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층 강인해진 슛돌이를 잡아라” 빅클럽 영입전 본격화
피지컬 향상으로 물오른 기량에 EPL 이적설 쏟아져
(시사저널=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10대 이강인은 천재적인 재능을 다 발휘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2019년 만 18세에 참가한 FIFA(국제축구연맹)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준우승으로 이끌며 골든볼(MVP)을 수상했지만 그가 가진 세계적 수준의 테크닉은 같은 나이대 선수들을 상대했기에 월등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실제로 2021~22 시즌 전반기까지만 해도 이강인의 부침은 폭이 너무 컸다. 잘하는 경기와 못하는 경기의 편차가 컸고, 지도자가 확신을 갖고 꾸준히 선발 투입하는 것을 망설였다. 유소년 시절부터 10년간 몸담았던 발렌시아를 떠나 마요르카로 전격 이적하며 새로운 기회를 찾아나섰지만 같은 어려움을 겪었다.
변화는 지난해 상반기부터 일어났다. 시즌 중 강등권에 놓인 마요르카의 지휘봉을 잡은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은 잔류를 위해 이강인을 중심으로 한 실리 축구 전략을 짰다. 급하게 임대 영입한 194cm 장신 공격수 베다트 무리치 아래에 이강인을 세우는 둘의 콤비 플레이에 공격을 거의 맡기고, 단단한 수비로 철저하게 승점을 따내는 전략이었다. 아기레 감독은 이강인이 성인 무대에 와서 만난 어떤 감독보다 큰 신뢰를 보였고, 그만큼 성장을 위한 현실적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특히 피지컬 능력 향상을 강조했다. 기술적으로 완성이 끝난 만큼 상대 수비의 견제와 몸싸움을 극복하며 공 소유를 안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단단함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강인은 그 조언을 잘 흡수했다. 지난 1년 사이 신체적 변화가 눈에 띈다. 173cm, 66kg의 크지 않은 신체 조건에도 경합 과정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상체 중심의 근력 강화에 집중했다. 최근의 이강인은 가슴팍이 상당히 두터워졌다는 인상을 준다. 상대를 뚫고 나오는 힘이 더 붙으면서 강점인 드리블은 성공 확률이 더 높아졌다.
'승리의 설계자'라는 표현으로 이강인 극찬
4월24일 헤타페와의 홈 경기에서 나온 득점은 이강인의 진화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증거였다. 마요르카가 2대1로 앞서 있던 후반 추가 시간에 이강인은 혼자서 65m를 내달렸고 헤타페 수비수가 전력질주로 따라붙었지만 공을 달고 뛰는 이강인의 속도를 저지하지 못했다. 골키퍼를 앞에 두고 강력한 왼발 슛으로 득점에 성공했다. 득점을 하지 못했다면 비판이 나올 수도 있었다. 역습 상황에서 따라오는 동료에 대한 패스도 가능했다. 그러나 이강인은 자신감 넘쳤고, 득점에 대한 욕심을 냈다.
이 경기에서 이강인은 이미 후반 11분 득점을 올렸다. 이강인은 프로 데뷔 후 첫 멀티 득점에 성공했다. 프리메라리가에서 한국 선수가 최초로 기록한 1경기 2골이기도 했다. 의미가 깊을 수밖에 없었다. 2018년 1군 무대 데뷔 후 이강인은 풀타임, 풀시즌 소화가 익숙하지 않은 이미지였다. 그런 그가 종료 직전에도 엄청난 힘과 스피드로 역습을 스스로 마무리하면서 완성형 선수가 됐다는 걸 만천하에 알릴 수 있었다.
마요르카도 활짝 웃었다. 2월부터 6경기 연속 무승(3무3패)의 부진에 빠졌다가 셀타비고와 헤타페를 상대로 2연승에 성공하며 강등권과의 격차를 10점으로 벌렸다. 그 두 경기의 맨오브더매치(최우수선수)는 모두 이강인이었다. 프리메라리가 사무국은 첫 멀티골에 성공한 2001년생 미드필더를 '승리의 설계자'라는 표현으로 극찬했다.
공격 포인트 지표도 눈에 띄게 상승했다. 올 시즌 리그에서만 5골 4도움을 올려 공격 포인트 10개를 눈앞에 두고 있다. 팀 내에선 간판 스트라이커 무리치(12골 2도움) 다음으로 많은 공격 포인트를 올렸다. 성인 무대 데뷔 후 앞선 네 시즌 동안 이강인은 총 3골 6도움을 올리는 데 그쳤다. 이제 이강인을 평가할 때 잠재력과 경기 내용만이 기준이 되는 건 아니다. 팀의 승패에 직접 영향을 주는 골과 도움까지 착실히 쌓을 수 있는 검증된 선수로 자리를 잡았다는 의미다.
이제 이강인에서 파생되는 화제는 다음 시즌에도 마요르카에 남을지 여부다. 지난겨울 이적시장에서 이강인은 많은 루머에 휩싸였다. 마요르카에서의 꾸준한 활약과 카타르월드컵에서의 강한 임팩트를 주시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여러 클럽이 관심을 보였다. 1부 리그 잔류를 위해 이강인이 반드시 필요한 마요르카는 아기레 감독까지 나서 이적 가능성을 차단했지만 올여름에는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팀의 CEO인 알폰소 디아즈는 "현재 팀이 중요한 시기에 있다. 이강인에 대한 입장을 5월 중순 이후 밝히겠다"고 말했다. 마요르카는 전형적인 엘리베이터 팀이다. 1부 리그와 2부 리그를 오르내리는 팀이라는 뜻이다. 현재 리그 11위로 잔류를 하는 데 안정적인 위치에 있는데, 남은 리그 8경기에서 승점 10점가량이 목표다. 잔류를 조기에 확정하고 다음 시즌 준비에 돌입하면 이강인의 거취를 확정할 수 있다는 게 구단의 입장이다.
"5월에 이적 성사될 가능성 있다"…애스턴빌라가 가장 적극 구애
이강인의 에이전트인 하이베르 가리도는 이미 바쁘다. 4월 중순부터 영국을 방문한 그는 맨체스터 시티, 애스턴빌라 등 프리미어리그 구단 사무실 사진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했지만 이강인의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위한 사전 협의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가리도의 영국 방문 이후 이강인의 이적설도 쏟아졌다. 유럽 이적시장에서 가장 공신력이 높은 기자인 파브리지오 로마노는 "이강인이 올여름 마요르카를 떠날 것으로 예상된다. 프리미어리그의 클럽 다수가 주시하고 있다. 5월에 이적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강인과 마요르카는 2025년 여름까지 계약돼 있다. 하지만 바이아웃 조항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아웃은 선수를 데려가길 원하는 팀이 현 소속팀에 명시된 금액을 제시하면 접촉하고 협상할 수 있는 권리다. 이강인의 바이아웃 금액은 1800만 유로(약 260억원) 수준이다. 지난겨울에는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와 함께 프리메라리가의 3강으로 꼽히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1000만 유로의 이적료를 제안했지만 마요르카가 거절했다. 애스턴빌라가 1350만 유로까지 제시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겨울 이적시장이 끝나고 지난 3개월 동안 이강인의 퍼포먼스와 시장가치는 다시 한번 상승했다. 이제는 1800만 유로의 바이아웃을 제시하는 걸 망설일 이유가 없어졌다. 가장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있는 팀은 애스턴빌라로 알려졌다. 세비야, 비야레알에서 명성을 떨친 우나이 에메리 감독이 이끌고 있는 팀이다. 에메리 감독은 이전부터 이강인을 주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뉴캐슬 유나이티드 역시 겨울부터 관심을 나타냈다. 애스턴빌라는 이집트의 통신 재벌 나세프 사리위스가, 뉴캐슬은 무함마드 빈 살만이 이끄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가 투자를 시작하며 프리미어리그 판도를 바꾸고 있다. 애스턴빌라는 올 시즌 리그 5위, 뉴캐슬은 3위를 기록 중이다.
황희찬의 소속팀 울버햄튼, 다음 시즌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확정한 번리도 이강인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접근했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관심도 여전한다.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지만 스페인 출신의 명장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이끄는 맨체스터 시티 역시 한국 시장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과의 연계를 감안해 이강인의 재능을 탐내고 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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