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두 얼굴] 챗GPT와 함께 소설 쓰기 과정은 이랬다
[인공지능의 두 얼굴 (06)-2] 챗GPT와 소설 쓰며 시행착오 기록
'마술 타자기' 아니었지만, 소재와 설정 정하는 데 도움
대화와 장면 묘사에 활용, 생각 못한 아이디어 제공하기도
[미디어오늘 금준경, 박서연 기자]
4월3일 출간된 단편소설집 <매니페스토>의 공동저자 중엔 사람이 아닌 저자가 있다. 책엔 작가 7명의 이름과 함께 'ChatGPT-3.5'가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 책은 챗GPT와 인간 작가가 공동 집필한 국내 첫 소설집이다.
책은 작가별 단편 소설이 나온 다음 챗GPT와 어떻게 협업했는지 과정을 '협업일지'와 '협업후기' 형식으로 담았다. 책을 기획한 자음과모음 출판사의 박진혜 편집자는 “챗GPT가 화제가 됐을 때 기대가 된다는 쪽과 걱정이 된다는 쪽으로 의견이 나뉘었다”며 “호랑이 굴에 직접 들어가는 심경으로 직접 소설을 써보면 어떨까 해서 시작하게 된 프로젝트다. 시도해보면 불안이 해소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처음 작가들은 주제를 던져주고 소설을 써달라고 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받지 못했다. 김달영 작가는 “소설이라기보다 오히려 시놉시스에 가까운 문장과 구성이었다”고 평가했다. “챗GPT는 주문만 하면 완성도 있는 글을 뚝딱 써내는 마술 타자기가 아니었다”(나플갱어 작가) “AI에 문외한인 나는 명령어를 입력하면 원하는 소설이 딱딱 만들어지는 줄 알았다“(오소영 작가) 등의 반응이 나왔다.
작가들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챗GPT의 쓰임새를 찾았다. 작가들마다 챗GPT와 협업하는 방식은 달랐다. 소설을 장면별로 쪼개 주문하거나, 소재부터 세계관 구성에 아이디어를 얻거나, 세부적인 대화나 등장인물 이름을 요청하는 등이었다. 아직까지 대체 가능하진 않지만 협업을 통해 다양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김달영 작가는 <텅 빈 도시>라는 제목의 소설을 썼다. 외계의 텅빈 도시를 둘러보다 미지의 소녀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처음 김달영 작가는 이야기의 골자를 언급한 다음 '소설로 써달라'고 주문했으나 챗GPT는 짧고 간결한 이야기만 제시해 활용할 수 없었다.
김달영 작가는 소설을 8단계로 나눠 '단계별'로 제시해 단계별 결과물을 취합하고 다듬어 소설을 썼다. 일례로 '사람이 살지 않는, 그러나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는 이상한 도시에 대한 묘사'를 주문하자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는 정적이고 정돈된 느낌을 준다. 거리는 평평하고 넓으며 건물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중략) 공원에는 여전히 식물들이 자라고 있고, 건물들 내부에는 아직도 기구와 다양한 소품들이 그대로 있다”로 이어지는 소설을 썼다. 김달영 작가는 이런 식으로 '사람은 없지만 낡지 않은 새것 같은 교회 건물 안에 들어가 내부를 둘러보는 묘사' '인기척 없는 거리에 갑자기 나타난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 등을 주문했다.
나플갱어 작가는 '기후위기'라는 소재를 정한 다음 챗GPT와 소통하며 구체적인 세계관을 함께 만들었다. 챗GPT에게 '지구 생존에 가장 위협적인 기후 위기는 무엇인지' '이런 현상이 방치될 경우 미래상은 어떤지' 물었다. 이 작가는 챗GPT의 답변 가운데 '해수면 상승'에 주목했다. 이어 '서해안에서 가장 심각한 위험에 처할 도시 한 곳'을 묻자 인천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소설의 무대가 인천으로 정해진 순간이다. 주변국 상황 묘사를 위해 피해가 심각할 것으로 예측되는 지역을 물었을 때 나온 답변도 소설 속 상황에 반영했다.
챗GPT와 협업 과정에서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나플갱어 작가는 “챗GPT가 내 명령 의도와는 정반대의 답변을 주는 데서 발상을 얻어 소설을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키기도 했다”고 밝혔다. “인간인 내게 바다에 잠긴 도시는 잃어버린 터전인데 챗GPT가 제시한 해저 도시 묘사는 경이로움, 아름다움 같은 긍정적 표현으로 가득했다”는 것이다. 나플갱어 작가는 “재해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이러한 시각도 나올 수 있을 거라 봤다”며 이 아이디어를 채택했다.
북한이탈주민인 오소영 작가는 챗GPT에게 '오빠와 탈북으로 인해 헤어진 북한 소녀가 남한에서 오빠에게 연락하는 내용'을 주문했다. 챗GPT는 “한여름 날씨가 더워진 날, 오빠와 함께 물고기를 잡았던 그때가 그리워졌다”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대화문을 구성했다.
윤여경 작가는 인공지능과 대화가 아닌 뇌로 소통하는 '뇌간소통'을 소재로 소설을 썼다. '뇌간소통으로 날씨와 날짜, 그리고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묘사하라'는 주문에 챗GPT는 “유진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인공지능 버디가 자신의 뇌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느꼈다. 버디의 메시지는 유진의 뇌로 직접 전달되었고 그것은 날씨와 날짜, 그리고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었다” “버디는 날씨를 묘사하면서 유진은 바람을 느끼고 햇빛의 따뜻함을 느낀다”고 썼다.
이 외에 등장인물의 콘셉트에 맞는 이름을 정하거나, 소설 속 외계인의 연설문을 작성하는 등의 업무도 챗GPT가 해냈다.
이처럼 작가들은 고군분투하며 챗GPT의 쓰임새를 찾았다. 윤여경 작가는 ”원고를 쓰면서 챗GPT가 가장 도움이 된 건 자세한 에피소드를 만들 때였다”며 “챗GPT는 상황을 던져주면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자세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박진혜 편집자는 “'보조작가'를 쓰는 것처럼 도움이 되는 면이 있었다. '아직까지는 원하는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등 여러 가지 시각이 존재하는데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면을 보게 됐다”며 “이번 기회에 사용법을 충분히 익히면 다음에는 훨씬 더 질 좋은 글을 만들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언젠가는 작가들이 생성형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는 작업이 일상화될 수도 있다. 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채강D는 이렇게 밝혔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는, 소설책의 서두에 챗GPT 사용 여부를 밝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마치 조미료를 넣지 않은 식품을 따로 표기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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