄고 고령자가 늘어난다는 이야기였다. 지금과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그런 미래가 머지 않았다.

2005년 신문에 게재된 정부 공익광고. 출생아는 줄고 고령자는 늘면서 지하철 경로석과 일반좌석의 자리가 바뀐 모습을 그렸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제공

이미지기자 image@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