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꽃 사진-신문 사진에 사람이 꼭 들어가는 이유 [청계천 옆 사진관]

변영욱기자 2023. 4. 2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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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모양은 벚꽃 같은데 설명에는 정확한 표현이 없어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사진의 원본을 확대해보면 좀 더 분명하게 꽃의 종류를 알 수 있을 텐데 사진의 원본은 존재하지 않고 신문 지면만 존재하니 설명에 한계가 있습니다.

100년 전 사진을 소개하면서 신문 지면에 실린 사진만 보여 드리고, 원본 사진을 못 보여 드리고 있습니다.

원본 사진을 구할 수 없는 이유는, 한국 전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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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사진 No.16
▶ 나뭇가지 10여 개에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그 아래 봄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1923년 4월 28일자 동아일보 지면입니다. 

구름인가 꽃인가  ㅡ 작일 창경원에서

꽃의 모양은 벚꽃 같은데 설명에는 정확한 표현이 없어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사진의 원본을 확대해보면 좀 더 분명하게 꽃의 종류를 알 수 있을 텐데 사진의 원본은 존재하지 않고 신문 지면만 존재하니 설명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백년 사진’을 연재하면서 여러분께 말씀드리지 않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100년 전 사진을 소개하면서 신문 지면에 실린 사진만 보여 드리고, 원본 사진을 못 보여 드리고 있습니다. 원본 사진을 구할 수 없는 이유는, 한국 전쟁 때문입니다. 1950년에 일어난 6.25 전쟁 때 서울에 있던 신문사 본사는 부산으로 피난을 갔고, 윤전기와 자료는 거의 서울에 남겨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신문사는 북한군의 타겟이 되었고, 자료는 모두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다행이 가정과 관청에 배달된 신문이 있어서 신문사 직원 또는 독자에 의해 모두 수집 정리되어 1920년 창간호부터 현재까지 모두 디지털 파일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이번 주 소개할 사진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식민지를 해방하라’는 일본 도쿄 노동절 행사 기사 옆에 창경원 봄꽃 사진이 게재되어 있습니다. 다분히 의도를 가진 편집으로 보입니다. 빼앗긴 고궁에 봄소식이 왔다는 편집자의 애상(哀傷)이 느껴집니다. 이런 정치적인 해석 말고 오늘 생각해 본 얘기꺼리는 ‘왜 신문 사진에는 꼭 사람이 들어갈까?’입니다. 

▶사진을 찍은 사람은, 봄꽃 아래 사람이 있기 때문에 찍은 게 아니라 봄꽃 옆에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려서 찍었거나 사람이 있는 가지를 찾아서 찍었을 겁니다.  정답은 아니지만 신문에 실리는 사진에는 거의 모든 경우, 사람이 들어가 있습니다. 물론 예외가 있지만, 기본은 그렇다는 뜻입니다. 작품 활동을 하는 사진작가의 경우 사람을 빼고 사진 찍는 경우가 흔하지만 신문에 사진을 게재하는 사진기자들은 유별나게 사진을 찍습니다. 아름다운 꽃을 찍을 때도, 안내문을 소개할 때도, 기념주화가 출시되었다는 것을 알릴 때도 배경 또는 주변에 사람이라는 소재가 포함되게 찍습니다. 

▶사진기자들은 자기가 찍어 온 사진을 마감했을 때 동료나 선배가 ‘작가냐?’라고 물으면  긴장합니다.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니까요. 주로 달력에 나오는 사진처럼 풍경 그 자체만을 찍어 왔을 때 그런 반응이 많습니다. 제가 사진기자 생활을 시작했던 25년 전에는 분명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신문 사진의 기본에는 사람이 들어가야 한다고 도제식으로  배웠습니다. ‘왜 작가들은 그냥 꽃만 찍기도 하는데 사진기자들을 사람을 넣어야 하는 걸라고 고민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사진가는 현장에 있기 때문에 사진의 소재인 건물이나 풍경이 진짜라는 것을 알고, 그 크기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을 사무실이나 집에서 보고 있는 독자들은 크기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진 속 소재가 미니어쳐 일지도 모른다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사람이 들어가 있으면 우리에게 익숙한 사람의 신체 크기와 대비해 피사체의 크기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사진의 진실성을 강화시켜주는 요소로 사람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3D나 일러스트레이션 프로그램으로 그린 가상의 건물 투시도와 사진을 확실하게 구분시키는 요소가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 다음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는, 사진에 사람이 들어가면 환경과 그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이 들어간 풍경사진과 사람이 들어가 있지 않은 풍경 사진을 생각해 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잘 설명하는 책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오정호 교수가 기획해 펴낸 [대중 유혹의 기술]이라는 책입니다. 2015년 7월 일본 나가사키 앞 하시마(군함도)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강제노역과 무자비한 폭력이 이뤄진 공간이어서 우리 정부는 하시마의 등재를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일본 근대화 산업기지로서의 역사적 가치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이유로 들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지하탄광에서 강제노역으로 죽은 일본과 한국의 노동자들은 그 역사에서 빠진 것이죠.  
“많은 억울한 영혼이 떠도는 공간이지만 인터넷상에서 존재하는 하시마의 이미지들은 폐허의 공간이 지니는 아름다움과 공포의 감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군함도 사진에는 사람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사람이 거주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이런 숭고미가 가미된 이미지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도 빨리 전달된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는가’라는 간단한 질문에서 이곳에 관광 오고 싶다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하시마가 강제노력의 지옥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뒤로 밀린다. ”(오정호, [대중유혹의 기술] 179쪽)

▶ 만약 창경원 봄꽃 사진에서 사진 아래 흰 한복을 입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이 없다면 그냥 아름다운 꽃 사진으로 100년 후의 독자인 저도 받아들였을 겁니다. 하지만, 누군지는 모르지만 예닐곱의 젊은 여성들의 모습이 함께 보임으로써, 당시의 일상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들이 겪었을 봄의 환희와 함께, 누군가에 의해 새로운 질서를 강요받고 불안해했던 식민시대의 아픔을 말입니다. 

▶여러분은 100년 사진에서 뭐가 보이시나요? 신문 사진에 사람이 들어가는 거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편안한 주말되세요.

변영욱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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