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함께한 내 청춘의 담배여, 이젠 안녕…

한겨레 2023. 4. 2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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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건강
4박5일 금연캠프 수료기
“남은 인생 위한 투자” 아내 강권에
국립암센터 ‘전문치료형 캠프’ 입소
매일 그룹심리상담 등 과정 마쳐
잠 설치긴 하지만 10여일 금연 중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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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서 잔을 부딪치다 담배를 피워 물었다. 깊게 한 모금 빨아들인다. 손가락 사이에서 타들어가는 매캐하고 진한 냄새가 피어오른다. 실타래 같은 연기가 뿌옇게 바람에 섞여 흩어지는 찰나, 맙소사! 내가 왜 이러고 있나…. 꿈이겠지, 현실인가? 며칠이나 됐다고. 꿈과 현실의 경계가 뒤섞인 꿈을 꿈속에서도 꾸는 중이었다. 무슨 호접지몽도 아니고.

닷새 만에 집에서 취한 수면의 질은 대단히 낮고 후졌다. 자꾸만 잠에서 깨는데 잠인지 꿈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뭔가를 놓치거나 잊고 있다는 망연함 내지 불안감에 날이 새도록 시달리고 있었다. 지난 닷새 동안 잠이 편안하기만 했던 것도 아니다. 국립암센터에서 지낸 4박5일, 병상에 누워 스스로 ‘환자’임을 인정하고 자각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니코틴 의존증’ 환자.

전자담배 맛이 떨어졌는데…

30년 흡연자임에도 대단한 각오가 있진 않았다. 숱한 끽연자들이 새해 각오로 금연을 새길 때 ‘나도 한번 해봐?’라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으니, 정월 지난 지 어언 얼마인가. 4월 들어 무슨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우연과 우연이 쌓이고 겹쳐 만들어진 것을 필연이라고 한다면, 아내의 은근한 종용과 신속한 정보 수집 및 들이대기에 궐련형 전자담배 맛이 영 흔쾌히 느껴지지 않게 된 나의 뜻밖의 변화가 만나 일궈낸 쾌거(?)였던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일은 삽시간에 진행됐다. 지난 3월 중순께 아내는 전격적으로 나섰다. “올해 담배 안 끊으면 내가 가만있지 않겠음.” 강력한 메시지에 “가마니”라는 ‘아재 개그’로 맞대응했지만 통하지 않았다.이미 치밀한 계획까지 세워두고 있었다. 금연캠프에 전화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캠프 입소 신청을 대신 하는 것이 가능했다면 아마도 강제구인이 이뤄졌을지 모르겠다. “30년 동안 담배를 피웠는데 4박5일 정도는 나머지 인생을 위해 투자해.” 별 수 없이 전화기를 들고 아내가 남긴 전화번호를 하나하나 눌렀다.

괜스레 손가락이 떨려왔다. 옷가지와 책, 간단한 간식거리 등이 담긴 보스턴백을 내려놓고 커피 한 잔을 홀짝이는데 만감이 오갔다. 마지막이라는 말에 울적해지기보다 다급해졌다고나 할까.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지난 17일 오전 8시30분께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국립암센터 앞. 출근길 아내 차를 얻어 타고 일찍 문을 연 커피집 부근에 내린 터였다. 눈물이 나진 않았지만 혼잣말로 속삭였던 것 같다. 이젠, 안녕. 시곗바늘은 하염없이 돌아가고 입소 시간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정식 명칭은 ‘전문치료형 금연캠프’. 금연캠프를 운영하는 의료진은 흡연이 습관보다 중독임을 강조했다. 중독은 의학적으로 의존증이며 금연 의지의 한계는 자명하다는 것. 질병 치료는 적절하고 정확한 진단에 따라 이뤄질 터. 의존증을 넘어서기 위한 약물 처방은 이미 캠프 입소, 아니 입원 닷새 전 이뤄졌다. 금연보조치료제는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성분이 부프로피온이거나 바레니클린이다. 흔히 ‘챔픽스’로 알려진 바레니클린이 좀 더 많이 쓰인다고 한다.

바레니클린 성분 처방을 받아 입원 전부터 낮은 함량을 먹기 시작했다. 미리 흡연을 중단할 필요는 없다고 해서 부담은 적었다. 이 성분은 니코틴 수용체에 작용한다. 니코틴이 니코틴 수용체에 달라붙을 때 뇌 전두엽에서 도파민이 분비되기 때문에 니코틴 중독이 이뤄지는데, 바레니클린이 니코틴 역할을 대신하기에 금단 증상과 흡연 욕구가 줄어든다. 입원일이 가까워지면서 이 약은 두 알로 늘고 입원 일주일 뒤에는 용량이 두 배로 는다. 두통·오심·불면이 부작용이라는데, 가벼운 두통이 이따금씩 생겼고 잠깐 울렁거리기도 했는데 무엇보다 꿈자리가 사나워지곤 했다.

캠프 ‘동기’는 모두 12명이었고 나이로 치면 내가 가장 막내였다. 50대가 비교적 많았지만 60대도 적지 않았고 70대가 최고령자였다. 금연캠프는 국립암센터 검진동 11층 병실에 차려졌다. 의료진은 “브이아이피(VIP) 병실”이라고 설명했다. 3인실이었으니 6인실에 견주면 시설이 무척 좋았다. 무엇보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광은 시원스러웠다. 병원 밖으로 나갈 자유가 없으니 더욱 바깥이 좋아 보였을지도….

겁주기와 안심시키기

프로그램은 진료와 상담, 검사와 교육으로 이뤄졌다. 폐 시티(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로 시작해 사실상 종합건강검진을 받고 이에 바탕해 의료진 상담을 받는다. 폐암 등 각종 암이나 폐기종을 비롯해 흡연이 일으키는 질병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각종 다양한 프로그램이 의료진의 세심한 배려 속에 진행되는데, 그룹심리상담이 닷새간 매일 1회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으로 보였다.

크게 보면 공포와 위안으로 받아들여졌다. 겁주기와 안심시키기라고 해도 되겠다. 흡연이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지만 적절한 약물 치료와 노력으로 얼마든지 금연이 가능하다는 것을 내내 강조했다. 심리상담은 주로 담배를 피우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전장치를 강화해줬다. 담배와 함께해온 삶을 되돌아본 뒤 금연 동기를 강화하고 금연에 대한 심리적 갈등을 정리하는 한편, 스트레스 관리 방법을 함께 생각해보고 퇴소 이후 금연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법론까지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방심하면 흡연 욕구는 훅 솟구친다. 약을 먹는다고 담배 냄새가 싫어지는 것도 아니다. 나의 취약점은 출퇴근길 오가며 마주하는 흡연자들, 기다리는 시간과 짜증나고 분개하는 순간들이다. ‘식후땡’은 참을 만하다. 의식적으로 흡연 가능 공간에 발을 디밀지 않고 담배가 고파지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는 노력도 아직은 자연스럽다. 그렇게 비교적 부드럽게 10여일 금연을 이어가고 있다.

금연캠프의 피날레, 상담사는 편지지를 나눠줬다. 첫 집단상담 때 “마지막으로 딱 한개비만 피우고 싶다”던 이들조차 순간 숙연해졌다. 나는 ‘젊은 시절 큰 위안이 돼주었던 담배’에게 짧은 편지를 적었다. 방향을 종잡지 못하던 치기 어린 시절 자판기 커피와 함께 위로가 되던, 스산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유독 씁쓸해서 즐길 만했던, 유럽 어느 공항에서, 경춘선 기차간에서 심야택시 등지에서 후련하게 내뱉을 수 있었던… 잘 있거라, 이제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담배들아.

40대 끝자락 회사원 케이(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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