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 잘못으로 ‘근무지 이탈’ 수백일 복무 연장…“구제방법 없어” [주말엔]
“병역법에 따라 596일을 더 근무하세요”
지난해 7월 산업기능요원으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던 20대 A 씨는 이런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병무청이 A 씨가 지금까지 일한 기간만큼 처음부터 다시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라고 통보한 겁니다.
같은 통보를 받은 요원은 A 씨뿐만 아니라 4명이 더 있었습니다. 많게는 900일을 더 일해야 하는 요원도 있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 '근무지 이탈' 이유로 복무연장 처분… "20대 초반 날아가"
병무청이 이 같은 결정을 한 이유는 A 씨 등 5명이 편입 당시에 신고된 병역지정업체가 아닌 다른 업체에 근무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근무지 이탈'을 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A 씨 등은 원래부터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해당 공장에서만 일했고, 다른 공장에는 가본 적도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업체 측의 실수가 있었습니다. 산업기능요원들을 서울시 송파구에 위치한 본사에서 일한다고 병무청에 신고해놓고, 실제로는 하남 공장에서 일을 시킨 겁니다.
병무청은 이를 병역법 위반으로 보고 업체 대표는 검찰에 수사의뢰하고, 요원들은 연장복무 처분했습니다.
병무청은 요원들에게 최초 편입 때부터 수시로 "정해진 공장에서만 근무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꼭 신고를 해야 한다"고 교육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이번 경우에는 요원들이 고의적으로 근무지를 이탈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선처해서 ‘편입취소’ 대신 ‘연장복무’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편입취소 처분을 받으면 현역 판정을 받은 산업기능요원은 다시 군대에 입대해야 하는 패널티가 있는데, 연장복무 처분은 그래도 계속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할 수 있게 해서 훨씬 나은 처분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갑자기 수백 일을 더 일해야 하는 요원들은 억울함을 토로합니다.
A 씨는 “복무를 마치고 해외여행을 다녀오려고 했는데 모두 무산됐다”며 “20대 초반에 2년의 시간이 날아가버려 어쩔 줄 모르겠다”고 토로했습니다.
■ 업체 측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 문제 없어"
KBS가 업체 측에 왜 이런 실수를 했냐고 물어보니 “이미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한 사건으로 문제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병무청이 병역법 위반으로 고발을 했는데 검찰은 죄가 없다고 본 겁니다. 실제로 서울동부지검은 지난 3월 20일 이 사건을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병역법상 같은 병역지정업체에 해당한다면 그중 ‘어느 장소’ 즉 어느 공장에서 근무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A 씨가 송파 본사에서 일을 했든 하남 공장에서 일을 했든, 같은 업체에서 일했으니 상관이 없다는 거죠.
그럼 해당 조항을 볼까요?
병역법 시행령 제73조
병역지정업체 중 공업 분야의 기간산업체 또는 방위산업체의 경우에는 공장 또는 사업장을 말한다.
‘공장 또는 사업장’이라는 문구가 보이실 텐데요.
병무청은 이 조항을 최초 신고된 공장에서만 일해야 하고, 다른 공장에서 일하면 근무지 이탈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반대로 검찰은 같은 법인이기만 하면 어느 공장에서 일해도 상관없다고 해석한 겁니다.
병무청이 검찰 처분에 항고하는 등 문제를 제기하자 검찰이 직권으로 다시 수사해, 이번에는 기소유예 결정을 합니다.
기소유예는 죄는 인정하지만, 재판에는 넘기지 않기로 하는 불기소 처분의 한 종류입니다.
병무청은 "검찰의 판단을 이해할 수 없다"며 "판례가 명확해 일관적으로 기소가 돼 왔던 사항"이라고 반발했습니다.
■ 오락가락 판단에도 연장복무는 '그대로'
한 사건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때마다 다른 결정이 났고 업체 대표는 결국 기소되지 않았는데, 그럼 산업요원들도 연장복무를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요?
아닙니다. 5명의 산업요원은 변경 없이 연장복무를 해야만 합니다. 연장복무는 병무청의 행정 처분 영역이지 검찰이 사법 처분할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역 군인들도 근무지 이탈에 대해 엄격한 만큼 산업기능요원도 마찬가지여야 한다는 병무청의 설명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수사기관도 판단을 오락가락할 만큼 병역법 조항이 모호하다는 것은 앞으로도 유사한 문제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어찌 됐든 5명의 청년이 20대 초반에 수백 일의 시간을 빼앗기게 됐다는 결론은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빼앗긴 시간은 누가 책임지고 누가 보상해 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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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윤 기자 (cyworld@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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