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거래기관에 '정부' 추가···환율 불안에 '추가 안전판'
무역적자에 펀더멘털 갈수록 취약
정부 "외환위기 없다" 강조 불구
최근 환율급등에 선제 대응나서
국민연금공단이 거래 금융기관에 ‘정부’를 추가했다. 국민연금이 한국은행뿐 아니라 중앙정부와도 직접적으로 외환스와프 거래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 급등 등으로 변동성이 커지자 정부가 국민연금과 직접 외환스와프를 체결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보유·운용하는 외국환평형기금을 활용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29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전날(28일) 서울남부지역본부에서 임시 이사회를 열고 ‘국민연금기금 운용 규정 일부개정규정안’을 심의했다. 국민연금기금 운용 규정상 거래 금융기관에 정부와 한은을 추가하는 것이 개정안의 핵심이다. 국민연금은 기금 운용 규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기획재정부 등 외환 당국과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연금은 보건복지부의 승인을 거쳐 개정안을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향후 외환스와프 체결 가능성을 고려해 (정부와 한은을) 추가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이 정부를 거래 금융기관으로 명시한 것은 처음이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환율 관리를 위해 외평기금이라는 추가 안전판을 마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국민연금은 최근 한은과 350억 달러 규모의 외환스와프를 체결한 바 있다. 한편 국민연금은 올 2월 기금 운용 수익률이 5%를 기록했다고 28일 공시했다. 1월(2.74%)과 비교하면 2.26%포인트 올랐다.
국민연금이 거래금융기관에 정부를 추가한 것은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게 시장의 평가다. 기획재정부 등 정책 당국으로서는 14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 등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에 따른 원·달러 환율 급등 조짐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최근 정부가 한국가스공사에 외환스와프 체결을 제안한 데 이어 국민연금과도 외환스와프 체결이 가능하도록 길을 튼 것 자체가 정부의 조바심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실제 이달 중순 국민연금이 한국은행과 350억 달러 규모의 외환스와프를 체결했음에도 원·달러 환율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28일 환율도 달러당 장중 1341.50원까지 올라 전날 기록한 연중 최고가(1342.90원)에 근접했다. 정부로서는 외국환평형기금을 동원해서라도 외환시장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외평기금은 정부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보유·운영하는 자금으로 기획재정부가 관리한다. 사실 정부는 2005년 외평기금을 활용해 국민연금과 외환스와프 거래를 실시한 선례가 있다. 이때는 국민연금 운영 규정이 제정(2007년)되기 전이라 이번에 임시 이사회를 열어 관련 규정을 정비했다는 게 정부 안팎의 설명이다. 정부로서는 이번 조치로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 추가 체결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앞서 정부는 외평기금 조달원인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 한도를 지난해 10억 달러에서 올해 30억 달러로 3배 늘렸다. 정부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달러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는 기관”이라며 “필요한 경우 국민연금과 외환스와프를 확대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외환 당국과 국민연금이 외환스와프를 상시화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은 국내에서 달러 수요가 가장 많은 기관”이라며 “외환스와프는 환율을 안정시키는 실질적 효과가 있다”고 했다. 석 교수는 “환율 변동성에 따라 정부와 국민연금의 외환스와프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번 개정은) 외환스와프 상시화를 위한 포석으로 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연금 해외투자액이 증가세라는 점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싣는다. 국민연금 해외주식 투자액은 2018년 113조 원에서 지난해 240조 9000억 원으로 최근 5년 새 2배 이상 뛰었다. 같은 기간 해외채권 투자액도 26조 6000억 원에서 63조 3000억 원으로 2.5배가량 증가했다. 국민연금은 현재 40%대인 해외투자 비중을 꾸준히 확대할 계획이다. 달러 수요도 당분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우리 경제 체질이 외환위기 당시와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외환보유액이 4260억 7000만 달러(3월 기준)에 이르고 해외 보유 자산도 많은 순채권국이라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출 부진에 올 들어 경상수지마저 2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면서 외국인 자금 동향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우리의 외환보유액이 3년 연속 국제통화기금(IMF) 권고 수준을 밑도는 점도 정부 입장에서는 눈엣가시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외환스와프를 통해 외환시장의 충격을 줄일 수 있겠지만 경상수지와 자본시장 불안정에 따른 여파를 막기에는 부족하다”며 “산업 개혁을 통해 수출로 달러를 벌어들이는 구조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 1분기 국세가 전년 동기 대비 24조 원 덜 걷혔다. 역대 최대 감소 폭이다. 지난해 4분기부터 경기가 빠르게 둔화된 탓에 법인세가 7조 원 가까이 줄었고 부동산·증시 침체와 고금리로 인한 소비 여력 감소 등으로 소득세 및 부가가치세도 13조 원 가까이 빠졌다. 올 들어 기업의 실적 악화가 심각해지고 있어 법인세 결손이 확실해지는 등 내년 나라 살림에 대한 경고음이 벌써 커지고 있다.
2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 1분기 국세 수입은 87조 1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보다 24조 원(21.6%) 급감한 것이다. 지난해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세정 지원에 따른 기저 효과를 제외한 실질적인 세수 감소 폭도 14조 3000억 원에 달했다.
소득세와 법인세·부가가치세 등 주요 3대 세목 모두 타격을 입은 탓에 세수 진도율도 지지부진하다. 3월 세수 진도율(세수 목표 대비 진도율)은 21.7%로 기재부가 수치를 파악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가장 낮았다. 자산 시장 타격 여파로 소득세는 7조 1000억 원 줄었고 부가가치세는 5조 6000억 원 쪼그라들었다.
주목할 대목은 법인세다. 올 3월까지 걷힌 법인세는 24조 3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6조 8000억 원(21.9%) 줄었다. 보통 기업은 법인세를 매년 8월과 이듬해 3월에 나눠 납부한다. 즉 지난달 납부된 법인세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 기업 실적과 직결되는 셈이다. 지난해 4분기부터 본격화한 경기 둔화와 수출 부진에 기업의 영업 이익이 크게 줄어들며 법인세 납부 세액도 감소했다. 전체 국세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20.5%(2021년 기준)에 달하는 만큼 법인세 수입이 부진하면 전체 실적도 덩달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올해 법인세수 결손은 확실해졌다. 지난해 기재부는 올해 세수 규모를 400조 5000억 원으로 추산했다. 이 가운데 법인세는 105조 원으로 예상했다. 이를 달성하려면 남은 9개월간 80조 7000억 원이 더 들어와야 하는데 상황이 만만찮다. 정정훈 기재부 조세총괄정책관은 “예산 편성 당시보다 경기가 더 빨리 둔화하기 시작했고 반도체 중심으로 수출 성장세가 크게 꺾여 법인세를 105조 원까지 걷기는 힘들다”며 “법인세의 경우 (세수 결손이) 확실할 듯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세수 재추계도 공식화했다. 정 정책관은 “지금 (세수) 상황이 상당히 녹록지 않으니 당연히 재추계를 할 계획”이라며 “조기 경보 요건에도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2월 기재부는 세수 상황을 알려주는 조기 경보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재추계는 내부 검토용이며 그 결과를 공개할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더 큰 문제는 내년 나라 살림이다. 내년 3월 법인세에 영향을 주는 올 경기 전망이 점점 나빠지는 탓이다. 돌파구를 찾기 힘든 수출 부진과 꿈틀거리는 국제유가 등 대내외적으로 경제 악재가 이어지는 탓에 하반기 경제 반등 폭이 예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올해 경기가 ‘상저하고’가 아닌 ‘상저하중’의 흐름을 띨 것이라는 목소리가 있다”며 “수출과 투자를 통해 경기 활력을 살리기 위한 방안을 고심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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