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빙글빙글 돕니다"…SNS 마약 거래, 뻔히 보고도 못 잡는다
[편집자주] SNS 등 기술의 발달로 마약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마약을 접하는 나이도 어려지고 있다.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이를 지원할 인력과 예산은 충분하지 않다. 마약청정국에서 마약위험국이 되어버린 한국 사회의 실태를 살펴본다.
마약 범죄가 광범위하게 퍼지는 가운데 마약 거래의 방식이 대면에서 추적이 어려운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적발이 어려워졌다. 경찰과 검찰·관세청 등 마약범죄 수사기관의 위장수사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지만 입법 논의는 더디다.
마약수사관들은 텔레그램을 쓰는 마약상이 늘면서 '대면거래'를 고집하는 마약상들은 '원가경쟁력'에서 밀리게 됐다고 분석한다. 텔레그램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특정한 프로그램이나 별도 권한이 있어야만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인 다크웹을 이용하면 이른바 '드라퍼'를 이용한 '던지기'로 유통단계를 축소할 수 있다.
일선 마약수사관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코로나19(COVID-19)이 유행하기 전에는 이른바 '오른손 왼손'으로 불리는 대면거래가 대부분이었다. 해외에 국제특급우편(EMS) 등으로 마약를 전달받았다. 국내 조직원은 중간 유통책을 모집해 마악류를 분배하고 중간 유통책은 소분한 마약류를 구매자들에게 판매할 하선 유통책을 모집하는 식이었다.
요즘은 드라퍼는 주로 '아르바이트생'으로 신분증과 주소 등 인적사항을 텔레그램으로 제공하고 판매자가 지시한 장소에 마약을 '배달'하는 역할을 한다. 판매자가 드라퍼에게 지시해 미리 약속한 장소에 마약을 감춰두면 구매자는 정해진 시간에 가서 마약을 찾아간다. 던지기 방식으로 판매자, 드라퍼, 구매자로 유통단계가 크게 줄어든 셈이다.
한 지방 경찰청의 마약수사관은 "현재 한국 마약거래의 중심은 텔레그램"이라며 "과거엔 지역별로 물건(마약)을 공급하는 큰손이 있어서 큰손을 검거하면 해당 지역의 마약 유통이 눈에 띄게 감소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했다.
텔레그램에선 수천명이 참여한 단체방에서 '마약 후기' 등을 올려 구매를 유도하는 채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해 4~8월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가 온라인에서 마약 불법 유통·판매를 적발한 사례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전체 1949건 중 72.8%(1419건)가 텔레그램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약거래의 주무대가 텔레그램과 다크웹으로 옮겨가면서 일선 경찰 마약수사팀에선 '기회제공형' 위장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명확한 근거 법률이 없는 까닭에 수사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위장수사는 수사관이 신분을 위장하거나 몰래 숨어들어 정보를 얻는 수사 방식을 말한다. 구매자인 척 속여 마약상에 접근한 뒤 증거물을 수집해 검거하는 식이다. 이때 판례에 따라 범의(범행을 저지를 의도)를 유발하는 방식의 수사는 허용되지 않는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실에서 범의유발형 함정수사와 기회제공형 위장수사는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며 "관련 법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수사관이 자칫 징계받을 수 있는 위장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청소년성보호법은 아동·청소년대상 디지털성범죄수사에서는 신분비공개수사와 신분위장수사의 허용 범위와 절차 등을 규정하는 것처럼 마약범죄와 관련해서도 법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경찰 마약수사관은 "현재 마약수사가 변수가 많은 마약수사 특성상 법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적법이 되고 위법이 되는 상황"이라며 "영화와 같은 신분위장형 언더커버 수사는 어렵더라도 기회제공형 수사를 규정과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독일의 경우 형사소송법에서 △마약△불법무기거래△통화위조△국가안보△조직범죄△아동음란물 제작·배포 등에서 신분위장 수사가 가능하도록 규정했다. 영국은 위장수사 개념과 절차 등을 수권한규제법에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우리 경찰 역시 윤희근 경찰청장 취임 후 일선에 배포한 '제23대 경찰청장 전략과제 및 주요 정책과제'에서 "청소년 디지털 성범죄에만 제한적으로 가능한 위장수사를 마약류 및 불법도박 수사에도 확대 적용하는 것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는 "해양경찰, 검찰, 관세청 등 관계기관과 마약범죄에 대한 위장수사 법제화를 위한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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