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길이는 얼마일까? [이강웅의 수원화성이야기]

경기일보 2023. 4. 29.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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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의 꿈을 품은 ‘4천600보'

사람들은 성을 이야기할 때면 장소와 규모를 먼저 궁금해한다. 아마 성의 형태가 일반적으로 빙 둘러싼 모양이라 그런가 보다. 화성도 예외는 아니다. 안내 책자나 문화해설사가 제일 먼저 언급하는 것이 성의 규모이기도 하다. 화성의 길이는 과연 얼마일까? ‘과연’이란 말을 붙인 이유는 수많은 안내문이나 자료에 통일된 수치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본 중 기본인 화성 규모에 관해 탐구를 시작해 보자.

화성 길이에 대해 의궤에 수치로 보여주는 기록은 권수 도설에서 “둘레의 통계가 2만7천600척이므로 4천600보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네 군데 옹성의 둘레는 163보다. 용도의 둘레는 367보다”라는 기록이다. 화성 규모에 대한 매우 중요한 근거다. 원문에 길이에 대한 용어로 ‘주위’ 또는 ‘주’를 사용한 것을 보면 앞에 얘기한 ‘빙 둘러싼 모양’의 ‘둘레’와 개념이 일치한다. 정리하면 화성 길이는 성이 4천600보, 옹성 163보, 용도 367보다. 성 길이 4천600보는 시설물 간 거리인 원성 길이와 돌출된 시설물을 형성하는 곡성 길이를 합한 길이다. “화성 길이는 얼마일까”에 대한 답은 “4천600보”로 하면 된다.

옹성과 용도를 포함하지 않아도 문제가 안 될까? 용도는 성이 아니므로 화성 길이에 포함하면 안 되고 별도로 언급하는 것이 맞다. 옹성 길이도 성 길이와 별도로 취급해야 한다. 이유는 옹성은 문의 외성으로 원성도 곡성도 아니고 문의 길이는 곡성으로 이미 성 길이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성은 둥그런 모양을 한다. 뎡니의궤 화성전도

장안문을 예로 들어보자. 장안문은 곡성으로 길이가 26보이고 장안문의 외성인 북옹성은 길이가 55보다. 성의 길이 4천600보에 26보는 이미 포함된 수치이므로 북옹성 55보는 별도로 봐야 한다는 의미다. 의궤에도 장안문 길이와 북옹성 길이를 분리해 별도로 언급하고 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4천600보는 몇 ㎞입니까”란 질문에 대한 답이다. 요즘 일상으로 쓰이는 미터법으로 답해야 한다. 누구나 언뜻 답을 쉽게 내놓지 못한다. 의궤에 길이 단위가 ‘보’이기 때문이다. 매우 생소한 단위로 환산이 문제다. ㎞로 환산하려면 1보가 몇 척인지, 그리고 1척이 몇 m인지 알아야 한다. 환산 기준이 의궤 기록에 없다. 당시엔 미터법 자체가 없었으니 당연하다.

환산 기준으로 ‘화성에 한해’ 1영조척을 310㎜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합당한 근거도 있다. 이 값은 화성을 대규모로 복원할 1970년대 당시 유효한 유구를 기준으로 만든 값으로 전문가와 정부가 정한 값이다. 즉, ‘수원성 복원정화사업 복원용척’이다. 최소한 정부가 인정한 수치다. ‘화성에만’이란 조건을 단 것은 다른 유적의 경우 복원용척이 다를 수 있기에 한 말이다. ‘유효한 유구’란 전쟁, 파괴 등 유적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일을 겪었어도 당초에서 변하지 않은 유구를 말한다.

이를 기준으로 환산해 보자. 우선 보 단위를 척 단위로 바꿔 보자. 보에 대해 의궤에 ‘주척으로 따져서 6척이 1보가 되고 영조척으로 따져서는 3척8촌이 된다’고 기록돼 있다. 따라서 4천600보는 주척으로 2만7천600척이고 영조척으로 1만7천480척이 된다.

주척은 중국 주례에 규정된 단위다. 영조척은 성역 당시 조선에서 사용하던 척도로 건물 짓기, 성 쌓기, 수레나 선박 제조에 사용해 영조(營造)를 붙인 것이다. 간혹 정조의 할아버지 영조가 만든 척도라 말하는 분도 계신다. 재미있는 분이다. 주척의 환산치는 없으므로 영조척을 활용한다. 1영조척의 복원용척인 310㎜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화성 전체 길이는 5천419m, 즉 5.4㎞다.

팔달산 능선 남쪽 용도는 3면이 여장인 매복을 위한 길로 화성 길이에 포함하지 않는다

필자는 환산값을 확인차 장안문 홍예의 선단석 간 거리를 실측했다. 레이저 거리측정기로 1㎜ 단위까지 네 곳을 측정했다. 하지만 측정 수치가 일치하지 않았다. 이유는 돌의 재료 특성상 표면에 1㎜ 정도의 구멍이 무수히 많았기 때문이다. 개인이 아무리 측정을 잘해도 의미가 없다. 하나는 공식적 인증을 받을 수 없는 점 때문이다. 또 하나는 수많은 곳을 실측해 평균을 냈다 해도 평균이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다.

결론으로 첫째, ‘화성 길이’ 범위는 성, 옹성, 용도 중에서 성 길이, 즉 원성 길이와 곡성 길이의 합계로 4천600보다. 둘째, ‘환산값’은 화성의 경우 1영조척이 310㎜이며 이 값은 ‘수원성 복원정화사업 복원용척’으로 쓰인 것이다. 따라서 화성에서 성의 길이는 4천600보이고 미터법으로는 5.4㎞다.

환산 기준보다 길이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있다. 측정 기준이다. 성 안에서 잰 것일까, 성 밖에서 잰 것일까, 여장 중심선일까, 같은 위치라도 바닥에서 잰 것일까, 가슴높이일까, 눈높이일까. 측정 위치에 따른 길이 차이는 엄청나다. 이에 대한 답은 차후 관련 주제 기사에 언급될 것이다.

공장 제품도 아니고 산과 평지를 누비는 대규모 공사에서 모든 수치가 서로 맞아떨어지는 화성 성역에서 정조의 정확한 관리를 엿보았다. 성역의궤의 정확성도 봤다. 화성 길이조차 정확히 정의하지 못하는 지금의 우리가 부끄러울 뿐이다. 이강웅 고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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