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법안]“배승아 참변 막아야”…음주운전자 신상 공개할 법안은?
“승아·도현이까지 아이들 죽어가…생명 보호법부터 패스트트랙 해야”
(시사저널=변문우 기자)
지난 8일, 초등학생 배승아(9)양이 대전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음주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전직 공무원 A씨는 대낮에 만취 상태로 운전해 배양을 비롯한 초등학생 4명을 들이받았다. 배양의 유족들은 지금도 슬픔에 잠겨있다. 배양의 친오빠인 송승준씨는 16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하나뿐인 동생 승아가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참변을 당했다. 가족의 슬픔은 형언하기 힘들 정도"라며 눈물을 삼켰다.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는 사람들. 법을 잊고, 양심을 저버린 이들 탓에 매년 끔찍한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음주운전자를 가중처벌하는 '윤창호법'이 시행됐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윤창호법 시행 직후인 2019년 1만5708건에서 2020년도는 1만7247건으로 증가했다. 2021년은 1만4894건으로 다시 감소했으나 일각에선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로 통행량 자체가 줄어 사고가 일시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보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음주운전의 재범률이 높다는 점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음주운전 재범률은 2021년 기준 44.6%다. 이 중 7회 이상 상습음주운전 적발 건수는 2018년 866명에서 2021년 977명으로 약 13%포인트 증가했다.
이들을 단죄할 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내면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다. 다만 실제로는 징역 8년을 넘은 경우가 거의 없다. 살인의 고의성이 인정되지 않고, 이들의 뒤늦은 반성이 참작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또 현행법은 강력 범죄 및 성범죄에만 신상 정보를 공개하고 있어 우리 주변에 음주 치사자가 있는 지 알 방법도 없다. 결국 이 같은 '솜방망이 처벌'이 운전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음주운전 사망 피의자와 재범자 신상 공개해야"
이에 국회에서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6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발의안은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자'와 '10년 내 음주운전을 2회 이상 위반한 자'의 이름·얼굴·나이 등을 공개하는 내용이 골자다. 음주 치사도 살인에 준하는 중대범죄로 다뤄 음주 운전자에게 경종을 울리겠다는 취지다.
하 의원은 법안 발의에 앞서 지난 13일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윤창호법의 대표발의자로서 배승아 양 사고를 보면서 참담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며 "음주 운전자 신상 공개로 음주운전 피해가 완전히 근절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당의 윤창현 의원도 하 의원의 주장에 힘을 싣고 비슷한 내용의 추가 개정안을 이달 내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가해자 신상을 공개해 사회적 책임을 묻고, 음주운전은 그 자체로 살인 행위이자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법원도 음주운전자 처벌 강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는 지난 24일 전체회의를 열고 교통범죄 양형기준에 대해 심의 의결했다. 새 기준에 따르면 스쿨존에서 어린이를 숨지게 하는 교통사고를 낼 경우 최대 징역 8년이, 스쿨존에서 어린이를 다치게 했을 때는 최대 징역 5년이 각각 선고된다.
또 음주운전 교통사고에 대한 양형기준도 신설돼 혈중알코올농도가 0.2% 이상인 상태에서 운전을 하거나 음주 측정을 거부하면 최대 징역 4년에 처해질 수 있다. 범행이 결합돼 술에 취한 운전자가 스쿨존에서 어린이를 치고 시신을 유기한 뒤 달아난 경우에는 최대 징역 26년의 중형이 선고될 수 있다.
전문가들 "잠금장치 도입으로 음주운전 행위부터 막아야"
고(故) 배승아양의 유족들도 이러한 움직임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배양의 친오빠인 송승준씨는 기자회견에서 "승아의 죽음에 관여된 모든 사람이 철저하게 수사받고 처벌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음주운전 피해가 늘고 있는데 이를 막을 법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며 "여러분이 힘을 모아 단 한 건의 음주운전 사고도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 개선에 힘써 달라"고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 강화도 좋지만 음주운전 행위 자체를 막을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 일환으로 잠금장치 도입이 거론되고 있다. 음주운전이 애초에 발생하지 않도록 술을 마셨을 때 자동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게끔 하는 장치를 의무 설치하잔 얘기다. 헌법재판소도 관련 안을 검토할 것을 제시했다. 그러나 예산 문제 등으로 현실화 가능성을 예단키 어렵다.
하종선 변호사는 "잠금장치는 이미 개발이 돼있고 일부 차종에는 장착이 돼있다"며 "사후에 조치를 취하는 것도 좋지만 음주운전 행위 자체를 방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토교통부에서 이것(잠금장치 설치)을 안전 기준에 얼른 포함시켜서 (법을) 개정시키기만 하면 되는데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 변호사는 이번 배양 사건과 더불어 강릉 급발진 사고로 사망한 김도현군 사례도 같이 거론하며 "어린아이들이 안전문제로 계속 죽어가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도현이법(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을 비롯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법안부터 먼저 패스트트랙을 태우는 등 정부와 국회가 더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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