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 알박기로 10억원씩 떼 가”···다단계 임금착취 판치는 하청의 현장

남보라 2023. 4. 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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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 
<51>간접고용 노동자 릴레이 인터뷰②
포스코 2차 하청업체 직원 박정근씨
지난해 11월 한 노동자가 포스코 포항제철소 3고로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포스코 제공

“원청의 1차 협력사가 우리한테 장비 몇 개 임대해준다는 이유로 매출의 15%를 떼어갑니다.”(포스코 2차 하청사 소속 박정근씨)

하청의 재하청, 그리고 재재하청. 그사이에 각종 명목으로 발생하는 수수료는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을 턱없이 낮추는 주범이다. 재하청 회사의 노동자는 원래 원청이 내려주는 자기 몫의 노무비가 얼마인지도 모른 채, ‘중간착취의 지옥’에서 허우적거리며 일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중간착취 방지법’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원청이 정한 노무비를 전용계좌로 지급해 임금으로만 쓰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2, 3차 하청으로 이어지는 각종 수수료 명목의 중간착취가 제어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중간착취에 진심인 1차 협력 업체

박정근(가명·40대)씨는 20년 가까이 포스코의 한 제철소에서 일했다. 그는 포스코와 계약한 1차 협력사가 다시 일감 일부를 맡긴 2차 협력업체 소속. 작은 용광로라 할 수 있는 ‘로’를 정비하는 회사다.

그가 속한 회사의 연간 매출은 약 70억 원 규모인데, 포스코와 이 회사 사이에서 일감을 ‘전달’해주는 1차 협력사가 약 15%를 ‘임대 수수료’ 명목으로 떼어간다고 한다. 1년이면 대략 10억 원. 박씨 회사처럼 이 1차 협력사 밑에 있는 회사는 19개나 된다. 이 회사들의 매출 규모가 비슷하다고 가정한다면 19개 회사에서 떼는 수수료만 연간 1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15%를 떼어가기 위해서 장비 몇 개를 현장에 알박기해놨어요. 그 장비를 임대 형식으로 빌려주고 그 명목으로 계속 떼어가는 거죠. 1차 협력사가 떼어가는 돈이면 우리가 그 장비를 살 수도 있어요.”

게다가 이 장비는 전체 장비의 극히 일부다. “작업할 때 쓰는 크레인 등 설비 대부분은 포스코 소유예요. 작업 현장도, 우리가 쓰는 사무실도 모두 포스코 소유입니다.” 박씨가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포스코 포항제철소 2열연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작업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포스코 제공

떼이고 남은 돈으로 회사를 운영하다보니 노동자들은 점점 더 위험한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1차 협력사에서 계약단가는 안 올려주면서 중간착취를 계속하니까 회사는 기존 작업장에서 하는 일만으로는 운영이 어려워져서 자꾸 ‘외부작업’을 시켜요. 외부에 나가서 일하는 건데, 직원이 한정돼 있으니까 휴일 근무, 야간 업무를 계속하게 되는 거예요. 그게 제일 힘들어요.”


결정권 없이 고액 연봉만 챙기는 낙하산 경영진

이 악순환을 만드는 한 축은 1차 협력사 출신의 이른바 ‘낙하산’ 경영진이다. 박씨 회사의 사장 연봉은 1억7,000만 원 정도로 5년 동안 임기를 보장받고 퇴직 후에도 1년간 고문료를 받는다고 한다. “노무관리만 하면서 가만히 앉아서 따박따박 돈을 받는 거에요. 그나마 노조가 생겨서 2년 동안 주던 사장 고문료를 1년으로 줄이고, 전무 등 임원들이 받던 고문료를 없앴어요. 노조가 없는 업체는 착취가 더 심각하고요. 무엇보다 사장이나 임원이 아무런 결정권이 없어요. 경영진은 무능하고 직원들로 돈을 벌어야 하니까 계속 외부 현장에 보내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그는 20년 가까운 경력을 가진 숙련자지만 연봉은 6,000만 원 정도다. 똑같은 일을 하는 1차 협력사 노동자(9,000만~1억 원) 연봉의 65% 정도밖에 안 된다. 같은 협력사여도 포스코와 직접 계약한 1차 협력사인지, 2차 협력사인지에 따라 임금과 처우가 하늘과 땅 차이다.

포스코는 2018년부터 '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기업시민'이라는 경영이념 아래 협력사들과 상생하겠다고 강조해왔다. ‘협력사 상생협의회’를 만들어 임금 격차 해소 등을 지원, 협력사 직원들의 임금이 포스코 직원들과 비슷한 정도까지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포스코의 각종 복지제도를 협력사 직원들도 이용할 수 있게 하고 근무시설 개보수, 안전보호구 등을 지원해 처우도 개선됐다. 그러나 이 모든 지원은 딱 ‘1차’ 협력사까지만 적용된다. 박씨가 소속된 2차 협력사, 또 그 아래 있는 3차 협력사 노동자들은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한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9일 오후 전남 광양시 금호동 소재 포스코 광양제철소 1고로를 방문해 제철소 관계자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정부가 '상생임금'을 강조하고, 기업들 역시 하청 노동자의 임금격차 줄이기 위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2·3차 하청은 '상생'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제공

그래서 그의 꿈은 원청 직원이 아닌 1차 협력사에 소속되는 것이다. “포스코 현장에서 원청 직원이랑 똑같은 일을 하니까 포스코 정직원이 되는 게 제일 좋긴하죠. 하지만 그건 바라지도 않아요. 다만 포스코가 저희 회사랑 직계약이라도 해줬으면 좋겠어요. 1차 협력사만 돼도 임금 차별도 없고 복지도 좋으니까요.”


1차 협력사에만 적용되는 '더불어 함께 발전'

민주당은 중간착취 근절을 위해 원청이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임금을 직접 지급하도록 하는 법안 등을 고민 중이다. 하지만 입법 소식에도 박씨는 걱정이 앞섰다. “(2차 협력사 직원인) 우리는 임금 직접 지급 그런 건 적용이 어렵지 않을까요. 현실적으로… 1차 협력사라도 됐으면 좋겠어요.”

중간착취를 막기 위한 법안이 만들어진다면 2,3차 하청 노동자도 원청으로부터 임금을 직접 받는 것은 가능할 전망이다. 정길채 민주당 정책위 노동수석전문위원은 "아직 전면적인 것은 아니지만 조선업과 건설업에서는 다단계 하도급에서 에스크로 계좌를 사용하고 있다"며 "세부적인 내용은 점검해야겠지만 2,3차 하청 업체에도 적용 가능하다"고 말했다. 에스크로 제도는 원청이 공사대금을 제3자(금융기관 등)에게 예치했다가 하청업체를 통하지 않고 노동자 계좌로 바로 임금을 입금하는 것으로, 중간 착취를 방지할 수 있다.

박정근씨가 원청인 포스코의 경영이념인 '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기업시민'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종이에 앞으로 개선되길 바라는 점을 적었다. 포스코 경영이념에는 "협력사와 더불어 함께 발전하고 배려와 공존, 공생의 가치를 함께 추구해나가고자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데, 그는 그 경영이념처럼 "일한 만큼 대우받고 다같이 더불어 살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박정근씨 제공

박씨에게 앞으로 개선되기 바라는 점을 적어줄 수 있느냐고 부탁했다. 그는 포스코 경영이념 '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기업시민'이 적혀있는 종이에 글을 썼다. 이 종이에는 "포스코는 '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기업시민'을 추구합니다. 포스코 스스로가 사회구성원의 일원이 되어 임직원, 주주, 고객, 공급사, 협력사, 지역사회 등 여러 이해관계자와 더불어 함께 발전하고, 배려와 공존, 공생의 가치를 함께 추구해 나가고자 합니다"라고 설명돼 있다.

그 아래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문구(포스코 경영이념)처럼 일한 만큼 대우받고, 다 같이 더불어 살았으면 합니다. 2차 협력사 직원."

'중간착취의 지옥도' 바로가기: 수많은 중간착취 사례와 법 개정 필요성을 보도한 기사들을 볼 수 있습니다. 클릭이 되지 않으면 이 주소 www.hankookilbo.com/Collect/2244 로 검색해 주세요.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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