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이어 아프리카에서도 ‘미-러 패권 전쟁’
관망하던 미국 “두고 보지 않겠다”
(시사저널=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아프리카 수단에서 4월15일 정부군과 민병대인 신속지원군(RSF)이 권력을 둘러싸고 유혈 내전을 시작하면서 갈등이 국제적으로 비화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자국민을 긴급 탈출시켰지만, 내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수단 국민은 인도주의적 위기에 봉착하고 있으며, 일부는 국외 탈출에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사회는 수단의 자원과 이권을 둘러싸고 정부군 지지와 RSF 지원, 그리고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며 양쪽 사이를 오가거나 관망하는 나라로 갈리고 있다. 적극적으로 이익 추구에 나선 나라에는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추진 중인 중국과 용병집단 바그너그룹을 앞세워 아프리카에서 세력을 확대 중인 러시아가 포함된다. 여기에 이번 한국민 탈출 과정에서 정보와 이동 경호를 지원했던 중동 산유국 아랍에미리트(UAE)도 수단에 상당한 '투자 지분'이 있다.
"홍해 통제하려는 국제적 각축전의 한복판"
수단 정부군은 최고기관인 과도주권위원회 의장인 압델 파타 알부르한 장군이, RSF는 부의장인 무함마드 함단 다갈로 장군이 각각 이끌고 있다. 정부 권력 1인자와 2인자가 국민의 생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인구 600만 명의 대도시인 수도 하르툼을 폭격까지 하며 유혈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수단 군부는 2019년 4월 쿠데타로 1989년부터 30년간 독재자로 군림했던 오마르 알바시르 대통령을 축출했으며, 2021년 10월에는 군 사령관인 알부르한이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다. 쿠데타 정권에서 다시 쿠데타를 벌인 셈이다. 하메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RSF는 2003~20년 벌어진 서부 다르푸르 내전 진압을 위해 정부군이 무장시킨 수단 아랍인 민병대 잔자위드(말 등에 탄 악마)에서 비롯됐다. 2014~15년 다르푸르 주민 인종학살·강간·고문과 2019년 하르툼 반정부 시위 유혈진압으로 악명이 높다.
사실 1956년 영국·이집트로부터 독립한 수단에서 내전과 쿠데타는 일상이었다. 지난 67년간 12회의 쿠데타와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 자원과 종교·인종 등을 놓고 내전이 끊이지 않는 동안 군부가 세력을 키운 결과로 분석된다. 내부적으로 내전과 쿠데타가 끊이지 않는 수단은 자원과 지정학적 잠재력을 평가한 강대국과 부자 나라가 접근하면서 아프리카·중동·중국·러시아·서방의 각축장으로 변하고 있다. 개입 이유는 자원과 물류 잠재력 때문이다. 수단의 면적은 186만1484㎢로 아프리카 54개국 중 3위, 인구는 4180만 명으로 9위다.
수단은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 명목금액 기준 1인당 GDP 916달러의 가난한 나라지만 잠재력은 상당하다. 우선 길이 6650km로 세계 최장 하천인 나일강이 국토를 관통하고, 수에즈 운하로 이어지는 홍해에 접한 수자원·물류의 중심지다. 석유·금 등 자원도 풍부하다. 노르웨이의 해운·해양 싱크탱크인 '크리스티안 미겔센 연구소(CMI)'는 "수단이 아라비아반도와 아프리카 대륙 사이에 있는 홍해를 통제하려는 국제적 각축전의 한복판에 있다"고 평가했다. 그 중심에는 홍해 연안의 수단 항구인 포트수단의 운영·개발권이 자리 잡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항만개발운영사인 UAE 두바이의 DP월드, 중국의 중국항만공정(CHEC), 그리고 카타르의 한 기업 등이 포트수단 개발에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2021년 3월 보도했다. 중국 CHEC는 포트수단 확장에 5억430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의향을 수단 임시정부인 주권위원회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UAE는 한발 더 나아가 포트수단을 대대적으로 개발해 중동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자유무역항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해 6월 UAE의 DP월드가 60억 달러를 들여 포트수단 지역에 새 항만 건설과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중국도 잠재력 상당한 수단에 눈독
포트수단에는 두 가지 이점이 있다. 첫째는 아프리카 소말리아·지부티와 중동의 예멘 사이에 있는 바브엘만데브해협과 수에즈만 사이에 있는 홍해를 아우를 수 있는 군사·물류 요충지다. 홍해는 동쪽으론 중동의 예멘·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이스라엘에 면해 있으며, 서쪽으론 아프리카의 지부티·에리트레아·수단·이집트에 접한다.
둘째, 포트수단은 아프리카의 자원이 해외로 수출되는 출구다. 1905년 영국이 개발한 포트수단은 내륙에 있는 수도 하르툼과 도로로 연결된다. 하르툼은 에티오피아에서 발원한 청나일과 우간다의 빅토리아 호수에서 발원한 백나일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물류 요충지다. 포트수단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석유 수출항이기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USEIA)에 따르면 수단은 2021년 기준 하루 6만6912배럴을 생산하는 세계 46위 산유국이다. 2011년 독립해 나간 남수단은 하루 15만7122배럴을 생산해 세계 38위다. 수단과 남수단에서 생산된 원유는 현재로선 모두 수단의 송유관과 포트수단을 거쳐야 수출될 수 있다.
중국은 단일 국가로는 수단에 가장 많이 투자했으며, 항만과 송유관 등 인프라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도 뒤늦게 나서고 있다. 노르웨이 싱크탱크 CMI는 미국이 수단을 2020년 테러지원국에서 제외하면서 적극적인 투자와 경제적·군사적 진출을 모색 중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1997년 테러리즘 지원과 인권 문제 등을 이유로 수단에 대한 경제 제재에 나서 미국인의 투자를 금지했다. 하지만 1989년부터 30년간 장기 집권한 독재자인 오마르 알바시르가 2019년 4월 군부 쿠데타로 권좌에서 축출되자 뒤늦게 투자에 나섰다.
인프라 중심의 중국과 달리 러시아는 자원 이권에 눈독을 들여왔다. 러시아 용병집단 바그너그룹은 수단 정부군과 RSF가 반목하기 전부터 수단에 무기와 군사훈련 등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금광 채굴권 등을 받아왔다. 바그너그룹은 수단과 이웃한 리비아의 동부 군벌 할리파 하프타르를 지원해 왔다. 하프타르는 과거 내전 당시 군대를 파견해 도와준 RSF와 특히 관계가 돈독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 CNN방송은 이번 수단 내전이 발생하자 하프타르가 러시아제 수송기를 동원해 수단의 RSF 기지로 미사일을 포함한 군수물자를 운반했다고 4월20일 보도했다. 서방 정보기관은 이 과정에서 바그너그룹이 개입한 것으로 의심한다. 러시아는 포트수단을 자국 군함의 정기 기항지로 이용하는 방안도 추진해 왔다.
반면 수단과 접경한 이집트는 수단 정부군을 지원해 전투기와 조종사를 보낸 것으로 보도됐다. 2013년 쿠데타로 집권한 후 이듬해 대선에서 당선한 이집트의 압둘 파타흐 시시 대통령은 2021년 수단 쿠데타의 주역인 알부르한 장군과 가까운 사이다. 양측 간 중재에 나서며 관망 자세를 보여왔던 미국의 향후 움직임도 주목된다. 러시아가 바그너그룹을 통해 RSF 지원의 방법으로 수단 내전 개입을 본격화할 경우 미국도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내부 권력다툼으로 벌어진 2023년 수단 내전은 갈수록 국제사회의 각축전으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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